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 - 박완서 외 9인 소설집
박완서 외 지음 / 예감출판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이란 말처럼 우리 곁에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때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말이 또 있을까? 봄꽃이 흩날리다 어느새 새싹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 4월의 끝자락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읊조려본다. 노랗고 파란 나비가 날갯짓하고 붉고 푸른 꽃들이 한들대는 표지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10명의 여성작가들과 만난다. 그녀들의 색다르고 진솔한 사랑이야기는 잠시 잊고 지내던 사랑이라는 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과거의 첫사랑을, 잊혀진 사랑의 추억을, 지금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랑'을... 추억하고 떠올리고 인식하게 만든다.

 

이십대의 절반을 사랑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낸 지수, 그녀에게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색다른 느낌일거라는 환상이 있다. 초등학생시절 짝꿍이었던 이준의 엉뚱한 똥침 사건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그에게 지수의 결혼과 관련해 각서까지 받아들게 된다. 그리고 이준은 그렇게 지수 곁을 맴돌게 되지만, 지수에게 그는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터넷이 조금씩 보급되던 그 시절 프로그래머였던 지수는 인터넷에서 행복해지는 약을 찾는다는 '야스무사'라는 일본 남자와 만남을 갖게 된다. 왠지모를 호기심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게했고 그렇게 그와의 사이버 만남은 시작되었다. 낯선 소년에게 편지를 받는 소녀의 설레임... 오랜시간의 연락, 그리고 잠시간의 연락두절. 업무차 일본을 방문하게된 지수는 야스무사와 만남을 계획하는데...

 

유춘강 작가의 [러브레터]가 이 단편 소설집 <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에서 가장 마음을 끌었던 작품이다. 20대가 꿈꾸는 사랑의 환상과 현실을 웃음과 감동으로 재미있게 써내려간 이 작품에서 유춘강이란 작가를 처음 만나게된다. 책의 앞부분 사랑은 열대기후를 닮았다던 작가의 말에서 ...작열하는 태양, 혹은 미친듯이 쏟아지는 폭우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닮았다던...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써내려간 사랑의 이야기들조차 가장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똥침 사건으로 지수의 곁을 맴돌게 된 이준의 에피소드에서 한번 빵 터지고, 야스무사와 주고받는 이메일속에서 소녀의 호기심과 설레임을 간직한 지수의 모습에 매료된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결말이 주는 반전이 재미를 더해준다.

 

사랑의 분홍빛으로 새단장한 <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는 1997년 출간된 [13월의 사랑]이란 작품의 개정판이다. 당시 12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던 사랑이 지금은 10명이 되었고 조양희 작가의 [빈사의 백조]란 제목이 당시에는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변화는 없어보인다. 지금이나 당시에나 역시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던 박완서 작가의 작품 [그 여자네 집]이 가장 먼저 책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10명의 여성작가, 다양한 연령구성과 경력, 그보다도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향기와 색色을 품고 책을 물들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변화하듯이 사랑에 대한 느낌, 인식의 변화 또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이름을 대변하는 사람, 혹은 대상물이 있을 수 있다. 어린시절 첫사랑에게 받았던 연애편지, 교회라는 특별한 간을 통해 느끼는 사랑의 감정, 함께 처음 본 영화, 그녀가 건네준 작은 선물... 개인적으로 요즘 사랑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바로 '아내'다. 어느 작가가 그랬듯 '사랑은 아내입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나의 가슴속에 자리한다. 물론 언제 또 변할지 모르지만...

 

한편의 시속에서 떠오른 곱단이와 만득이의 가슴아프고 운명적인 사랑이야기 [그 여자네 집], 어린시절 상처를 간직한 정혜라는 여자의 일상속에 찾아든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 [정혜], 이혼한 엄마의 죽음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던 진실을 담은 [엄마 베네치아로 떠났다], 풋풋한 스무살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부는 날 우체국 가는길], 자신의 가정을 무참히 짓밟은 한 여인과의 위험한 동거 [길은 가야 한다], [오진]이라는 직설적인 제목에서 [빈사의 백조]라는 이름으로 바뀐 의료사고로 죽은 아내이야기를 다룬 작품 등 ... 엇갈린 사랑, 사랑보다는 연민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랑, 그리고 용서를 다룬 작품 등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벌써 10여년이 지난 시간의 흐름을 책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이애나 비와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 인터넷 보다는 공중전화가 작품의 소재로 주로 사용된다는 사실들이 그렇다. 인터넷을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이야기는 어느새 구식이 되어버렸고 공중전화를 붙잡고 저 너머 선끝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가슴 설레여하던 기억은 이미 아득한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촌스럽고 유치하다기보다 그 시절의 기억들은 다시금 우리에게 사랑의 설레임과 과거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순수하고 기다릴줄 알고 사랑할 줄 알던 그 시간을 추억하게 한다.

 

물론 그녀들의 작품이 오래전 이야기들이라 해서 풋풋한 핑크빛의 사랑만을 담고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의 사랑은 가끔 섬뜩하기도 하고, 동성애를 다뤄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아픔과 용서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각기 서로 다른 색깔로 덫칠해가는 사랑의 이야기들이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이 시점에서도 전혀 어색하지도 서툴지도 않아보인다. '사랑'이라는 소재, 주제가 만들 수 있는 색깔은 과연 얼마나 다양할까?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 잠시 사랑에 주춤거리는 이들,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그녀들의 다양한 사랑의 색色을 전해주고 싶다. 잠시도 멈추어있지 않고 언제나 변화무쌍한 '사랑'이란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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