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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몽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들어 아동 성폭행과 관련한 사건들이 매일 톱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불안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 나는 이 현실속에서, CCTV가 범인을 잡는데 일조했다는 TV 뉴스 앵커의 말에 더욱 화가 나는건 나뿐일까.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고나서 범인을 잡는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물론 그것은 가족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미리 이런 유형의 사건을 예방하고 거듭되는 성폭행범들의 재범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물음만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린다. 아동들에 대한 이런 학대와 무차별 폭력은 계속 더해만 가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기만하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말해 봐.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는 거야?!'
더욱이 이런 사건의 피의자들을 살펴보면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이들이 많아 보인다. 성도착증, 다중인격 등 심리적인 요인들과 더불어 어린시절의 상처가 사건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불완전한 사회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또 다른 사건. 과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일까? 이 작품 <허몽>은 그런 불완전한 사회에 던지는 작가의 다양한 물음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흰 눈이 덮인 한적한 공원을 걷던 '사와코'와 그녀의 딸 '루미'. 단란한 이 가정에 갑작스레 찾아든 피 빛 어둠의 그림자. 공원에 있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집 근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후지사키'였다. 무참하게 살해 된 세살된 딸 아이 루미, 다행히 사와코는 죽음에서 어렵게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3년여의 시간이 흐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사와코와 남편 '미카미'. 어느날 미카미는 사와코의 전화를 받게 된다. 가정을 갈갈이 찢어버린 그 '후지사키'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는....
'형법 39조,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후지사키는 '통합실조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 통합실조증은 망각을 품게되고 환각을 보는 증상으로 공원에서 사건을 일으키던 그때, 후지사키는 자신을 괴롭히는 검은 안개를 처단하기위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고 한다. 형법 39조에 의해서 후지사키는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게 된것이다. 자신의 딸을 무자비하게 죽인 범인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면, 당신이 그 부모라면 어떤 심정일까? 그리고 그 범인이 어떤 처벌도 없이 유유히 일상의 삶에 숨어 들어 있다면....

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의 문제를 다룬 [천사의 나이프]로 익숙한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이번 작품 <허몽> 역시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사회의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거침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심신상실자 범죄'의 처벌과 관련한 이번 물음은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그 피해자의 가족의 입장이 되어서 스토리를 따라가고, 범인의 심리를 들여다보면서 사건을 읽고 재밌게 추리하는 구성을 띄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와 사회파 추리소설이 주는 메세지를 고루 간직한 야쿠마루 가쿠만의 매력을 여실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차별 살인은 저지른 후지사키가 사건의 커다란 축을 이룬다면, 그를 둘러싼 무차별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사와코와 미카미가 그를 쫓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카바레 클럽에서 일하는 '유키'와 후지사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사와코, 미카미, 후지사키와 유키의 시선을 오가며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좀처럼 쉴 새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와 심신상실자에 의한 무차별 살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학적, 법적 치밀한 구성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 구성의 한 축이 되는 '유키'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병폐를 여지없이 들추어낸다. 그녀가 던져주는 마지막 반전은 <허몽>의 또 다른 특별함이 된다. 그리고 사와코, 그녀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딸을 잃고 실의에 빠진 한 여인,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 그리고 그녀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써늘해진다. 법이 가진 한계와 법체계가 가진 문제점들을 작가는 이 마지막 편지를 통해 '복수'라는 이름으로 써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던지는 마지막 반전!에 독자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키에게... 잘 지내니? 밥은 잘 챙겨 먹고?...' P. 258
<허몽>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 안타까운 살인사건과 피해자들, 심신상실자 처벌문제, 사회적 문제점들에 대한 물음과 함께, 따스한 '가족애'를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유키의 엄마가 그녀에게 보내온 짧은 한 통의 편지... '밥은 잘 챙겨 먹고?....' 가깝지만 먼나라 일본이지만 이런 동양적 정서, 보편적 정서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사와코와 미카미에게서 보여지는 부부애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따스함을 한껏 느끼게 만든다.
"그럼 나는 누구를 미워하면 되는 거지?!" 미카미가 니시다 기자에게 던진 이 질문이 마음속에 여운처럼 오래도록 메아리친다. 아마도 <허몽>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가 아닐까? 후지사키도, 유키도, 사와코와 미카미도... 모두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가가 아닐까? 트릭과 추리,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불합리한 우리 현실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작가 특유의 매서운 펜끝이 재미와 더해져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따스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도 선물해준다. '야쿠마루 가쿠'! 그의 작품중 이제 두 작품 정도를 만났을 뿐인데 이미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 남자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