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린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함께 동심이 자란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을 시간 즈음부터 동심은 조금씩 마음속에서 자리를 잃어가지만... 어느순간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을때, 어른들은 어린 시절 흑백 사진속 아이같은 수줍은 미소를 띄며 즐거워한다. 예전 물건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한장의 사진속에서, 오랜 옛 친구를 만나 어린시절 추억의 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 하던 중에, 혹은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되살리는 작은 책을 통해서... 어른들은 그렇게 순수한 동심과 만난다.
별닦이가 필요하신 분~~!!
독일에서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랑나무' 전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나무의 빈 구멍이 사랑의 서신을 교환하는 우편함이 되었다는... 사스케도 심부름센터에서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3 쇼타. 그는 아다치 선생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랑나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다치 선생은 자원봉사를 나온 여학생들에게 사랑나무 전설을 들려주었고 아이들의 요청으로 히로마치 숲에 있는 신목으로 알려진 벚나무가 이런 사랑나무의 역할을, 아다치 선생은 아이들 사랑의 상담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서 찾아온 토끼 신선'이라는 기묘한 이름과 함께... 거기에 쇼타는 정령의 조수 역할로 아르바이트를 하게된다.
'이 세상에 우연한 일이라는 건 없어.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지. 만날 만하기 때문에 만난 거야. 남자와 여자의 인연도 그렇고, 너와 아다치 선생도 그렇겠지? 만남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은 뭔가를 배우게 돼. 가장 중요한 건 그런 때,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거 아니겠냐?' - P. 162 -
<일억 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하나는 독일에서 유학 온 마리라는 소녀가 아다치 선생의 손녀라는 사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이자 마리의 아빠 도시히코와 연결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사스케도 심부름 센터의 딸 케이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다루고 있다. 케이의 엄마 구미, 아빠 사스케와 독신녀인 요코, 그리고 아다선 선생의 아들 도시히코 사이에 복잡하게 연결된 사각관계속에서 케이의 진짜 아빠가 누구이고 그들 사이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더불어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들 사이에 싹터가는 '순수한 사랑'도 이야기의 커다란 축을 이룬다. 벚나무 신선과 사랑나무 소녀 사이에서 편지를 연결해주던 쇼타에게 조심스레 찾아오기 시작한 사랑이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첫사랑의 순수하고 청초한 향기와 모습으로 은은한 미소를 전해준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흑백사진으로 자리한 아름다운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보고 잠시 잃어버렸던 동심의 날개깃을 메만져보는 시간도 갖게된다.

사랑나무의 전설, 그리고 별닦이 토끼!
오케스트라에서 해고된 아빠가 걱정인 쇼타, 자신의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 출생의 비밀때문에 고민하는 케이, 자신의 아빠를 찾아 일본으로 유학을 선택한 마리, 조심스레 케이에게 사랑은 고백하는 우에쿠사, 부모의 이혼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이 마사유키... 이 책속에는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 수많은 고민과 아픔을 겪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우리와 현재 시간속의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보게 된다.
<일억 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속에서 단연 빛나는 캐릭터는 바로 쇼타다. 쇼타의 섬세하고 치밀한 추리와 사건을 해결해가는 탁월한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야마자키씨의 돈을 훔쳐갔다고 누명을 쓴 마리의 사건을 사스케씨와 함께 해결하고, 사라진 마사유키를 찾아내고, 가출한 케이가 남겨둔 'again' 이란 글자로 그녀를 찾고, 그녀의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등 쇼타의 종횡무진 활약은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듯 즐거움을준다.
테니스부원들은 코트에서 토끼뜀을 뛰고, 케이와 쇼타가 바라보던 하늘에는 토끼귀 모양의 빨간별이 있고, 사랑나무에는 토끼 신선이 살고, 도시히코씨가 쓴 방송극에는 별닦이 토끼가 등장하고, 케이가 돌려준 흰장갑에는 작은 토끼 그림이있다. 쇼타의 꿈속에, 현실의 환상속에도 별닦이 토끼가 간혹 모습을 보인다.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아이들의 시간을 토끼라는 존재속에 투영하고 있는듯, 토끼는 아이들의 이야기속에 유쾌함과 어떤 삶의 이정표와 같이, 혹은 사랑의 매개체가 되어 뛰어 다닌다.
저자 나스다 준은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고 한다. 주로 소년시절을 테마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독일에 거주한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된 소재로 쓰인 '사랑나무와 별닦이 토끼'의 전설이 독일의 전설이라는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는듯 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어린 성인들이나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부담감없는 동화작가가 바로 나스다 준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제 아빠라는 이름을 얻게되는 시점에 만난 나스다 준이라는 작가, 그래서인지 더욱 관심이 가고 마음속에 자리한다.
'산타클로스의 존재 따위, 나는 이제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믿을 수 있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 P. 303 -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다는것은 이미 마음속에 동심을 잃어버렸다는 말일것이다. 아다치 선생이 들려주던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요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라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더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않는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 하지만 그들 조차도 산타클로스가 영원히 살아있기를 마음속으로는 바랄것이다. 입속에 넣은 캔디 한알이 샘솟게하는 달콤함처럼, <일억 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은 우리가 잊고 있던 추억속의 동심을 다시금 되살아나게끔 하는 '한알의 캔디' 같은 소설이다.
성장소설, 혹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일억 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우리에게 그렇게 잊혀진 순수와 동심을 선물한다. 어디선가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포장하고, 별닦이 토끼는 누군가의 사랑을 위해 오늘도 별을 닦고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