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평점 :
다중인격은 오래전부터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사랑 받아왔다. 다중인격을 소재로한 작품에는 얼마전 개봉되었던 국내영화 [두얼굴의 여친], [장화 홍련] 이나 [거미숲]이 있고, 오래전에 선보였던 [도플 갱어]나 [컬러오브나잇] 또한 이런 다중인격이란 소재를 코믹 혹은 공포로 풀어 내고 있다. 소설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대표적인 다중인격을 다룬 작품이라 하겠다.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또한 대표적인 다중인격을 다룬 작품으로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공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 조금씩 풀어내어보자.
<13번째 인격>은 이런 다중인격을 그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가 소위 이중인격자라고 말하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단순히 어긋난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무려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시공간적 배경은 일본의 한신 대지진이 일어난 1995년 이다. 6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처참했던 생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16세의 모리야 치이로라는 한 소녀와 자원봉사로 활약하면서 지진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의 심리치료를 맡은 유카리의 치열한 싸움?을 그녀낸다.
가모 유카리는 어린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엠파스! 상대의 감정을 간파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유카리와 13개의 인격을 가진 치이로의 만남이 바로 이 작품의 커다란 줄기가 된다. 처음 치이로와의 대화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유카리, 하지만 어린시절 자신을 얽매던 가족과의 상처를 가진 그녀기에 치이로의 인격을 하나로 묶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료코, 도코, 히토미, 유키오, 요코, 주리, 시노부, 소, 유코, 미쓰루, 노리코, 그리고 이소라에 이르기까지 치이로에겐 다양한 나이와 성별, 지능과 감정을 가진 인격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전혀 파악하기 힘든 인격은 바로 이소라이다.
가장 이질적이면서 냉혹하고 이질적인 분노를 내포하고 있는 이소라는 한신 대지진이 일어난 뒤 나타난 마지막 13번째 인격으로 가장 미스터리하고 비밀을 간직한 인격이다. 유카리는 치이로의 이런 다양한 인격을 하나로 묶고 치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마나베라는 연인, 그리고 그가 간직한 비밀, 치이로의 13번째 인격의 비밀을 치열하고 섬세한 공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소라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소라를 떨쳐버리고 치이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유카리는 그렇게 해낼 수 있을까?

다중인격장애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라고 불리는 정신 질환으로 한 사람에게 두가지이상의 인격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다중인격장애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다중인격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중 가장 커다란 원인 몇가지를 찾을 수 있다. 다중인격 장애환자 1백명에 대한 조사에서 86%는 성적인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고, 75%는 반복적인 신체학대를 받았다고 나타난다. 또한 45%는 아동기에 폭력에 의한 죽음을 목격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다중인격장애는 '어린시절 충격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성적 학대, 폭력, 신체적 학대에 의한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자신속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고 상황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인격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다중인격이 나타나는 이유는 쉽게 말해 자기보호를 위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영화나 소설의 경우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바로 이런 충격, 폭력, 학대에 의한 복수나 응징이라는 매커니즘이다. 이 작품속에서 치히로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어린 나이에 받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숙부내외의 학대와 현실에 대한 자기 방어가 새로운 인격을, 또 새로운 인격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 작품은 [검은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다. 사실 소설이 아닌 영화로 [검은집]을 만났다. 또 얼마전에는 그의 신작 [신세계에서]를 만나기도 했다. [검은집]과는 전혀다른 판타지 작품이었는데 전혀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13번째 인격>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속에서는 기시 유스케 만의 작가주의를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냉혹한 현실을 꿰뚫는 냉철한 시선속에 담아내는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바로 그것이다. 피폐한 현대인들의 가슴을 꼬집는 섬세한 펜끝이 장르를 불문하고 날카롭게 자리한다는 특징이 엿보인다.
<13번째 인격>은 흥미롭고 독특한 소재와 그속에 담겨진 냉혹한 사회비판, 그리고 공포와 반전이 잘 조화된 작품이다. 엠파시, 유체이탈, 임사체험 등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기시 유스케만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작가주의가 여운처럼 남는 작품이다.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공포와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고 깨달아야 조금은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검은집], [신세계에서] 그리고 <13번째 인격>. 다시 만나게 될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