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어딘지도 모를 독방에 갖혀 중국집 만두만 먹으며 15년 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찾은 자유, 하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왜? 무엇때문에?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과거의 시간들을 거슬러가게되고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 [올드보이]는 평범하게 살아온 한 남자에게 던져진 믿기지 않는 현실과 왜?라는 질문속에서 조심스레 그 이유를 말하는 영화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평가는 관객에게 맞기고 있다. 충격적인 반전과 소름 돋는 결말이 압권이었던 이 한편의 영화가 갑자기 떠오른다. 평범한 일상에서 전혀 낯선 세계로 떨어진 그들, 핏빛으로 물든 시간의 미로...수수께끼... <크림슨의 미궁> 이 책,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크림슨의 미궁>은 또 다른 한 작품을 떠오르게 만든다. 책 소개에도 등장하지만 [10억]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등장인물과 주요 배경, 그리고 생존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요소에서 모두 유사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림슨의 미궁>이 1998년 작품이기에 아마도 2009년 개봉된 이 영화는 이 소설을 많이 참고한 듯 보인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찾던 왜?에 대한 대답을 찾다보면 이 작품이 조금은 허무해질 수도 있다는 주의사항을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의 재미를 만끽하려면 왜?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그 붉은 색의 미궁속으로 조심스레 발길을 옮겨본다.

 

화성의 미궁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전혀 낯선 곳에서 깨어난 주인공 '후지키 요시히코'. 자신의 과거도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는 8명의 또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생존을 건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누구에 의해, 아니 왜? 그래야하는지 참가자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곁에 있는 게임기는 그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고 어떤 선택들이 있으며 우승한 사람에게는 상금이 주어진다는 지시사항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서바이벌을 위한 아이템을 얻으려는 자는 동으로, 호신용 아이템을 얻으려는 자는 서로, 식량을 얻으려는 자는 남으로, 정보를 얻으려는 자는 북으로 가라.  - P. 67 -

 

후지키는 처음 만났던 수수께끼 같은 인물 '오토모 아이'와 팀을 이루게 되고, 나머지 7명도 각자 서로의 팀을 이루게 된다. 각 팀들은 게임기의 지시에 따라 각 단계로 이루어진 체크 포인트로 이동하게 되고 거기에서 아이템을 획득하여 목적지에 도착, 최종 승자를 가려내게 된다. 이 게임은 그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다. 처음엔 자신들이 가진 게임기속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지만 첫번째 아이템을 손에 넣은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한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내보이게 되는데..



<크림슨의 미궁>은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다. [검은 집]과 [13번째 인격]을 통해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에 새롭게 그만의 색깔을 채색했던 그가 이번엔 핏빛 붉은 색을 덫칠하고 있다. 짜임새 있는 치밀한 구성과 흡입력 넘치는 이야기를 선보여 왔던 그는 이번에도 역시 인간의 광기와 욕망이라는 틀 안에서 인간이 가진 본성과 인격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수한 상황의 연출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던 그는 이번에도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한층 더 흥미롭고 긴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페르소나는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예요. ... 원래는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하는데, 그 뜻이 변해서 성격 자체까지 가리키는 말이 되었죠. ... 나도 처음엔 인격이 사람 마음의 중추이자 지배원리라고 굳게 믿었어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인격이란 외부의 상황, 특히 대인 관계에 대처하기 위해 습득하는 몇 가지 반응 유형이 집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 P. 167 -

 

전직교사, 실업자,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세일즈맨, 이혼녀, 만화가.... 다양한 직업과 이력을 가진 이들이 보여주는 인간이 가진 추악함, 인격이라는 이름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가면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생존을 위해 보여지는 이기적인 모습들속에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는듯하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현대인들, 그리고 누군가를 짖밟고 혹은 누군가에게 죽음 못지않은 상처를 주는 현대인들에게 <크림슨의 미궁>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기시 유스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소재와 함께 그가 그려가는 세계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들은 그가 만들어가는 픽션의 세계속에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고 그 세계안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현실속 인물들인양 생생하게 다가오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구성과 반전의 묘미야말로 역시 기시 유스케!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매력이 될 것이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왜?' 라는 이유를 찾기보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상황에 시선을 두고 '어떻게?'에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더 큰 재미와 마주할 수 있을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추리에 호러를 더한, 기시 유스케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소재 그리고 현실 인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검은 빛에 붉은 색을 덫칠하고서, 그렇게 또 다른 미로속을 내달려본다. '식시귀'는 단지 책속에 존재할 뿐일까?라는 의문과 마주하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지금 나는 기시 유스케의 매력에 한층 더 깊숙히 빠져들게 만드는 검붉은 한권의 책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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