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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요시모토 바나나! 옆집 아줌마 같은 평범한 인상,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시공간의 놀라움을 사람들은 ’바나나 현상’이라며 난리들이다. 가족, 일상, 평범한 이야기들이 주요 소재로 사용되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 일상적인 언어를 친밀감있고 친근하게 대화하듯 써놓은 그녀의 이야기들은 편안함과 함께 뭔가 긴 여운처럼 독자들의 가슴속에 자리하게 만든다. ’사랑’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가 말하는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함께 걸어보자.
검은 긴머리에 새빨간 스커트를 입은 한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무슨 깊은 고민거리라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그녀의 이름은 ’유미코’ 이겠지. 유미코는 ’순순히 취직하고 결혼할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가족의 과거로부터 혼자만 도망쳐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든다.’ 는 말로 그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어떤 병원균처럼 더러운 존재로 인식하며 일도 안하고, 옛날 남자친구에게 돈을 빌어 생활하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어른이 된 사촌 ’쇼이치’가 불쑥 찾아온다.
자신이 엄마, 유미코의 이모인 쇼이치의 엄마가 유미코에게 힘이 되어주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쌍둥이였던 유미코의 엄마와 이모, 하지만 이모가 장사를 하던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한것이 계기가 되어 그 둘은 자매의 연을 끊고 말았다. 그렇게 되기 얼마전 엄마와 함께 이모의 집을 찾아갔던 유미코에게 이모는 ’언젠가 네가 곤경에 처했을때 너를 우리 아이로 데려올까 생각하고 있어’ 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자매의 연을 끊게된 이후 잘 나가던 유미코의 가정은 어느 한 사건으로 붕괴되고 만다.
종교와 비슷한 특수 단체 교조의 딸이었던 유미코의 엄마와 이모. 마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와서 공인된 백마녀가 된 할머니, 강령회에서 할머니의 잘못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상한 암시에 걸리게되고 그들이 집단 자살을 하게된다. 옷장속에 숨어 있어 다행히 살아남은 유미코의 엄마와 이모. 그 충격으로 그녀들은 클리닉에서 재활치료를 받게 되고 이후 성장해서 각자 가정을 꾸미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역사가 되풀이되듯 강령회를 하는 도중 유미코의 엄마가 이상해져 아빠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의 손으로 목을 그어 죽게된다.
이런 일련의 비극적인 가정사 속에서 유미코는 유산 하나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 단짝 같고 부러워하던 쇼이치가 그녀앞에 나타나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삶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기나긴 여행길을 떠나게 되는데... 가족, 죽음, 마음의 상처 등 그녀의 작품속에서 종종 다루어지던 소재가 어김없이 이번 작품 <그녀에 대하여>속에서도 그려진다. 가슴을 억누르는 마음의 상처를 쇼이치와 그녀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전반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전해준다. 죽음과 상처라는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소재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주인공 유미코의 쾌활한 성격만큼이나, 이야기 구성은 밝은 느낌속에 전개된다. 요시모토 바나나만의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도 작품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그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가족소설, 혹은 로맨틱 소설의 조금은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나 유년시절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속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이 공존함으로써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그렇게 드러나는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은 독자들을 소름돋게 하는, 특별함을 갖는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어.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고 상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살면서는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모와 쇼이치 덕분에 그 끝자락의 부드러운 감촉을 살짝 만져볼 수는 있었다.’ - P. 197 -
이 작품 <그녀에 대하여>는 네이버를 통해 연재된 작품이다. 연재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한번도 작품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멋진 한권의 책으로 만나게 된다. 네이버 캐스트에 있는 연재를 시작하고, 연재를 마치며 그녀와 나눈 대화가 남아있다. 이 책을 읽기전, 그리고 읽은 후라도 그녀와의 대화를 한번 만나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인상짖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연재기념 - 그녀,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하여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event/2967] , [<그녀에 대하여>의 연재를 마치며 요시모토 바나나와의 대화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event/3453]
이번 작품속에서도 작가가 주로 말하려하는 상처에 대한 ’치유’와 삶의 ’위로’는 두드러진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슬픈 일이 많은 시대, 특히 돈에 휘둘리기 쉬운 시대에는 암울함이 일종의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읽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책의 표지 위에 앉아 있는 한 소녀, 그녀의 상처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상처를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은 작은 위로를 담아내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와 김난주 두 콤비의 활약 속에 우리의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아물어간다.
사실은 조금 주춤하다고 느껴지는 ’바나나 현상’이 이 작품 <그녀에 대하여>를 통해 재현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 불황의 여파는 자기 계발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고, 문학에 있어서는 조금더 자극적인 소재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꾸준히 가족이란 소재가 사랑을 받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그녀는 다시한번 바나나 신드롬을 불러올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시선을 끄는 표지, 작가와 번역가 두 콤비의 펜끝,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그녀에 대하여>에 독자들의 마음을 고정 시킬것같다. 다시한번 그녀, 바나나 신드롬을 기대하며 작지만 신비롭고 무거운 이 책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