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고데마리 루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지방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사연이 인상적이다. 매일 아침을 챙겨먹던 그녀, 하루는 시간에 쫓겨 아침을 거르고 나와 대신 초콜릿과 우유를 먹다가 초콜릿 속에서 나온듯한 금속 물질 때문에 초콜릿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게 된다. 남자 직원은 죄송하다며 직접 찾아와 사과하고 초콜릿을 수거해간다. 말쑥한 외모와 친절함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 얼마후 치과를 찾은 그녀는 자신의 이에서 그때 그 금속물질이 빠져버린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틈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이별 아닌 이별을 겪고 5년, 우연한 기회에 그를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몇년후 미니홈피에서 그의 소식을 만나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을 접하면서 왠지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사연이 문득 떠올랐다. 열 세살, 스물 네살, 서른 두살... 책속에 담긴 첫사랑과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남녀의 순수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가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던 그때 그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든다. 소년 소녀에서 만나 여자와 남자가 된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순수함에 목말라 있던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일렁임으로 다가온다. 기나긴 시간의 끈으로 이어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마도 라디오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와 그렇게 문득 닮아있다. 그렇다면 책속 그와 그녀의 사랑은 어떨까?

 

소년, 소녀를 만나다.열세살 소년과 소녀는 첫사랑을 시작한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소녀의 왼손과 소년의 오른손은 그렇게 단단히 연결되어 떨어질 줄 모른다. 하지만 소년 아라시가 홋가이도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짧은 만남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리고 스물네살이 되던 어느날. 여자, 남자를 만나다.우연한 기회를 통해 아라시를 만나게 된 가케하시 더이상 어린 아이들의 사랑이 아닌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설레임으로 그리움으로 기억되던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이란 이름속에 감춰진 이기심으로 서로 할퀴고 상처주며 아픈 이별을 겪게 된다.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언젠가 혼자 그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아니,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 P. 08 -

 

사실 이야기는 서른 두살이 된 그녀에게서 시작된다. 죽은 언니의 딸인 나나코와 함께 사는 가케하시에게 들어온 일러스트 의뢰로 아라시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아프게 이별했지만 사랑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던 그와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의 향기가 피어난다. 사랑의 진실을 찾아가는 가케하시(핫파짱)와 이가라시(아라시)의 기나긴 여정, 그 속에서 독자들은 사랑이란 말이 담고 있는 숨겨진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첫사랑에서, 멋모르고 시작된 사랑,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게 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사랑'의 진심을 일깨우는 멋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는 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아라시가 쓴 동화가 나오기도 한다. [도둑 고양이와 유목민] 이란 제목을 가진 이 동화는 어린 시절 아라시 자신이 가진 상처에 대해서, 단순히 인간과 인간을 넘어 인간과 동물 사이에 꽃피는 '사랑'이란 이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사랑과 함께 희망과 행복이란 메세지도 잊지 않고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기나긴 그와 그녀의 사랑 여행, 그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신비스런 제목과 더불어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한없이 궁금해진다.

 

'아라시가 불쑥 말했다. "알아? 10년이 몇 초인지." , "모르지만, 계산해보면 알겠지. 1분이 60초니까..." ... "3억 1,536만 초. 내가 핫파짱을 생각한 시간이야." ...' - P. 67 -         

 

'손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원태연 시인의 詩들을 듣고 있으면 참 순수하면서 감성적이란 느낌을 갖게된다. 하지만 사실 조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쑥스러움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데마리 루이', 독자들에게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연애소설 작가'로 주목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어쩌면 원태연의 작품 만큼이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종종 엿보인다. 순수한 사랑, 사랑의 진실한 의미를 찾아가는 순수 연애소설에서 어쩌면 이쯤은 당연히 감수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의 소개에서도 언급하듯, 폭력과 외설, 살인과 불륜이 판치는 작품들속에서 소년과 소녀, 그녀와 그가 그려내는 순수한, 인연이란 이름으로 끈끈하게 이어진 사랑의 이야기는 그래서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의 문턱에서 마주한 이들의 사랑이 잊혀진 사랑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순수를 잃어버린, 현실이란 시간의 추에 묶여 버린 굳어버린 젊음과 사랑에 부드러운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어떤 굴레라 여기고 서로 할퀴고 상처주며 살아온 그 시간들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독특한 이야기 구성과 사랑이란 감정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고데마리 루이, 주목받는 이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아낀다'는 의미를 잠시 잊고 있었다. 부서지고 달아버릴까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던 다짐을 잠시 잊고 지내온것 같다. 100일이 조금 지난 아이때문에 아내는 오늘도 무거워진 팔에 파스를 붙인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 짜증 한번 없이 아이를 안아주는 아내. 그런 아내가 고맙다. 아라시와 가케하시, 그와 그녀의 사랑이 잠시 싸늘하게 식어버렸던 우리 가정에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오늘은 아내에게 조용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당신을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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