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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우리는 보통 인간을 특별함을 지닌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특별함, 그 특별하다는 말의 의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직립보행으로 손의 자유를 가졌다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고, 이성을 가지고 더불어 자유로운 감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사실 또한 인간만의 특별함이라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눈물을 흘리는 존재,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함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그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고 활동한다는 사실이 또 다른 개체들과 구분되는 특징들로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특별하다. 아니 그렇듯 특별한 존재로 포장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인간의 특별함과는 조금 다른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이고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것이 있을까? 미래의 시간 2058년의 모습을 그린 한권의 책이 조심스레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건넨다. 인간이 가진 고귀함, 인생의 의미를 담은 독특한 색깔의 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뉴질랜드 작가 버나드 베켓이 창조해 낸 새로운 세계, 표지에서 보여지듯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막은 장벽(해양방벽)으로 둘러싸인 상상속의 이 나라가 인간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한 여자가 시험관 앞에 앉아 있다. 아낙시맨더!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관들과 마주선 그녀의 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역사, 그들의 새로운 창세기(Genesis)를 듣게 된다. 지구 멸망의 상태에 다다른 2030년대 말 종말론자들이 횡횡하고 원유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는 원유고갈로 대혼란을 맞게 된다. 기업가 플라톤에 의해 세워진 새로운 공화국은 외부세계와 소통을 차단하는 해양방벽을 세우게 된다. 전세계적인 역병으로 위험에 몰린 지구, 반면 공화국은 완전한 독립,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공화국은 노동자, 군인, 기술자, 철학자의 네계급으로 분류되고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사회체제를 이룩하게 된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떠나 성장하게 되는데 검사를 통해 제거되거나 특정계급에 배치 된다. 남자와 여자는 격리되고 결혼은 허가증명서를 받아야만 가능한 공화국! 아낙시맨더와 시험관들의 면접, 대화는 이런 공화국의 창조와 창조자 플라톤, 그리고 윌리엄이라는 철학자가 완성하려던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아담 포드라는 인물들의 관계, 그들의 창세기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미래를 그린 SF 소설을 넘어 그 속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설정 - 소크라테스 문답법의 형식 - 들이 시선을 끈다. 아낙시맨더의 입을 통해, 그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2058년 이후의 모습들은 충격 그 자체다. 원유의 고갈, 유럽 공동체의 붕괴와 봉기, 중국의 적극적 외교가 몰고온 갈등, 거대한 황사, 일본 중국동맹의 대기권 황산살포 프로젝트라는 미래의 세계를 그린 작가의 놀라운 상상은 미래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공화국의 해양방벽, 인공지능 로봇 아트, 아담과 이브... 색다른 상상과 설정이 독자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의 미래 모두가 시험관 앞에 앉아 있는 아낙시맨더, 그녀의 입을 통해 보여진다는 설정이 참 독특하다.
미래의 모습을 담아내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속에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는 철학적 깊이가 있다. 아담과 로봇 아트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인간이 가진 고귀성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앞선 질문이었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아트와 아담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조금은 깨닫게 될 줄 믿는다.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 아낙시만드, 헬레나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소설속 주인공이 아닌 작가가 담고 싶어하는 주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깊이있는 조명과 캐릭터 설정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역사를 갈등 속에서 파악하려는 견해에 많은 학자가 이의를 제기 하지만, 저는 그런 학자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가치관이 드러나는 때는 갈등 속에서가 아닐까요? 그 동안 큰 문제 없이 지내온 아담이지만, 무언가가 계속 아담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 P. 115 -
플라톤이 건설한 공화국의 강령을 보고 있자면 지금 우리 현실과 다르지 않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국가, 개인에게 이상만을 꿈꾸도록 만드는 국가의 모습이나, '변화는 곧 파멸이다'라는 그릇된 믿음을 심어 개인이 안주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게 만드려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공화국의 모습속에서 투영된다.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국민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려 하는 시간에 맞서 정치권은 항상 불안정한 상태로 국정을 몰아간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는 新공안정국이 아마 이들 공화국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말단 경계병 아담과 아담이 구해준 소녀 이브...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를 교묘하게 재창조해낸 작가적 구성이 돋보인다. 인간의 감성과 자유의지,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인 로봇의 대결 아닌 대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반전과 결말. <2058 제너시스>는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그속에 독특한 상상과 깊은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재미와 함께 철학적 깊이 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뉴질랜드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경험과 함께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 신선한 재미, 독특한 구성과 형식, 깊이있는 감동까지 ... <2058 제너시스>의 이런 특별한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