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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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유시화님의 시(詩)가 있다. 항상 곁에 있지만 그래도 그대가 보고프고 그립고 만지고 싶은게 바로 사랑인가 보다. 이 책속 양귀자님의 말처럼 이 나이가? 되면 사랑이란 말을 사용할 일이 예전보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말은 언제나 가슴 떨림과 설렘의 또 다른 표현이란 생각은 가슴속에서 먼저 샘솟는것 같다. 그것도 첫사랑, 잊혀지지 않고 추억으로 자리한 사랑,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가을 흔적을 남기고 겨울로 내달리는 매서운 추위 때문일까? 사랑이란 말이 손을 녹여줄 화톳불처럼 따스하게 내 가슴을 녹인다.

 

사랑이란 말을 떠올리면 수식어처럼 따라오는 말들이 있다. '떨림', '설렘', '그리움'... 첫사랑의 떨림과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에 대한 설렘, 그리고 결과와 상관없는 지속적인 그리움의 감정들이 바로 그것이다.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 <설렘>은 2007년 24명의 시인들이 이야기했던 사랑의 [떨림]에 이은 후속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14명의 소설가들이 사랑을 말한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양귀자, 김훈, 박범신, 신이현과 같은... 그래서인지 미처 만나지못한 [떨림]을 뭐라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설렘>은 '그와 그녀들의 소설같은 사랑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작가라는 이름을 만들게했고 그들의 감수성을 탄생시킨 사랑의 이야기들이 살며시 내려와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속에 따스함으로 간직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미완이 주는 사랑의 설렘은 연애를 단순한 유치에서 끝내지 않고 찬란하게 만든다. 연애의 빛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건조한 흑백의  세상이 실체를 드러내겠지만 연애의 절정은 그래서 더욱 눈이 부시다. 그 찬연한 빛에 사랑하는 두 사람은 눈이 멀어 버린다... [P. 76 - 뾰요한 눈빛, 뾰요하던 사랑(김규나) - 中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면 무언가가 떠오른다'  [가지 않은 길...들]의 서하진은 그남자 M을 생각하면 긴 손가락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곁에 없는 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추억은 무엇인가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사랑의 추억이 '이정하'라는 시인의 이름으로 기억되듯 말이다. 그 사람의 손짓 하나, 혹은 그 사람이 즐겨찾던 곳, 그 사람이 좋아하던 커피향이 오래도록 그에 대한 추억이 되어버리듯... <설렘>속에는 14가지 사랑의 방식이 존재한다.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도, 지나치듯 흘러갔던 사랑의 흔적도, 누군가에게 듣게 된 가슴 찡한 사랑, 우리가 잊고 있었던 황혼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사랑의 메모장에서 발견한 몇가지 단어에서 찾아낸 사랑의 흔적도 있다.



 

<설렘>속에는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가온 첫사랑과 사랑의 이야기들이 두드러진다. 김이은의 [1991년 겨울 프롤로그]도, [나와 귀뚜라미씨]의 김나정도 그렇다. 김규나의 [뾰요한 눈빛, 뾰요하던 사랑]도, 한차현의 [내게도 그런...], [가지 않은 길...들]의 서하진의 사랑도 그렇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써 사랑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그들의 모습이 친숙하다. 은미희의 [당신은 바람]을 읽고 있다보면 그녀의 이야기가 나의 그것과 닮아있기도 해서 놀라기도 한다. 물론 뒷부분에서 조금은 달랐지만.... 사랑은 그렇듯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서로에게 간직되는 것인가보다.  

 

양귀자의 사랑이야기속에는 김광석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이 흘러나온다. 한차현의 [내게도 그런]속의 '대천의 가을밤'은 남자로서 20대 첫사랑과 벌였을 만한 실랑이를 추억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신이현의 [파리를 가져가버린 아마존 악어]에서는 서른즈음의 흘러가는 듯한 사랑이야기가 파리와 달팽이 요리속에 녹아든다. 솔직하고도 아련해보이던 옛 사랑을 우리의 눈앞에 데려다놓은 작가들의 당당함과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움이 샘솟는다.

 

사랑의 불찰...은 바로 그런 순간에 오는 것이지요. 그의 웃음이 심심해지고, 그의 다정함이 구속으로만 여겨지고, 그의 행복이 나와는 무관한 듯 여겨지고, 저는 점점 건방져갔어요. 이런 사랑, 너무 흔해서 시시하다고, 이런 사랑, 너무 탈이 없어서 지루하다고... [P. 102 - 참 대책 없는 어떤 사랑(양귀자) - 中에서]

 

첫사랑, 오래되어 빛바랜 사랑이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놓쳐버렸기에 더 안타깝고 그때는 미쳐 몰랐던 사랑의 소중함을 뒤늦은 후회로, 아름답게 포장해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양귀자가 말한 '사랑의 불찰'에 대한 말이 바로 그런 지나간 사랑의 시간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시시하고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랑에 대한 후회가 그녀의 말속에 거울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의 사랑을 간혹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금 나의 사랑이 아프고,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되어 버렸을때, 그들은, 다른 이들은 이럴때 어떻게 했을까? 할까?를 잠시 엿보고 싶어진다. 오래된 사랑은 아름답지만 지금의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현실이란 이름과 맞닿아 있는 사랑을 '불찰'이란 이름으로 놓쳐버리지 않기 위해 그와 그녀들의 사랑의 추억이 잠시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부르는 이름은 많지만, 사랑의 정답은 없어 보인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름답다면 나의 사랑은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떨림과 설렘을 현실속에 간직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을 지키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곁에 있어도 항상 그대가 그리운 것처럼, 그들의 설렘과 떨림을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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