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예문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작가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사뭇 많을 줄 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이름들 속에는 알게 모르게 또 하나의 이름이 숨어있다. 그 이름은 바로, '다자이 오사무'이다. 현재의 일본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들에게 존경을 받는 그 이름, 다자이 오사무! 낯설지 않은 이름이면서도 그를 작품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듯하다. 무엇이 그의 문학을, 그를 존경하게 만드는지, 오래전 이름만을 남기고 떠난 그를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지 확인하게 만드는 한 작품과 마주한다.

 

한일병합이 일어나던해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 서민들의 아픔 정도는 모르고 자랐을것 같은 대갓집 도련님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이슈를 만들고 그 이슈들 한가운데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도쿄대 불문과 출신인 그는, 대지주의 아들에 대한 자책에 좌익운동에 가담하기도 하고 카페 여급과 자살시도, 게이샤와의 사랑으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마약성 진통제 중독, 이혼과 계속되는 자살시도, 그리고 결국 자살로 39년이란 길지 않은 생에 마지막을 고하게된다. 정말로 그의 인생 자체가 '끔찍'이란 단어와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이다.

 

파란만장한 삶, 비참한 최후. 다자이 오사무의 이런 삶과는 다르게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유쾌한 익살꾼'이었다고 그를 평가하는 현대의 시선들, 그를 통해 희망을 얻었고 추억을 선물받았다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작품속에 담긴 다자이 오사무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첫번째 만남으로 단편집 <굿바이>과 함께 한다.

 

이 작품 속에는 표제작 '굿바이'를 비롯해 '추억', '망치소리', '내 반생을 말하다' 등 모두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망치소리'이다. 스물 여섯살인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의 작품으로 전쟁의 패배와 함께 변해가는 변해버린 삶과 희망을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허무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표제작이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으로 미완의 작품이 되어버린 '굿바이'를 말할 수 있겠다. 결혼한 서른세살의 잡지 편집장 다지마 슈지의 '여자관계 청산기'라는 부제가 어울릴 이 작품은 코믹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 웃음과 재미를 전해준다.

 



 

'내 반생을 말하다'와 '추억'은 작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 형식을 취한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자신의 반생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들은 다자이 오사무를 알아가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고 현대인들에게 과거에 대해 추억하게 하는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독특한 구성을 한 '역행',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아침'. 각각의 작품마다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지닌 것이 아마도 이 단편집이 가진 색다름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듯언듯 그의 작품속에는 다자이 오사무, 작가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다. 자신의 삶을 말한 작품들은 물론이고, '굿바이' 에서는 '다지마 슈지'라는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본명인 '쓰시마 슈지'와 닮아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단순히 허구의 시간속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간과 그 시간속을 걷는 다자이 오사무와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청춘들이 원하는 무엇?인가가 들어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그는 내게 한없는 향수다. 내 청춘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속에서 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문학은 내 희망이었다.. 그 절망에 가득 찬 세계가 희망이었다는 역설 속에 나 자신, 아니 우리들 세대의 숙명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평론가 사코 준이치로는 다자이 오사무를 이렇게 평가한다. 근대 비평가들에게 그와 그의 작품은 '청춘'이라는 말로 대변된다고.. 태평양 전쟁에 패배한 일본, 그에 따른 절망과 좌절에 아파하던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온 작가의 신선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시간에 대한 희망과 좌절을 극복하는 힘을 선물하였다고 생각된다. 그가 살아온 험난한 인생 역정을 잘 아는 젊은이들에게 그의 작품은 그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낸 값진 승리 처럼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고통과 아픔속에서 웃음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파란 만장한 삶,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유머와 재치. 두 색깔이 극명하게 대립되면서 더욱 선명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 유쾌한 익살꾼, 하지만 유쾌하지만은 않은 삶을 산 비운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그가 살아온 시간동안 전해준 희망과 용기가 지금의 일본을 만들어나가게된 원동력이 되었을것이다. 패배주의에 빠진, 희망을 잃어버린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그와 같은 희망을 전해주는 작가가 필요해보인다. 웃음과 재치속에 희망을 전해준 다자이 오사무! 그를 기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