-
-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2010년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과 진지하고도 즐거운 만남을 함께 했던 한해였다. 미치오 슈스케, 미나토 가나에, 히가시노 게이고, 노리즈키 린타로, 기시 유스케, 엔도 다케후미, 요코미조 세이시, 누쿠이 도쿠로, 슈카와 미나토, 미쓰다 신조, 와카타케 나나미, 온다리쿠에 이르기까지... 본격,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코지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끽 할 수 있는 수많은 작품, 작가들과의 만남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미치오 슈스케와 미나토 가나에! 올해 만난 작가들중 이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십이지 시리즈라고 명명되기도 하는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 뛰어난 심리묘사와 탁월한 구성과 전개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미나토 가나에. 그들이 있어 더더욱 즐거웠던...
<리라장 사건>을 시작하면서 이처럼 올해 만난 작가들, 작품들을 먼저 떠올려보는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의 작가 '아유카와 데쓰야'때문일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본격의 신'으로 추앙받는 작가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아직 일본 미스터리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선 것도 사실이다. <리라장 사건>이 우리 나라에 처럼 소개되는 아유카와 데쓰야의 첫 작품이며, 본격의 신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이 이제서야 국내에 알려진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1958년에 발표된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다. 아유카와 데쓰야가 이미 고인이며, 이 작품이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가 전해줄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와 함께 특별한 애정을 느끼게까지 만든다. '리라장'은 라일락 꽃이 건물 주위에 가득했던 이유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라일락은 '리라'라는 짧은 이름으로 젊은 이들에게 불리는데, 과거 성공한 기업가였던 후지사와씨의 죽음과 몰락으로 현재 리라장은 일본 예술대학의 레크레이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리라장은 관리인인 만페이 영감과 그의 아내 하나씨가 거주하고 있다. 책의 맨처음 이런 리라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역사가 나온다. 이 작품을 만날 계획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이 부분을 가볍게 넘기지 말라고 먼저 말해두고 싶다!
여름 방학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일곱명의 학생들이 리라장을 찾는다. 미술학부와 음악학부 학생들로 구성된 그들은 리라장에서 있을 미스터리한 연쇄 살인은 꿈도 꾸지 못한채 깊은 산장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검은 색에 심취해 '블랙 여사'라는 별명을 가진 '히다카 데쓰코', 가난한 미술학부에서 부잣집 자녀들이 즐비한 음악학부로 옮긴 '유키타케 에이이치', 남들을 쉽게 업신여기는 철부지 외동딸 '아마 릴리스'와 그녀의 약혼자인 '마키 가즌도', 피아노 전공의 '다치바나 아키오', 그리고 리라장에서 그와 약혼을 선언하게 되는 아가씨 '마쓰다이라 살로메', 오만 불손한 성격의 소유자 '아비코 히로시', 이렇게 일곱명의 리라장 손님들, 그들에게 닥쳐올 불행은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히다카 데쓰코는 다치바나 아키오를, 아비코 히로시는 살로메를 짝사랑한다. 리라장에서 아키오와 살로메의 약혼 발표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해준다. 아마 릴리스의 레인코트를 누군가가 훔쳐가고 게임을 하려던 그들은 카드중 스페이드만 쏙 빠져버린 사실을 알게된다. 이 모든게 불행한 사건의 전조인것도 모른채 말이다. 불신과 시기,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경찰이 찾아오게 된다. 유키 형사,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은 만년필과 회수권, 하얀 레인코트... 숯쟁이인 스다 사키치의 사체가 낭떠러지에서 발견되었고 그 옆에서 그것들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그들이 잃어버린 카드, '스페이드 A'가 그곳에 있었다.

평범한 사건으로만 생각했던 사건은 이후 일곱명의 방문객들이 대상이 된 연쇄 살인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고, 하나둘 죽음의 스페이드 카드를 남기고 그들은 죽어간다. 경찰들은 리라장에 상주하게 되고 범행의 단서를 찾은 또 한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유력한 용의자 또한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드디어 본격 미스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끔 명탐정이 등장한다. '호시카게 류조', 그의 등장으로 리라장의 연쇄 살인 사건은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쉽게 읽어 내려갔지만 책을 내려놓으며 쉽게 읽어내려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얽힌 실타래가 하나둘씩 풀어갈때쯤에서야 곳곳에 자리하던 트릭과 복선들에 대해 '아차!'하는 신음?과 함께 튀어나온다. 밀실 살인, 엉성한 형사, 그리고 천재적인 명탐정! 요즘은 이런 것들이 본격 미스터리의 기본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아유카와 데쓰야가 본격 미스터리의 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후 작가들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것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 <리라장 사건>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법칙'속에 나오는 반조 경감의 말이 떠오른다. 절대 범인을 잡아서도 안되고, 핵심이되는 사건의 열쇠는 번번히 놓쳐야하며, '제대로 된'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는, '명탐정의 규칙'을 위한 영원한 조연의 비애, '아니, 그 아름다운 여인이 범인이었다니, 이거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라는 한심한 대사나 읊어야 하는 쓰디쓴 보조역 반조 경감!의 말이 그것이다. <리라장 사건>이 그만큼 오래된 작품이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아마도 '법칙'정도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명탐정의 규칙'을 양산해 낸것은 아유카와 데쓰야가 아니고 조금은 게으른 그의 후배들이 었으니 그를 나무랄 아무런 이유도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요즘 만나는 작품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는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지만, 벌써 50년이란 시간이 지난 작품임을 생각해볼때 아유카와 데쓰야에 대한 존경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본격 미스터리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형사와 탐정, 밀폐된 공간, 등장인물들의 철저한 알리바이, 복선과 트릭...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들,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아유카와 데쓰야가 마련해준 기회를 통해 데뷔한 작가들이란 사실을 볼 때, 그를 '본격의 신'이라 불리며 후배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이 놀랄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아유카와 데쓰야! 본격의 신, 신본격 미스터리의 디딤돌이 되기도 했던 그의 이름이 이제는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씨앗이 되어준 아유카와 데쓰야,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조금더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2010년의 마지막 일본 미스터리 소설과의 만남속에서 그의 작품이 대미를 장식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