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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평점 :
개인적으로 올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아니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만나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 이 장르에 대한 대표 작가를 말하라면 쉽게 입밖으로 나오는 이름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사사키 조, 미나토 가나에, 미치오 슈스케...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하나의 장르에 충실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온다 리쿠'라는 이름속에는 단 하나의 장르만을 담을 수가 없다. '도미노'속에서는 유쾌한 코믹 유머를, '초콜릿 코스모스'에서는 여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를, '밤의 피크닉'에서는 청춘소설 장르를, '삼월의 붉은 구렁을'에서는 미스터리를....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청춘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 온다 리쿠! 다양한 얼굴을 가진 그녀와 겨울 문턱에서 만난다.
이번에 비춰진 그녀의 얼굴은 미스터리 장르이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 표지를 보자마자 '아~ 온다리쿠다!' 라는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처럼 흘러나온다. 뭐라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녀만의 향기가 묻어있는 환상적인 표지가 인상적이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녀만의 미스터리, 판타스틱 미스터리, 온다 월드에 다시금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재벌가 사와타리 가문의 세자매, 니카코, 이치코, 미즈코의 초대로 매년 산속 호텔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 친척과 관계자들에게 그녀들은 저녁만찬 자리에서 어린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하나의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어진 그녀들의 이야기는 각 변주별로 말하는 화자가 변화하고 사건들속에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것이 허구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온다 리쿠식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을 장미의 향기속에 담아낸다.
'진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허구가 섞이면 더욱 진향 향을 풍긴다. ... 진실은 거짓을 섞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진실다워 보인다. 또 진실은 농담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얘기가 더욱 탄탄해진다.' - P. 244 -
도키미스와 사쿠라코, 사키와 니카코, 류스케와 이치코, 아마치와 미즈코, 사쿠라코와 미즈호.... 말하는 화자와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인물들이 변주곡을 연주하듯 하나의 주제속에 각 장마다 미묘한 변화를 거듭한다. 농담과 허구속에 무엇인 진실인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온다리쿠식 판타지 미스터리는 독자들의 머리를 아찔할 정도의 속도로 질주한다.

온다 리쿠는 작가후기에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불멸의 연인]이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마지막까지 끌어준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극적이고 실험적인 이야기, 자신이 쓰고 싶었던 소설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라는 작품이 궁금해진다. 영화로도 소개되었다는 이 작품은 1961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어떤 내용과 스타일을 담은 작품일지 꼭 만나보고 싶어진다. 온다 리쿠가 반한, 그녀의 이야기속에 종종 노출되기도 한 이 작품을 꼭 함께 하고 싶다.
'진실은 거짓말 속에. 진실은 농담 속에. 지금 그녀는 진실을 허구속에 담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 P. 261 -
세 자매는 왜 그들을 초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소설의 무대인 국립공원 안 산정에 위치한 거대한 호텔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각 변주를 맡고 이야기하는 인물들은 이 세 자매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불륜과 근친,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관계는 마지막까지 치열한 두뇌 싸움을 계속하게 만든다.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 다음 변주에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환상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독자들의 머릿속은 점점더 흐릿한 안개에 휩싸인다. 온다 리쿠식 본격 미스터리, 비일상적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고 쉽게 추리하기 힘든 사건들속에 던져진 독자들은 쉴 새 없이 온다 월드의 판타스틱 미로에 갖혀버린다.
마지막까지 마음의 여유를 풀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약간의 친절함을 베푼다. '작가 후기'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온다 리쿠의 생각을 정리해준다. 스기에 마쓰코이의 온다 리쿠식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해설은 '푸근하고 은밀한 온다 리쿠'를 알아가는 또 다른 즐거움과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건네준다. 마지막에는 '온다 리크 스페셜 인터뷰'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은 조금은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그녀를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할 수 있다.
온다 리쿠만의 색깔, 온다 월드에서 독자들은 그녀의 향기에 흠뻑 취한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그녀의 색깔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상과 환상 넘치는 미스터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장르를 통해 어떤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줄 지 또 다른 기다림과 환상을 기대해본다. 여느 미스터리처럼 조금은 쉽지만은 않은 그녀만의 색깔이 겨울의 차가움을 뜨거운 향기로 물들인다. 그녀만의 섬세함과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쉽지 않은 미스터리, 온다 리쿠의 색깔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