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서커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통해 16세기 네덜란드를 우리 눈앞에 정교함으로 펼쳐 보이며 너무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던 트레이시 슈발리에, 그녀가 이번에는 18세기 조지왕 시대의 런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런던의 거리 풍경이 책에 담긴 활자 하나하나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중세풍의 멋스러운 건물들, 쉴 새없이 분주한 사람들, 그 한쪽에선 오늘 저녁 서커스 공연을 알리는 퍼레이드가 한창이고, 구경꾼들의 다양한 모습들도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복잡한 런던 거리 한복판에 짐을 가득 실은 마차가 등장한다. 도싯셔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의자만드는 일을 하며 살던 토마스 켈러웨이의 가족들이다. 세아들 샘, 토미, 젬, 그리고 딸인 메이지와 아내 앤 켈러웨이가 한가족을 이루지만 샘과 토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살던 마을에 잠시 들렀던 필립 애스틀리의 서커스단을 도와준 토마스에게 애스틀리는 일자리를 주겠으니 런던으로 오라고 했고, 얼마전 아들 토미를 잃은 슬픔에 쌓여 있던 그들의 가족, 특히 아내 앤은 런던에서의 새 출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찾게 된 런던, 토마스는 어렵사리 필립 애스틀리를 만나지만 그는 토마스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필립은 토마스 가족에게 헤르쿨레스 빌딩에 있는 펠렘의 집을 소개해주고 그곳에 정착하도록 도와준다. 모든것이 낯설기만한 런던의 풍경은 소년인 젬에게 새롭기만하다. 그것은 메이지와 앤도 마찬가지... 이삿짐을 나르면서 첫만남을 가진 매기 버터필드, 도싯셔의 소녀들과는 다른 쾌활하고 활달한 그녀에게 젬은 조금씩 마음이 끌린다.

 

젬은 경험을 얻었고, 메이지는 순수를 잃었으며, 매기는 순수를 되찾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작기만 하던 산골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런던 램버스, 당시 런던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의 옆집에 살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매기의 부모인 딕 버터필드와 베트 버터필드, 매기의 오빠 찰리, 필립 애스틀리와 존 애스틀리, 팰럼 아줌마... 켈러웨이 가족은 런던에서 이들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젬과 메이지, 매기에게는 성장이라는 좋은 경험과 시간을 얻게 된다. 

 





<시인과 서커스>는 특별한 사건을 통해 팽팽하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작품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한 시골 가족이 공간적 사회적 변화의 시간에 휩싸인 런던에서 겪은 시선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기록하고 묘사한 작품이다. 변화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 성장이라는 변화와 마주하게 된 소년소녀들의 모습이 이 작품속에 담겨진 커다란 두 가지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 두 변화의 중심에 시인이자 종합예술인으로 불러야 할 것간은 인물 윌리엄 블레이크가 있다.

 

젬과 매기에게 '반대' 만이 아닌 '균형' 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선물해주고, 메이지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속에서 도움을 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다. 그가 젬과 메기에게 들려준 말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해 보이는 균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거란다. 우리 인간은 어떤 한 가지 측면만이 아니라 그 반대 측면까지 갖고 있는 거야. 그 두 가지 상극이 우리의 내면에서 섞이고 부딪치고 불꽃을 일으키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있는 거야. 평화만 있는 게 아니라 갈등도 있고. 순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도 있어... 그래야만 꽃 한 송이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 P. 247 -

 

누군가는 경험을, 누군가는 되찾을 수 없었던 순수를 얻고, 또 누군가는 순수를 잃었다. 또 누군가는 혁명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운 투쟁과 변화를 몸소 겪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어쩌면 사회를 발전시키고, 자신을 조금더 성장시키는 좋은 경험이 될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갈등도 있고, 어둠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반대에선 빛과 평화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균형잡힌 시선이 있을때 블레이크의 말처럼 새로운 시선으로 멋진 세상을 볼 수 있을것이다.

 

<시인과 서커스>, 정교하고 섬세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필력을 만끽 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없이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힘은 아마도 발로 뛰어 얻어낸 철저한 고증의 노력과 천부적인 작가로서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이야기 중간중간에서 또 다른 재미와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원제인 <Burning Bright> 또한 블레이크의 시속에서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를 읽으며, 그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호랑이!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이!

In the forests of the night,             밤의 숲속에선
What immortal hand or eye               어떤 죽음 모르는 손이, 눈이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너의 겁나는 균형을 빚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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