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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가 돌아왔다! 싱그러운 웃음과 재치, 사회를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쾌한 웃음을 전해주는 그 이름이 다시 우리 곁을 찾았다. 최근 [오 해피데이]를 통해서 가족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전해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조금은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오쿠다 히데오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닥터 이라부인것처럼 기존의 그의 작품들은 독특하고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캐릭터보다 이야기에, 이야기속에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미된 조금은 오쿠다 히데오 답지 않은? 작품으로 그는 우리를 찾는다.
'이제부터 아주 좋은 일만 생길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스물네살이고, 전후 일본은 아직 스무살도 안 되었다. 주위의 모든것이 청춘인 것이다.' - P. 20 -
1964년! 오쿠다 히데오를 사랑하는 독자들중에는 소설의 배경이 된 그 시간,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듯도 싶다. 도쿄올림픽! 기억조차 없는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서 오쿠다 히데오는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올림픽의 몸값>, 제목이 참 독특하다. 올림픽의 경제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테고, 올림픽을 상대로 인질상황을 연출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문을 가득 담은 제목과 함께, 오쿠다 히데오라는 이름앞에 밀려오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든다.
'나는 도쿄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다. 며칠 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요구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 - 소카지로 -
전후 일본,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1964년 일본에서는 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준비로 들떠있는 일본의 도쿄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다. 경시청, 올림픽 경비본부 최고 책임자의 사저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시작으로 경찰학교에서 또 다른 연쇄 폭파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경시청으로 날아든 한통의 편지. 자신을 소카지로라고 말하는 범인은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며 계속된 테러를 예고하고 있다. 소카지로라는 인물은 올림픽이 있기 몇년전부터 연쇄 폭파사건을 일으킨 인물로 올림픽을 준비하는 경시청은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특별 수사팀을 구성하게 된다.
<올림픽의 몸값> 은 '4개의 시선'속에 이야기를 담아낸다. 소카지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시청 수사과 5계 형사인 마사오, 올림픽 경비를 맡은 스가 경시감의 둘째아들인 다다시, 형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도쿄 대학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엘리트 구니오, 그리고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사건과 인물을 연결시키는 역할의 19살 회사원 요시코... 10월, 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기 2달 전인 8월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방송국 PD인 다다시, 그와 도쿄대 동창이었던 구니오의 만남이 있었던 시간 즈음에 발생한 폭파 사건을 시작으로 해서 '소카지로 사건'으로 명명된 이 테러 사건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 나간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웃음과 경쾌함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성 짙은 스토리, 서스펜스와 스릴 넘치는 이야기 구조가 색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축제를 통해 보여지는 화려하고 웅장한 외면, 그 속에 가려져있는 상처를 저자는 하나의 사건과 다양한 시선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들을 가려갈수록, 고통 받고 신음하는 삶들이 더 많아진다. 우리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올림픽과 아직도 생생한 월드컵의 기억들을 통해서 1964년 도쿄의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002년 월드컵과 88올림픽! 88올림픽은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어린 시절이었기에 특별한 경험이나 기억들이 흐릿하지만, 우리나라를 세계속에 알리고 세계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첫발을 내딛게 된, 국제대회 이상의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올림픽을 위해 들였던 국민들의 땀과 노력, 하나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한듯 하다. 그리고 우리가 지니고 있던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를 전 세계에, 아니 우리 자신에게 새롭게 보여 주었던 2002년 월드컵은 언제나 커다란 감동과 벅찬 기쁨이 되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눈물이 있었다.
88올림픽 고속도로주변에 자리하던 가난한 이들의 판자촌이 경관 개선이란 명목하에 철거당해야했고, 서울의 달동네에서 살던 많은 이들이 집을 잃고 신음해야했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화려함과 대의명분속에 가려져 당연한듯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희망이 되는 역사적 사건, 하지만 반대편에 선 누군가에게는 눈물이 되고 아픔으로 기억된다. 2002년 월드컵이 우리에게는 붉은 색으로 점철되는 열정과 환호가 가득한 시간이었다면, 서해교전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슬픔과 눈물의 시간으로 기억 될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대의 명분속에 가려진 소시민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의 시선속에 새롭게 태어난다.
'문명에 있어서는 진보도 후퇴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문명은 전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구조화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레비 스트로스 -
형의 죽음으로 인해 뛰어들게 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의 삶속에 자신을 맡긴 전도 유망한 엘리트 청년. 그가 올림픽이라는 국제적 행사를 상대로 벌이는 투쟁이 그 시작을 알린다. <올림픽의 몸값> 1권에서는 소위 소카지로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이 4명의 시선을 통해 그려진다. 아니 아직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을 알리고 있지는 않다. 엘리트 청년은 왜 그런 일을 벌여야 했고, 소카지로 사건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사실, 모두가 생각하는 엘리트 청년인 그가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것이 사실이다. 다만 과거의 행적을 통해 현재의 소카지로 사건을 설명하는 구조속에서, 두개의 시간적 흐름은 범인이 누구인지 어느정도 명백한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소카지로 사건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네명의 시선속에 담아 낸다. 특정한 날짜들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각 장들은 단순한 시간적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주인공들의 시선을 따라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형사, 부르? 청년의 시선이 그려가는 도쿄올림픽과 1960년대 일본의 현실, 그리고 사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게 될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등 조금은 무거운 소재지만 오쿠다 히데오가 펼쳐내는 독특한 구성과 이야기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을 통해 재미를 더해준다.
올림픽을 앞둔 1964년 도쿄의 생생한 모습이 저자의 펜끝을 통해 보다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런 섬세하고 사실감 넘치는 묘사는 우리의 과거 경험속에서 고스란히 찾을 수 있어 공감을 더해준다. 2002년 월드컵의 경제적 가치는 부가가치 유발, 국가브랜드 홍보,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 등 모두 합쳐 25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쿠다 히데오가 벌인 1964년 올림픽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책을 내려놓을 즈음 독자들은 아마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커다란 가치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가 말하려는 소중한 가치, 두 번째 책을 내려놓을때쯤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까?
오랫만에 만난 오쿠다 히데오! 그는 역시 오쿠다 히데오였다.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웃음끼를 빼버렸지만 이전의 매력을 뛰어넘는 스릴넘치는 구성과 퍼즐을 맞추는듯 즐거운 추리와 매력적인 이야기는 '역시!'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현 시점에서 나의 최고 도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던 오쿠다 히데오, 이제 그의 이런 다짐이 앞으로 이어질 다음 이야기를 통해 온전히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기대를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오쿠다 히데오, 그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