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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요코미조 세이시' 라는 이름과 처음 만난 것은 늦었지만.. 작년 이맘때 즈음 [이누가미 일족]이라는 매혹적인 표지를 선보였던 작품을 통해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마음을 뺏앗겨가고 있는 최근 몇년사이 책의 표지와 제목이 주는 느낌으로 읽고 싶은 작품들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취향에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 이 작품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긴다이치 고스케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고스케, 그리고 추리소설... 다시금 그때의 그 설렘을 꺼내며 그와의 만남을 준비한다.
[이누가미 일족]이 그랬던것 처럼,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또한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이 무첫이나 마음을 끈다. 일본 전통의 문양들이 달 속에 스며들고, 악마의 모습을 한 인물이 피리를 부는 모습이 기괴함을 넘어 왠지 모를 끌림으로 다가온다. 악마의 모습은 종전의 피폐하고 혼란한 시대 상황과 귀족계급이 몰락한 일본의 현실을 배경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요코미조는 패전 직후 전쟁기간 동안 절필을 강요당했다가 다시금 글을 쓸 수 있게되어 환호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이 이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악마...> 또한 종전직후의 어수선하고 '혼란'을 넘어선 '혼돈'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를 찾아온 스무살 전후의 한 여인. 츠바키 히데스케 자작의 무남독녀인 미네코의 의뢰로 그녀의 아버지 츠바키 자작과 연결된 비밀의 문에 들어서는 긴다이치 고스케, 그의 추리가 시작된다. 그의 앞에 놓인 엽서 크기의 사진 한장과 히데스케가 마지막으로 작곡하고 연주한 한장의 레코드는 이 음침하고 비밀스런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그해 1월 15일 발생한, 청산가리로 13명의 사상자를 낸 보석상 천은당 사건, 그리고 50일이 지난 3월 5일 무서운 3중 살인사건의 전주곡인 츠바키 자작, 히데스케의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유서도 없지만 가족들은 그가 자살했을 것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실종 45일후 츠바키 자작은 시체로 발견된다. 그렇게 이 사건은 종결되는듯 했지만 사건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아버지는 이 이상의 굴욕, 불명예를 참을 수가 없다. 유서 있는 츠바키 가문의 이름도 이것이 폭로되면 수렁에 빠지고 만다. 아아.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그날까지 살 수 있을 수가 없다. 미네코야 아버지를 용서해라.'

뒤늦게 아버지의 유서를 발견한 미네코, 아버지가 말한 굴욕과 불명예는 무엇이고, 악마는 또 누구란 말일까? 한편 앞서 말한 천은당 사건의 몽타주는 아버지를 닮아 있고, 유서있는 츠바키 가문과 자작의 아내 아키고의 신구가문, 그리고 아키코의 외외종조부 다마무시 가문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지 날카로운 긴다이치 고스케의 추리는 빛을 발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긴 츠바키 자작의 플루트곡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의 레코드와 츠바키 자작의 환영이 계속 이 가족들을 쫓는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것인가? 그들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이어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은? 츠바키 자작이 말한 굴욕, 불명예, 악마는 도대체 누구인가? 숨가쁘게 긴다이치 고스케의 시선은 사건의 핵심속으로 파고든다.
50여년이 지났지만 고루하고 현실과 괴리된 그런 느낌이 없는 살아있는 느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누가미 일족]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봐야 겠다는 다짐은 시간이 한참 흐른후에야 이렇게 성사되었다. [팔묘촌]이나 [옥문도]도 꼭 만나봐야 하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을 두루두루 만나보지 못했기에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중 일곱번째로 이 작품을 꼽았다는 사실이 그만큼 작가 자신으로서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 생각되지만....
전체적의 분위기는 이전 읽었던 작품이 그렇듯, 전후의 어둡고 혼란한 그림자가 자리한다. 작가가 책의 앞부분에 서술했듯이 작가의 공상에 의해서 그려진 작품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전후 실제 있었던 '제국은행 사건'을 이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혼란에 휩싸이 전후 일본의 상처와 일본인들의 아픔을 담아내고 그들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어두운 그림자, 내면에 자리하던 악마의 모습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끌어내어 놓는다. 과장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힘겨운 산고의 고통을 통해서 지금의 발전된 일본이,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추리소설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표지와 제목이 주었던 첫인상처럼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검은 그림자속에 뚜렷이 드러난 두 눈동자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우리 내면속에 잠재해 있는 악마의 본질, 어그러진 사회가 담아낸 악마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추리, 긴다이치 고스케라는 전대미문의 멋쟁이 캐릭터의 활약이 다시금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요코미조 세이지, 그의 이전 작품들을 휴가기간중 꼭 만나보려한다. 언제나 그랬든 책과 함께하는 '북캉스' 기간 동안 '긴다이치 고스케' 그와의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