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슬립
폴 트렘블레이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스터리 추리소설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을 꼽으라면 아마 '경찰과 탐정'이 아닐까싶다. 탐정을 돋보이게 하려고 어수룩한 경찰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경찰이 사건 전반을 풀어가기도 한다. 물론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더라도 '명탐정 홈즈걸'처럼 일반인이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즐겨 만나는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 혹은 다른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탐정과 경찰들... 가가형사도 그렇고 갈릴레오도 그렇다. 미스 마플도 긴다이치 고스케도, 고마지 형사반장도 뛰어난 추리로 사건을 술술 풀어나간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만나는 재미중 하나는 이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인 탐정 혹은 경찰 캐릭터와의 만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탐정 필립 말로! 183센티미터의 큰키, 85킬로그램의 건장한 체격, 준수한 외모에 냉철한 성격,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눌러쓰고 담배를 물고 있는 멋들어진 모습. 탐정이 갖추어야 할 매력을 모두 갖춘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탐정중 하나로 꼽히는 필립 말로! 그에 비견되는 또 다른 탐정이 여기 있다. 필립 말로처럼 중절모를 눌러쓰고, 트렌치코트로 몸을 감싸고 담배를 물고 있는... 하지만 조금 다른건 사고로 얼굴을 다쳐 항상 윙크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과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이유가 보기 흉한 얼굴을 가리려는 용도라는 것이다. 서른 살이 넘었어도 어머니의 신세를 지고 있기도 한...

 

'8년전 나는 면허를 취득했다. 매사추세츠 주 법에 따라 주에서 요구하는 서류와 수수료 50달러를 내고 사립 탐정, 마크 제네비치가 되었다.' - P. 32 -

 

그리고... 사립 탐정이란 직업에 가장 치명적인 결점이랄까? 그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기면증은 잠이 들 때(입면)나 깰 때(각성) 나타나는 환각, 수면 마비, 수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경정신과 질환이라고 한다. 조금은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한 사립 탐정, 그의 이름은 바로 크 제네비치!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필립 말로에 뒤지지 않을 정의감과 열정이 있기에 독자들은 온전히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탐정 마크 제네비치의 <리틀 스립>이 그 막을 올린다.

 

'누가 내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봐줘요'라며 5만달러는 사례금으로 주겠다는 한 소녀가 마크 제네비치를 찾아온다. 이 일에 시도만해도 1만달러는 내놓게다며 그녀는 장갑을 벗어 붕대에 쌓인 손가락을 보여준다. 그녀가 남겨놓은 서류봉투에는 흑백사진 두 장과 네거티브 필름이 담겨져 있다. 사진속 그녀는 상의를 벗고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제니퍼 타임즈, '아메리칸 스타'의 결선 진출자이자, 서퍽 카운티 지방 검사의 딸인 그녀가 바로 이 사건의 의뢰인이다. 눈 깜짝할 사이 제니퍼 타임스는 사라졌고, 마크 제네비치는 깨어나보니 현실이었는지 망상이었는지 알 수 없을 암흑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사건을 맡게 된 마크 제네비치는 제니퍼 타임즈의 사인회를 찾아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갖지만 그녀는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와 제니퍼 타임즈의 아버지인 지방검사가 단짝이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검사를 찾아가고 그의 딸이 남겨둔 사진을 보여 주지만 검사는 그 사진속 주인공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마크 제네비치를 찾아온 여인은 누구였고, 또 사진속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기면증 때문에 일어나는 환각을 본것인지, 현실과 환상속을 걷는 그에게 이건 또 하나의 꿈이란 말인가? 진실을 향한 사립 탐정 마크 제네비치의 치열하지만 유머러스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항상 최악의 순간은 정신이 들고 난 바로 다음이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따위의 질문을 비웃고는 싶은데, 나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인 꿈인지 모른다.' - P. 15 -

 

<리틀 슬립>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고전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빅 슬립]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의 작품속 주인공의 포스는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통해 익히 들어오기도 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 선, 전혀 탐정이라는 직업과 어울릴 수 없을 것같은 '기면증'이란 단어가 역설적으로 기존의 미스터리가 가진 정형화되고 딱딱한 느낌에서 조금은 가볍게 다가가는 재미를 전해주는 듯하다.

 

'소파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녀석은 담배를 죽어도 못 끊는다. 보건복지부의 경고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금연 패치를 붙여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마크 제네비치의 말을 보더라도 그의 일상 하나하나에서 그가 얼마나 현실과 꿈 속을 오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의뢰된 사건, 아니 의뢰 되었던 것인지 조차 의문스런 이 사건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정형화된 탐정과는 조금은 차별화된 캐릭터, 마크 제네비치의 말과 행동들을 따가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쏟아져나오는 웃음과 유쾌하고 색다른 탐정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폴 트렘블레이가 창조해낸 새로운 탐정 캐릭터, 마크 제네비치! 조금은 모자란듯, 탐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기면증이라는 특이한 병을 가진 그이지만, 그만이 뿜어낼 수 있는 특유의 농담속에서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선과 방식을 배워간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모르겠다는 마크 제네비치의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시대을 살아가는 당신들은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있는가?'그런 질문을 우리앞에 내어 놓고 있는듯하다. 범죄보다는 사람과 그 이야기들을 담아낸 색다른 미스터리, <리틀 슬립>과의 만남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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