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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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즐거운 나의집], [바리데기], [남한산성]...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베스트셀러 소설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주로 가족과 사랑을 다룬 현대물과 역사팩션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사람들 특유의 끈끈한 '정情' 이나 '사랑'이 아니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독자들의 선택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본 소설하면 생각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에서 코믹, 공포, 판타지를 넘나드는 다양성에 비해 한국 문학은 아직도 수평적 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사실이다.

 

독자들은 이제 새로운 것은 원한다. 누군가는 오늘도 일본소설 코너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2006년 교보문고에 따르면 일본 소설은 시장점유율 31%를 기록하며 한국소설의 점유율을 추월했다고 한다. 2003년 15%에서 계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일본소설은 조금 주춤한 정체현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작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으로 또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일본소설의 인기비결은 앞서 말했듯 다양한 소재와 인기작가들의 활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천년의 침묵> 이제 우리가 원하던 그런 새로움이 찾아왔다. 우리의 역사가 아닌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 이선영 작가의 <천년의 침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a²+b²=c²' 학창시절 수도 없이 외웠던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바로 우리에게 새로움을 전해 줄 작품의 소재이다. 그리스 도시국가 크로톤, 바다에서 떠오른 시체, 죽은 디오도로스는 바로 현자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제자 였다. 그의 죽음을 단순한 자살이라 치부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의 동생 아리스톤은 미심쩍은 형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학파에 입문하게 된다.

 

'지키고 싶은 것,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아지면서 현자의 눈은 한곳을 오래 바라볼 수 없는 눈이 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남의 속내를 훑는 눈이 되었다. 손에 쥔 권력이 커질수록 무서운 것도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두려움 없는 눈이 무서웠다. 한때는 현자의 눈도 그랬으리라. 그러나 그 순수는 십여 년 전, 마지막 지식 여행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 P. 214 -

 

피타고라스, 히파소스, 아리스톤, 테아노, 킬론... 등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멋스러움과 현자라고 추앙받는 이의 추악한 이면, 모두가 수학이라면 머리아파했던 경험에서 벗어나 즐거운 수학여행과 추리를 가능케하는 추리소설의 묘미가 책속에서 샘솟는다. 형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리스톤, 피타고라스와 연관된 음모와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이 쉴새 없이 독자들을 책속에 밀어넣는다. 그 누가 그 즐거움에서 쉽게 책을 놓아버릴 수 있을까....

 



지적 추리를 더욱 즐겁게하는 갖가지 도형과 서판, 지도와 도면들이 그 시대 기원전 5~6세기 고대 그리스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멋스러움을 전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책이 전해주는 친절함이다. 외국소설을 읽을때 가장 어려운 점중 하나는 바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알아가는 일이다. 익숙치 않은 이름들, 낯선 배경들이 가끔은 책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초반 등장인물들의 간략한 설명과 아카데미 내무 모습등을 자세하게 전해줘 보다 쉬운 책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낯선 시대, 새로운 인물들을 소설속에서 창조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담은 작품들도 그럴진대 고대 그리스라는 소설적 분위기와 인물들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책의 마지막부분 그녀가 참고 했던 문헌들을 살펴보아도 이 작품을 기획하고 써내려가면서 흘린 땀의 양이 어느정도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다른 유명 작가들이 되살려낸 역사의 한장면과는 분명 아쉽고 부족한듯한 부분들도 눈에 들어온다. 조금더 세밀하고 그 시대를 연상시키는 보다 치밀한 묘사가 아쉽기도 하지만 첫 작품이면서 이런 특별한 소설을 우리에게 선물한 그녀의 노력만큼은 그 누구도 쉽게 볼 수 없으리가 생각된다. 불편한 몸, 하지만 장애가 아닌 오히려 더욱 넓고 광할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 낸 그녀의 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늘날 그리스의 사모스 섬에는 신처럼 추앙받았으나 끝내 신이 되지 못한 현자 피타고라스의 동상이 직각삼각형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솟아 있다.' - P. 293 -

 

머리부터 아파했던 '수학' 이라는 이름! 하지만 이 작품 <천년의 침묵>과 마주하고는 조금은 친숙해지고 즐거운 수학이 되었을 줄 믿는다. 조금은 정체되어 있는 한국문학, 수평적이며 다양성을 잃어버린 한국문학에 새로운 활력과 가능성을 열어준 이선영 작가의 열정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보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이든다. '정情'과 '사랑'의 이야기 말고도 성공하고 사랑받는 다양성이 인정받는다면 다른 작가들의 또 다른 열정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이 한편의 지적 미스터리가 도미노처럼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길 희망해본다.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직각삼각형을 완성하기 위해? 손을 길게 뻗고 있는 신이 되지 못한 현자의 모습...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학도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 아직 이어지지 못한 한 선에 이선영 작가는 그 선에 다가가기 위해, 그 선을 연결시키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조금더 한국문학을 연결시키고 완성시켜줄 그녀의 열정이 가득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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