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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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엇갈린 두가지 기억이 있다. 몇년전인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등석에 당당히 자리 잡았으나 결국 몰려오는 졸음에 침까지 흘렸던 기억이 그 하나이고,  '클래식'이라는 좀처럼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던 장르를 듣고 쉽게 이해하고 즐기는 음악으로 관심갖게 해 준, 보이지 않지만 한층 두터웠던 벽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바로 그것이다. 태교음악에서나 필요할 듯 하던 클래식이 이제 조금은 우리 가까이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드라마를 넘어 문학속에서 그 즐거움에 조금더 다가선다.

 

파가니니, 19세기 제노바 출신의 바이올린 천재... 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천재적인 바이올린 연주로 당대 그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라는 칭송?을 듣기도 했다는 그의 바이올린은 그를 비롯해 지금까지 적어도 여섯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최근 죽음을 맞이한 천재인 아네 라라사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과 죽음, 그것이 진정 우연인지 아니면 아니면 악마의 저주인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파가니니는 단절이자 심연이고, 공중 도약과도 같아요. 바이올린의 기나긴 역사에서 별안간 튀어나온 비약적인 도약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죠. 그는 발전이 아니라 혁명이에요.' - P. 14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서거 추모일인 5월 27일을 택해 연주회를 연 스페인의 바이올린 연주가 아네 라라사발, 그녀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제24번'을 연주하고는 코러스홀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의 가슴에는 '이블리스'라고 아랍어로 적혀있다. 무슬림들이 악마를 지칭하는 이름때문에 사건은 급진주의 이슬람교도들의 범행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살인사건과 함께 라라사발이 연주하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사라진다. 범인의 목적은 파가니니가 사용하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훔치기위해서 인지, 아니면 라라사발과의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인지... 조금씩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기 시작한다.

 

아네 라라사발의 연주회에 아들과 함께 관람하던 페르도모 경위는 사건이 일어나고 가장 먼저 사건 현장을 확인하지만 사건은 또 다른 형사에게 인도되고만다. 사건을 쫓던 살바도르 경위가 어느날 원인모를 차량 폭발사고로 죽게되고 사건은 페르도모 경위의 손에 들어온다. 이 사건의 단서는 사라진 바이올린과 코러스 홀에 있던 라라사발의 악보, 그리고 그녀의 몸에 쓰여진 아랍어 '이블리스'가 전부이다. 페르도모 경위는 이 단서들과 그녀 주변의 인물들... 약혼자 레스칼리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호안 예도, 아네의 매니저인 동성애자 카르멘, 아네의 라이벌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산토리 고토... 등을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를 진행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악마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얽힌 전설은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을까? 



[악마의 바이올린]은 우리에게 클래식이라는 무겁고 약간은 어색한 음악장르에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갈 기회를 제공해준다. 악마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과 파가니니라는 천재 음악가의 삶과 관련해 클래식 역사가 담고있는 재미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 재미로 이끄는 하나의 힘은 바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적인 매력일것이다. 살인사건과 사라진 유명 바이올린, 그리고 몇가지 단서들... 그것들을 쫓는 재미속에서 클래식의 매력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것이다.

 

아네의 죽음과 파가니니의 생애... 사건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더불어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오고간다. 초자연적인 힘과 사건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영매의 활약,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소유했던 이들과 5월 27일의 죽음이라는 우연성, 페르도모 경위가 느끼는 입면환각과 같은 특이한 증상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에 간혹 혼선을 주기도하고 우연이라 치부하기 힘든 필연과 같은 특수성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재미가 추리소설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밤 나는 악마와 밀약을 맺는 꿈을 꾸었다. 내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악마는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내 곁에 있겠다고 맹세했다. 꿈인데도 갑자기 기지가 발동해 나는 악마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며 음악을 연주해 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악마가 연주하기 시작한 음악은 더할 수 없이 절묘했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영감으로 가득했고, 아름다워 연주 내내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P. 255 ,주세페 타르티니의 [악마의 드릴]이라는 부제가 붙은 바이올린 실내악곡 -

 

[악마의 바이올린] 저주받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얽힌 살인사건, 실제 인물들과 허구로 짜여진 인물들이 주는 재미와 환상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야기의 후반 갑작스런 범인의 자백에 가까운 사건의 해결에 다소 당황스러운것이 사실이다. 조금더 치밀하고 섬세한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클래식을 통해 미스터리를 풀어가고 몇가지의 트릭들을 통해 사건 해결에 다가가는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장치들의 매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의 저자인 조셉 젤리네크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고 한다. 그런 그의 경력이 그가 창조해낸 미스터리 작품속에서 보다 치밀하고 음악적 교양과 재미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직 조셉 젤리네크의 [10번 교향곡]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는 이 작품도 꼭 만나보고 싶어진다. 미스터리가 가진 헤어나올 수 없는 즐거움에 더해, 클래식에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고 친해질 수 있다는 두가지 매력을 가진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버린듯하다. [악마의 바이올린]을 통해서, 클래식 미스터리의 거장! 조셉 젤리네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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