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2009년초 작은 영화 한편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거친손, 고향을 지키는 노부부와 가족이 되어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일소, 그리고 잔잔히 펼쳐진 고향 풍경속에 울리던 경쾌한 워낭소리가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다. 왜 관객들은 말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을까? 아니 그들은 이 영화속에서 무엇을 찾아냈던 것인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저예산의 독립영화 한편이 대한민국에 불어 넣은 감동과 사랑의 메세지를 이제 작은 책속에서 다시금 되돌아볼 기회를 얻게된다.

 

독립영화의 기록을 한번 깨어보자고 개봉전 내기를 했다는 감독과 프로듀서. 10만, 20만... 그들이 예상했던 수치는 300만이라는 거대한 숫자 앞에 한없이 작게만 보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300만 관객들을 매료시킨 워낭소리의 힘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이 작품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속 이야기들과 사진, 시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다. <워낭소리>에 담겨진 감동과 워낭소리를 사랑해준 수많은 관객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지금도 선명히 들려오는 듯한 워낭소리에서 우리가 배운 가르침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묵묵히 소처럼 일만 하다 쓰러졌다가도 아무 일 없는 듯 일어나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고된 노동 속에서, 그래도 그들은 땅처럼 건강했다. [P. 23]

 

<워낭소리>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중에서 가장 큰 한가지는 바로 '우리가 잊고 있던 것에 대한 깨달음과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는 이것을 [워낭소리가 우리에게 알려준 열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조명해보고 있다. 우리시대 아버지의 의미, 우보천리(소처럼 묵묵히 욕심없이 꾸준히 간다는 뜻), 배려와 믿음속에 싹트는 삶의 동행,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가치, 어머니, 가족의 소중함, 나의 고향, 한없이 낮은 시선속 풍경 등 속도에 미쳐버린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정적이고 사라져버린 소중한 가치와 모습들이 바로 그리움과 깨달음으로 우리곁을 찾아온 것이다. 

 

감독은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다른 방식을 찾으려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된 결론이 바로 '소리''관계'를 찍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이 보았던 것, 자신이 느꼈던 사실에 보편성을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국내 300만 관객의 눈, 그리고 선덴스 영화제에서도 통할 수 있었던 추억과 향수, 관계속에 녹아든 정서와 감정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선명히 울려퍼진 워낭소리, 지치고 힘겨운 삶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않는 할아버지와 소, 다투듯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사이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웃을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가끔 인터뷰 형식이 가미되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카메라속으로 보여지는 풍경과 소리,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일소를 사이에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고향을 느낀다. "소가 중하니껴, 고추가 중하니껴?", "소가 중하지 뭐, 까짓 거 고추가 뭐?!" .... "라디오도 고물, 영감님도 고물"이라는 말에 미소짓던 할아버지의 모습... "팔아!" "안팔아!" 우시장에서 옥신각신하던 할아버지의 모습... "할마이 중한지는 모르고...." 달구지를 밀라는 할아버지를 보고 말하시던 할머니...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낯선, 한없이 낮아야지만 보이는 사랑과 향수 가득한 모습들이 가슴속에 잔잔한 일렁임으로 다가온다.

 

이 책 <워낭소리>속에는 워낭소리가 우리에게 알려준 열가지 이야기 끝에는 기형도와 문태준과 같은 시인들의 시들이 그 감동과 하나되어 더 큰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책속에는 감독이 말하는 워낭소리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함께한다. 스무가지의 장면들을 떠올리다보면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 이후의 남겨진 뒷이야기가 <워낭소리>가 가진 특별함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고스란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고향을 닮아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푸근한 웃음, 힘겨워하는 소에게 막걸리를 건네는 할아버지의 따스했던 정, 티격태격 하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노부부의 고향생활, 욕심내지 않고 흐트러짐 없는 할아버지의 신념에 찬 삶... 추억과 향수가 가득한 영상을 이 한권의 책속에 가득담아낸 <워낭소리>는 영화의 감동, 재미,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들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독립영화 최고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 작품만이 가진 비밀이 무엇인지, 책을 내려놓은 후에는 단 몇글자 만으로도 충분히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 고향을 벗어나 그렇게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이상한 일이다. 그 길은 돌고 돌아 결국 이렇게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P. 67]

 

<워낭소리>의 키워드를 몇가지 적어보자면 배려와 믿음, 동행, 삶의 고집, 아버지, 가족, 느림의 미학...그리고 고향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고향'이라는 말속에 이 작품에 담긴 키워드들이 모두 함축된다고 볼 수도 있을것 같다. 푸근함, 따스함, 가족과 아버지, 어머니의 품이 있는곳, 생의 마지막까지 찾고 싶어지는곳, 사람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것이 동행이 되는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빠르고 높은 곳을 향해서 쉼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한없이 낮은 시선을 가져야만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선물해준다. 선명하고 경쾌하게 귓전에 울리던 워낭소리의 선율과 할머니의 잔소리, 할아버지의 쓰러질듯 기우뚱거리는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다. 언제라도 달려가 안기면 따스하게 품어줄 고향이 우리곁을 말없이 지키고 서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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