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닥터 팽은 검은색 홈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돈 때문에, 잔소리 때문에 부모를 죽였다는 패륜아, 대여섯살의 아이를 성폭행 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 옆집 아이를 유괴 했다가 죽여버리기도 하고, 동급생을 때려 죽게 한 중학생이 있는가하면, 제자를 성폭행 한 선생, 이주비를 요구하는 세입자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들도 있다. 이 세상은 정녕 미쳐버렸다. 제정신으로는 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前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좌다 우다를 외치며 자기만의 목소리내기에 열중인, 도저히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상상같은 현실의 모습,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 닥터 팽과의 만남은 그렇게 우리 가까이 다가와있다.

 

닥터 팽과 처음 만난 건 전철 안에서였다.

김종수, 주인공 종수의 시선속에 닥터 팽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처음의 닥터 팽은 잡상인이었고, 다음의 닥터 팽은 법원이 지정해준 그의 정신과 상담의였다. 어떤때는 홈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또 어느때는 검은 정장을, 프로이트 박사처럼 검은 파이프를 꺼내 물기도하고, 혹은 세일러문 의상을 입는 엽기스런 모습을 하기도 한다. 종수, 그가 닥터 팽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또 한명의 주인공 수연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종수와 수연의 시선을 오가며 현실과 허구, 환상과 회상의 길목 길목에서 그들을 교차시키고 서로의 시선을 흔들리듯 끌어들인다.

 

그는 수연의 첫사랑이었다. 그는 세계사를 가르쳤다.

종수의 독백으로, 닥터 팽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수연의 이야기, 이 세가지 형태로 내용이 구성된다. 어린시절 스포츠 댄스에 미쳐있던 누나는 교통사고로 죽고, 건설 현장 감독일을 하던 아버지는 누나 죽음의 충격으로 놀이공원에서 목이 부러져 죽고, 일년 반을 앓다가 죽은 엄마, 그리고 그의 남동생... 종수의 어린 시절 회상이 있다. 현실의 종수는 여고의 세계사 선생님이다. 그리고 그를 짝사랑하는? 수연, 수연의 시선과 종수의 시선을 오가며 이야기는 또 다른 사건과 현실, 환상을 만들어낸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허구이며 환상이고 회상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 바로 [식스센스] 였다. 이 영화의 제목만으로도 '반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도 있겠지만, 거기에 추가적으로 '시선의 배신' 이랄까? 우리가 이야기속에서 줄곧 믿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배신이 이 작품속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닥터 팽이라는 등장인물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속에 종종 등장하는 닥터 이라부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라부의 탁월한 해결능력과 활약이 닥터 팽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소설속에 등장하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미지들이 왠지 이라부의 느낌과 닿아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게 정말, 고양이였습니까?

진실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환상인가? 책을 내려놓으며 가슴속에서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날개 돋힌듯 날아오른다. 고양이는 무엇이고 시멘트는, 종수의 아버지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가족은, 수연이는, 닥터 팽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종수와 수연의 시선을 따라 쉴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믿고 믿어야 할것이 어디까지이고, 도대체 현실은 회상은 믿을 만한것인지 물음표들만 늘어난다. 반전이라고 말해야 할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계속되는건 바로 이 '물음표' 들이다. 그게 정말, 고양이였을까?

 

우리의 기억은 과연 안전할까?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도 우리 사회에 상처처럼 각인된 흔적들은 결코 지울수 없다. 가정 폭력, 마약에 쉽게 노출된 우리의 모습, 수험생들의 고통 등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상처를 작가는 쉴 새 없이 건드리고 현실과 연결된 이러한 믿음속에서 독자들은 쉽게 이야기속에 빠져든다. 자신이 가진 상처를 떼어 버리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만을 간직하려하는 현대인들의 고민과 갈등, 불편한 진실들을 작가는 특유의 재치와 상상으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나는 닥터 팽에게 했던 질문들 중 한가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 도대체 진실이라는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 거죠?    - 자네가 믿고 싶어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 P. 230 -

 

현실과 허구, 환상과 회상, 그 경계를 걷다!

<오즈의 닥터>, 현실과 상상속을 오가면서 상상과 반전의 재미속에 빠져들때쯤 어느덧 이야기는 종착역에 다다른다. 독특한 캐릭터들이 주는 즐거움도 있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현실을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성 짙은 작가만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나는가 하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걷게 만드는 특별함을 선물한다. 진실이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지... 수많은 고민과 물음표가 책을 내려놓는 순간 순간까지도 우리 앞에 쏟아져 내린다.

 

마지막에 담겨진 작가와의 인터뷰는 '안보윤' 이라는 이름을 조금을 더 알게 하는, 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전해준다.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악어떼가 나왔다]가 그녀 자신을 위해 쓴 작품이였다면 이번 작품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은 그만큼 성숙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는 그녀의 첫 작품이 바로 <오즈의 닥터>임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독특한 장르로, 이제 작가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안보윤, '쓰다'보다는 '들려준다'로 중심이 이동한 그녀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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