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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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상당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굉장한 흡입력과 곳곳에 놓여진 트릭과 작가와의 지적 게임, 그리고 마지막 반전의 묘미에 이르기까지 일본 추리소설의 매력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재미와 깊이를 보여준다. 가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 <명탐정의 규칙>을 통해서 ’추리소설의 법칙’, 혹은 ’탐정소설의 규칙’ 과 같이 일정한 틀에 얽매인, 판에 박힌 추리소설계의 관행?을 실랄하게 풍자, 비판하고 있다.

 

 



 

책속에는 모두 12가지의 추리소설이 담고 있는 고정적 패턴을 보여준다. 사건은 언제나 덴카이치 탐정이 해결하고 오가와라 반조라는 지방 경찰본부 수사과 경감은 이 탐정 시리즈의 조연 역할을 맡게된다. 12가지 사건, 12가지 추리, 일정한 패턴을 가지는 12가지 추리소설의 법칙을 통해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노골적으로 ’명탐정의 규칙’을 비판하고 있다. <명탐정의 규칙>에서 사건은 탐정이 해결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인물은 책 속 영원한 조연 반조 경감이다.

 

’곰팡내 나는 수수께끼를 읽어야 하는 독자도 안됐지만, 그런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하는 탐정 역시,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다.’ - P. 41, [밀실선언] 중에서 -

 

콧수염을 기르고 근엄해 보이지만 ’명탐정의 규칙’을 발설?하는 반조 경감의 이야기와 행동들에 터저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배역을 가장 힘든 역할이라고 말한다. 절대 범인을 잡아서도 안되고, 핵심이되는 사건의 열쇠는 번번히 놓쳐야하며, ’제대로 된’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는, ’명탐정의 규칙’을 위한 영원한 조연의 비애가 웃음을 자아낸다. ’아니, 그 아름다운 여인이 범인이었다니, 이거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라는 한심한 대사나 읊어야 하는 쓰디쓴 보조역 반조 경감!

 

하지만 명탐정이라고 아무런 제약이 없는것은 아니다. 소설의 중간쯤에 혹시 범인을 알아챘더라도 ’최후의 살인’이 발생할 때까지 딴청을 부려야 할 때도 있다. 알면서도 모른척 해야한다는 비애가 바로 명탐정이 갖는 규칙인 것이다. 명탐정의 비애 덴카이치 탐정! 이 비운의 주인공들은 ’명탐정의 규칙’에 따르기 위해 책의 마지막 자신들을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웃고 웃고 웃다가 결국 또 웃게 된다. <명탐정의 규칙>속 명탐정과 붙박이 조연의 비애, 그 슬픈 현실을 담은 ’밀실살인’ 에 대한 코믹한 대화를 잠시 만나보자.



"이 나이에 밀실, 밀실 하며 떠들어 대는 것도 민망해. 자네에게 맡기지. 어차피 마지막엔 자네가 해결할 것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별수 없지요.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분위기를 띄워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감님이 이렇게 나오면 저도 힘들어져요."..

"그 마음이야 알지. 하지만 요즘 세상에 밀실로 소설의 분위기를 띄우라는 건 한심한 요구야" .... - P. 30 -

 

[밀실선언]을 시작으로 해서 각종 트릭이 난무하고 의외의 범인, 살인 도구 이야기 등 ...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라면 종종 만나봤을 추리소설의 상투적 패턴들을 담은 이야기들이 독특한 재미를 전해준다. 작가는 반조 경감과 덴카이치 탐정의 유쾌한 대화속에 그 상투적 패턴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에 대한 성찰이자 반성인 것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될까?’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 싸구려 작가들의 일정 패턴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비판하고 그 자신에게는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채찍과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12가지 ’명탐정의 규칙’ 이외에도 마지막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해설’ 도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을 특별함을 선사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이 작품 <명탐정의 규칙> 에서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가 그 속에 담겨있다. 그의 다양한 작품들속에서 보여지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그가 추구하고자했던 추리의 유형, 기법들의 변화는 어떤지에 이르기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이 이 짧은 작품 해설에 담겨 있다.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본격추리소설의 제왕이라 부른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성공은 추리소설에서 고전적 요소가 아닌 ’추리’ 그 자체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형식이 아닌 의외성과 추리에 본질을 둔 그만의 작품 세계,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명탐정의 규칙> 12계단을 다 오르면 ’별것 아니네’ 하는 탄식이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추리소설을 찾는 시선을 선물 받게 될것이다. ’언제나 좀 더 다른 유형의 의외성을 창조하고 싶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정처럼, 작가들에겐 그를 뛰어넘는 열정이, 독자에겐 작품을 찾는 뛰어난 눈과 진심 어린 애정이 이 작품을 통해 생겨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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