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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평점 :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한 두툼한 책 한권과 마주한다. 비채의 블랙&화이트 시리즈 그 스무번째(020) 작품인 이 책은 일본의 '신본격 추리소설'을 선두하고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다. 노리즈키 린타로, 신본격 추리소설... 일본 추리소설들을 즐겨 만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는 추리소설의 역사와 작가들에 대해 찾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이 작품을 펼쳐들기 전에 먼저 갖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크게 본격파와 사회파 추리소설로 구분된다. 본격추리소설이 탐정이 등장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구성이라면 사회파, 혹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주로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요코미조 세이시가 전자에 속한다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것 같다. 그렇다면 노리즈키 린타로의 신본격 추리소설은 어떤 특징을 띄는 것일까? 신본격은 다시말해 독자와의 두뇌 싸움이 그 관건이라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여러가지 트릭들을 통해 쉴새 없이 독자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퍼즐형 추리소설을 바로 신본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5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에 빛나는, 신본격파를 선도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 소설의 첫장을 펼쳐 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소설은 우선 그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가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인 그는 작가이자 탐정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는데 이는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 엘러리 퀸의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와 그의 아버지 노리즈키 경시가 풀어가는 사건과 사건의 진실. 이제 그 비밀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려본다.
사건은 어찌보면 단순한 구성을 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위 조각가인 가와시마 이사쿠는 라이프 캐스팅 작품인 '모녀상'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라이프 캐스팅이란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만들어낸 조각품을 말하는데... 오랫동안의 공백을 깨고 자신의 딸(에치카)을 모델로 신작을 만들고 있다는 그가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장례식 직후 완성된 작품의 머리가 사라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으로 번역가 일을 맡고 있는 가와시마 아쓰시는 이 사건을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의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와시마 가족들은 석고상의 머리가 사라진 것이 에치카 양의 살인 예고가 아닐까 걱정하게 되고, 노리즈키 린타로는 사라진 석고상의 머리와 연관된 인물들, 과거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추리를 시작하게 된다. 석고상의 머리를 가져간 인물을 누구이고 정말 그것이 에치카의 살인을 예고하는 범행인지... '모녀상' 연작과 에치카의 모습을 담은 가와시마 이사쿠의 유작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노리즈키 린타로는 하나하나 그 비밀을 파헤쳐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사건이 발행하게 되고, 사건은 점점 더 독자들을 미궁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과연 린타로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죽은 가와시마 이사쿠의 추모전을 성공으로 이끌려는 큐레이터 우시마 쇼진, 사진작가 이면서 과거 에치카의 스토커 노릇을 했던 도모토 슌, 에치카의 아버지 가와시마 이사쿠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구니모토 레이카, 에치카의 생모인 리쓰코의 현남편인 가가미 준이치... 사건이 벌어지고 독자들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시선을 따라, 혹은 그 시선과는 별개로 범인이 누구인지, 자신만의 추리를 시작하게 된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유작이 사라진 이유와 범인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면 유작이 사라짐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니면 과거 원한에 의한 에치카에 대한 살인을 예고할 인물이 있는지...
사건이 벌어지고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는 초반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쩌면 독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신본격 추리소설' 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이야기는 도전적으로 수많은 '트릭'을 통해 점점더 독자들의 추리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게임을 즐기듯 더 많은 사건의 개연성과 다양한 추리를 만들어낸다. 사건과 연관 지어진 인물들의 대화속에서 독자들은 사건에 대한 실마리보다는 더욱 깊어가는 시름과 마주하게 된다. 그만큼 치밀하고 개연성있는 등장인물들의 주장과 추리가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을 일어났을까? 범인이 누구인지와 더불어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라는 물음일 것이다. 누구?를 쉴새 없이 쫓다가도 왜?라는 문제와 맞다아서는 또 다른 물음표들과 마주치게 된다.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그 물을표들을, 왜?라는 질문을 한순간 해결해주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인, 살아있는 작품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트릭, 그리고 반전... 책의 중반 독자들은 울상을 지으며 정말 잘린 머리에게라도 진실을 물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그 잘린 머리안에 그 대답들이 모두 들어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가와시마 이사쿠는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은 작품에 왜 '모녀상'이란 이름을 붙이려고 했을까? 원래 가와시마 이사쿠의 작품에 머리가 없었다는 우시마 쇼진의 말은 사실일까? 우사미 쇼진에게 돈을 요구한 도모토 슌이 정말 범인? 마치다 시의 전화번호에서 산부인과를 찾던 에치카에게는 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책속에서 노리즈키 린타로가 그랬던것처럼 지금 전하는 이런 힌트들은 아마도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책과 만나는 시간동안 더 많은 물음표가 되어 되돌아올것이다.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 책의 마지막 기시 유스케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서 노리즈키 린타로가 써내려간 이 작품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를 읽으며 입속에 머물던 '오해' 라는 단어에 '아!' 하는 감탄사를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작품속에 뭍어있던 다양한 뒷이야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사건과 단서들을 열거하고 하나씩 소거해가는 그만의 특별하고 인상적인 추리의 방식에 빠져들게 된다.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정말 이 미스터리...이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 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