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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아버지의 따스했던 손을 꼭 잡고 자장면 한그릇에 온 정신이 팔려 발걸음도 가볍게 시내에 나가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가장 멀리 떠나본 기억이라곤 그렇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자장면에 대한 시간뿐이다. 열두살,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로서의 세상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시골 마을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산에 오르고, 들에 나가 뛰어놀고, 물가에서 수영을 하던 기억. 하지만 그런 기억속에서 우리집은 언제나 나의 시선 안에 자리했다. 멀리 나는 새, 높이 오르는 새는 결코 아니었단 말이다.
열두살,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 스피벳의 모험, 그것은 집에 고무줄이라도 매어놓은듯 생활하던 나로서는 거의 상상하지 못할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장장 1800마일, 약 2896㎞에 이르는 거리. 약 3천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400~500Km정도의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힘겨운 거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게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의 모험은 시작된다. 북위 45도 49분 27초, 서경 114도 44분 19초, 몬태나주 디바이드의 코퍼톱 목장의 스피벳의 방이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통의 전화, 스피벳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평범하던, 아니 천재적인 이 소년의 삶을 전혀 색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스피벳은 길을 잘못 든 곤충학자라고 어머니를 소개한다. 아버지 테쿰세 엘라이야 스피벳은 과학과는 조금은 먼 조용하고 생각많은 조마사이다. 그리고 누나 그레이시, 동생(동생 레이턴은 얼마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과 함께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간다. 평범하지는 않은 듯하다. 어머니의 과학적 유전자?로 인해 작은일, 사소한 것들, 물건뿐만이 아니라 감정과 일상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스미스 소니언협회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 그의 친구인 몬태나 주립대학의 곤충학교수 욘박사가 스피벳의 나이를 속이고 그의 동료 교수인양 1년전부터 협회에 보낸 일러스트가 과학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으며 저명한 베어드상 수상자로 스피벳이 선정되었던 것이다. 누구도 이 기막힌 일러스트와 도해를 열두살 꼬마의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는 협회의 요청으로 스피벳은 기나긴 여정에 몸을 싣게 된다.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책의 두께에 놀라고 두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방대한 지식과 하나하나 표현한 섬세한 일러스트가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얻게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책의 사이드바를 차지하는 사물, 사건, 생각, 생물.... 등 수많은 도해들은 정말 섬세하고 정성스럽기까지 하다. 독특하다는 수식을 넘어 특별한 소설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듯하다.
하지만 단순히 백과사전식의 딱딱함만이 존재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 열두살 천재 소년의 모험속에는 아이에서 겪어야하는 고민과 갈등을 풀어내는 성장의 찬란한 기록과 감동이 함께한다. 스피벳이 겪은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소년의 괴로움과 고민, 여행을 통해 겪게 된 세상에 대한 이미지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의 감성이 섬세한 일러스트처럼 분명하고 세심하게 표현되어진다. 백과사전식 딱딱함은 그렇게 소년의 성장이라는 감동속으로 부드럽게 동화되어 간다.
'터널이 오르막이 되자 나도 모르게 이 지하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아버지와 나란히 영영 걷고 싶었다.' [P. 481]
과학이라는 전반적인 틀속에 자리하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속에 묻어나는 주된 향기는 '따스한 가족애'가 아닐까 싶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자책을 가지고 있던 스피벳, 아버지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오해를 풀어내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마지막 부분이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스피벳>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겪게되는 여러가지 관계속에서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기 자신이 조금더 커질 수 있는 계기를 일상속 과학과 예술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다. 따스한 감동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백과사전'이라는 이 작품에 대한 수식어 자체로도 <스피벳>의 특별함을 대변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기존의 틀을 깨는 신예작가의 참신함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동이 길고도 험난한 여정속에 숨어든다. 거친듯 부드럽게 감동과 모험이 공존하고, 멋스럼움과 여운이 있는, 과학과 예술속에서 매혹과 열정이 함께하는 스피벳의 특별한 모험은 이렇게 짙은 향기로 가족의 품으로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