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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주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오랫만에 그의 작품을 만난다. <교통경찰의 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자동차나 자전거, 도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다툼과 사고들을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섬세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만들어낸 여섯편의 이야기가 이 작품속에 들어있다. 10년전! 세상도 바뀌게 한다는 긴 시간, 그 시간을 거슬러간 작품인지라 자동차 운전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이 바로 '초보운전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은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일것같은 이 작품과 만난다.
[천사의 귀]를 비롯해서 모두 여섯편의 단편이 담겨있는 이 작품은 교통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그 사고의 원인과 사고의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형식을 띈다. 외제 승용차와 노란색 경차의 교차로 충돌사고, 중앙분리대를 넘어 사고를 낸 트럭사고, 초보운전자를 뒤에서 놀리다 사고를 내게된 남자이야기, 불법주차로 세워둔 차에 사고를 내고 도망친 남자, 몇일후 자신이 사고낸 당사자라고 밝히고 차를 수리해주겠다고 한다. 앞차에서 무심코 던진 빈캔이 만들어낸 사고, 한밤중 자동차와 자건거가 부딪혀 자전거 운전자가 죽게되는 사고 모든것이 명확한 이 사고에 숨겨진 비밀이....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고, 운전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종종 보아왔던 모습들이 책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건 사고속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별함을 만들어낸다. 시각을 잃은 소녀의 천부적인 귀, 천사와 같은 귀에 감탄하지만 머지않아 멋지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독자들... 빈 캔 하나 때문에 눈을 잃어버린 약혼자,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 남자는 결국 범인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지만 의도치도 못했던 행동이 통쾌한 복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설픈 초보운전자를 놀리던 뒷차의 테니스코치 대학생은 초보운전자의 완벽한 복수 앞에 꼼짝없이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교통사고와 그 처리과정속에서 드러나는 교통법규의 문제점, 그 문제점들이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자신의 몸을 내던져 풀어내려던 희생과 사랑의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들을 죽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 '용서'를 실천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 단순히 도로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선에 담긴 이야기들은 특별함이 되어 그의 펜끝에 되살아난다.

예측불허! 이 한마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보운전작인 <교통경찰의 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번 그의 작품들을 보면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떠오른다. 평범하던 상황하에서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확대되는 이야기들이 바로 이 영화를 떠오르게 만드는것 같다. 도로 상의 모든 것이 흉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얼마나 우리를 무섭게 만들고 아프게 만드는 괴물 같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쉽게만 보아왔던 자동차와 도로,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쉽게 보아오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공포가 되고 아픔이 되어버린다.
교통사고라는 테마로 묶인 여섯가지 이야기. 각 단편속에는 서로 다른 교통경찰들이 등장한다. 교통사고라는 소재를 다룬 연작이기에 두명 정도의 경찰이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처리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고는 단순히 한 지역에서가 아니고, 그 문제를 처리하는 교통경찰들도 중복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현실성을 그만큼 반영하기 위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배려와 고민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보다 현실적인 교통사고라는 소재, 특정한 주인공을 없앰으로써 리얼리티를 더욱 살리려는 작가의 고민이 살짝 엿보인다.
<교통경찰의 밤>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그리고 그를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특이한 이력답게... 공대를 다니고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가진... 그는 교통 사고의 원인과 범인을 찾는 과정속에서 섬세한 분석과 치밀함을 보여준다. 신호의 간격과 맹인들을 위한 신호기 멜로디 소리의 분석, 편의점 영수증을 보고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는 치밀함, 빈 캔을 던진 앞차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섬세함... 그리고 모든 단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반전의 미학...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탄성이 여운처럼 남는다.
오랫만에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재가 아닌 10년전 초보운전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작품속에서 10년전 자신의 열정을 보았다고 말한다. 지금 그의 작품들이 조금더 찬란하고 화려하고 더욱 치밀하다면 10년전 그의 작품은 섬세함과 열정이 넘치는 매력으로 뭉쳐진듯하다. 단순한 도로위의 사건 사고들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재앙과 공포에 대해 새삼 뜨겁게 느껴보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만한 소재들이 다시는 누군가에게 비수처럼 다가오지 않기위해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이 작품은 전해준다. 열정으로 가득찬 초보운전자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