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6월의 마지막 날, 모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또 한번 사람들을 충격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하곤 문득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다. '사람의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하는... <환상의 빛> 속에 담겨졌던 이 구절이 입가를 멤돈다. 그도 혼이 빠져나갔던 것일까? 아마... 그랬겠지. 하지만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게 삶 아닌가? 혼이 빠져나갔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이런저런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 한편에 자리한 <환상의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서른 두 살의 유미코, 한 여인의 독백이랄까, 편지글이랄까... 그녀의 음성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이어진다. 지금은 재혼을 해 현남편의 아이 도모코와 전남편의 아이 유이치와 함께 사는 그녀. 칠년전 자살한 남편에게 말을 걸 듯, 이야기하듯 나누는 대화는 더없이 편안하기도 하고 서정적인 묘사로 눈앞에 그려지듯 다양한 풍경을,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전철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걷다 죽음을 맞이한 남편이 죽은 그날에서부터, 그녀가 처음 남편을 만난 초등학교 6학년의 추억, 재혼을 위해 소소기 해변마을로 가는 그녀의 여정 등을 남편에게 털어놓듯 이야기한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다.' - P. 10 -

 

길들여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일본 문학하면 많은 이들이 그렇듯 미스터리 추리소설에 목메는 버릇이 언제부터인가 생겼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미여사, 온다리쿠...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그들의 이름 뒤에 숨어서 조금더 자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반전과 트릭에 경악하고 즐거워하던 것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던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환상의 빛>은 오랫만에 '문학'에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편지글처럼 대화하듯 들려주는 한 여인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죽음을 두고 떠올리는 삶의 수많은 그늘과 빛속에서 잊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는 그녀의 이야기가 참 애절하면서도 따뜻하다. 표제작인 [환상의 빛] 이외에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등 모두 네편을 담아낸 이 작은 책을 통해 서정 문학의 정수를 이어가는 작가 '미야모토 테루' 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빗속에 잠깐 들른 서점에서 모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 했다는 미야모토 테루! 그가 읽었던 단편소설이 어떤 작품이었을지 무척 궁금하다. '현대 일본 서정 문학의 진수' 라고 불린다는 그의 이번 작품 <환상의 빛>은 그렇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어찌보면 요즘 사람들이 찾는 색다른 재미도 갖추지 않았지만 진정한 '이야기'만으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을것 같다.

 

사고로 외아들을 잃고 남편과도 이혼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밤 벚꽃], 오년전 죽었다는 학창시절 짧은 인연을 가진 친구의 소식, 그리고 어지러이 날던 박쥐의 모습과 현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박쥐], 침대차에서 떠올리는 어린 시절 가깝던 한 친구와의 추억과 그의 죽음을 그린 [침대차]... 하나같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고 조금은 무겁게 이끈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언제까지고 박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발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밀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 - P. 135 -

 

'죽음'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편들속에 그려진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특별한 사건에 집중한다기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그 시간을 한 폭의 화폭에 모두 담아 놓으려는듯 섬세하게 디테일을 살려 놓는다. 단편 [박쥐] 에서 박쥐들이 어지러이 나는 모습을 표현한 위의 짧은 글이 이야기의 분위기와 두드러진 심리 묘사를 잘 표현해준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말이다. 삶 또한 죽음과 작은 선 하나를 마주하고 서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쳐지는 '환상의 빛'이 죽음을 부르는 빛이 아니라 삶을 더 환하게 비춰줄 희망의 빛이 되길...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네편이 뿜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애절하고 잔잔한 서정적인 문장 문장이 가슴을 편안하고 따스하게 만든다. '익숙한' 기존의 일본문학과는 조금 달랐던, 그래서 더 느낌이 좋았던 '색다른' 환상적인 빛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야모토 테루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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