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노오란 해바라기, 세 마리 흰 고양이, 기다랗게 늘어진 밧줄, 백엽상옆 거미줄과 거미 한마리, 그리고 아무런 시선도 없이 서있는 한 소년...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이라는 감성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표지가 주는 분위기는 너무도 음산하다. 분류불가, 설명불가... 출간이후 100만부 판매!... 등 이 작품에 대한 수많은 수식이 제목과 표지의 대비만큼이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소년의 성장을 그려낸 청춘소설에 미스터리가 살짝 가미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첫인상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에 머문다.

 

'미치오 슈스케' 라는 이름의 작가,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위로 선정된 작가 라는 수식으로 시선이 가긴 했지만 낯설기만한 작가다. 미스터리 추리소설하면 떠오르던 일본작가의 이름속에 그는 없었지만 그에 대한, 이 작품에 대한 수식들이 심상치가 않다. 이 작품은 2005년에 출간된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두번째 작품만에 그를 미스터리 추리소설 장르의 다크호스가 되어버린 미치오 슈스케... 어딘지 모르게 강한 포스가 느껴지는 그와의 첫만남을 조금은 설레이기도 한다. 

 

그 사건이 발생한 여름,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유지매미소리가 들리는 여름, 어른이 된 미치오는 '그 사건' 이 발생한 여름을 회상한다. 초등학교 4학년 미치오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3살인 여동생 미카와 함께 산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던날 결석한 'S', 미치오가 그의 집에 숙제와 유인물을 가져다 주기로 한다. S의 집에 가던길, 미치오는 다리가 꺽인 죽어있는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한다. 얼마전부터 이 마을에는 하얀 비누를 입에 물고, 뒷다리 관절이 꺽여 죽은 개와 고양이가 계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S의 집. 미치오는 밧줄에 묶여 목이 늘어져 죽어있는 S를 발견한다.

 

충격에 휩싸인 미치오는 학교로 달려가 그의 담임인 이와무라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경찰과 함께 S의 집을 다녀온 그들은 S의 시체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평소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S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주일후 미치오 앞에 나타난 한 마리의 거미는 자신이 S라고 말한다.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고, 거미로 환생했다고 말하는 S, 그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미치오와 그의 여동생 미카는 추리하고 파헤치기 시작한다.

 

S는 자신을 죽인 범인을 지목한다. 하지만 그가 왜 자신을 죽였는지, 자신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S가 지목한 범인, 정말 S는 그에게 죽음을 당한 것일까? S의 개 다이키치는 평소와 다르게 미치오를 보고 덤벼들었을까? 범인은 왜 S의 시체를 숨겼을까? 미치오의 엄마가 그를 믿지 않는 이유와 엄마가 말하려 했던 '네가 ㅇㅇㅇㅇㅇ고'속에 들어갈 말은 무엇인지, 개와 고양이를 죽인 범인이 바로 S를 죽인 것인지... 자살, 아니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겹겹이 둘러쌓인 사건의 실체가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독자들은 말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된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묘미는 역시 '반전' 이다. 이 작품 역시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반전의 미학을 완성시킨다. 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가는 미치오와 미카, 하지만 그들이 풀어가는 미스터리는 여러가지 트릭과 다양한 장치들로 결말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사건의 중간중간 등장하면서 추리에 도움을 주는 도코 할머니 힌트와 S와 이웃인 다이조 할아버지의 증언은 사건의 추리를 완성시키다가 갑자기 독자들을 막다른 길로 이끌기도 한다.

 

S가 털어놓는 사건의 진실, 미치오가 풀어가는 또 다른 진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어느것이 현실인지, 어느것이 사춘기 소년이 꿈꾸는 환상인지 혼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동양 철학에 기초한 '환생'이라는 것이다. 죽은 S가 거미로 되살아나고 등장인물 중 몇명은 결국 또 다른 환생의 결과물이었다는 이야기 구조는 미치오가 펼치는 현실의 과학적인 추리와 맞물려 또 다른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는 그 소재면에서도 독특한 작품이다. 자살, 살인, 불륜, 동물학대, 아동 성폭행, 시체 유기, 집단 따돌림, 가정 폭력... 등 우리 현실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때문이다. 과학적 추리와 환생이라는 환상이 뒤섞인 몽환적 느낌이 전해지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잔혹함보다는 현실에 대한 무거운 고민과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추악함보다는 그 추악함을 만들어낸 인간의 비정함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리고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는 책이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은 후자에 가까울것 같다. 왜? 어떻게?라는 계속되는 물음속에 해답은 또 다른 물음을 만들어낸다. 그 물음표를 따라가는 미로속에서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할것이다. 미치오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추리속에 '감탄사'를 연신 울리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이르게 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 P. 436 -

 

성장소설, 가족소설, 미스터리 추리소설, 환상소설, 사회소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다양한 소설적 특성을 선보인다. 인간이 만들어 낸,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속에 담아낸 작가 특유의 치밀함과 구성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야기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작가만의 유연한 문체도 단연 돋보인다. 뛰어난 반전이 압권이었던 이 작품은 미치오가 결말부분에 던진 말속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커다란 물음표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물음표는 이 작품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2010년 만난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게 오래도록 여운이 되어 마음을 울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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