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긴제목을 가진 독특한 작품들이 있다. 소설로서는 온다리쿠의 2008년작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가 문득 생각나고, 영화로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라는 아주 긴 제목의 중편 영화가 떠오른다. 이처럼 긴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짐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나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기막히게 긴 제목의 소설과 마주한다. 픽션, 이란...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이 제목은 닉혼비를 비롯한 쟁쟁한 작가들의 10개의 단편을 고스란히 나열하고 있다. 아니 그 제목들을 통해서 제법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작품인지까지 짐작 할 수도 있을것 같다. 닉혼비의 [작은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로 있는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횡단하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나라, '챔피나'의 이야기이다. 7살 스테판의 엄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스테판은 얼떨결에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된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라스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은 어느날 갑자기 집에 불이 난 라스파프라는 남자의 소심한 삶으로의 변화를 통해서 사랑에 대해서 두려움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카울릭에서 벌어진 시합]은 무슨 우화소설을 읽는 듯하다. 보안관이 낚시를 간 사이 들이닥친 돼지뼈 일당을 맞아 지혜롭게 대처하는 월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시무어의 마지막 소원]은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괴물 엄마, 그리고 요정을 만나 세가지 소원을 빌게되는 시무어의 이야기다. 조금은 낯설고 일상적인 우리의 정서가 아니란 느낌을 받는 단편이다. [그림블]은 제멋대로인 아빠와 엄마와 떨어져 있는 열살쯤 먹은? 그림블의 일상을 재밌게 그려낸다.

이 외에도 다섯명의 미식가 클럽 떼거리를 다룬 [태양새], 개들의 고통을 찾아내는 전화기와 소년의 이야기 [이상한 전화], 뉴욕에 있었다는 6구 이야기 [여섯번째 마을], 캠핑을 떠난 아이들의 모험, 제임스 로빅의 이야기 [괴물] 등... 다양한 소재와 일러스트가 어울리는 작품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그렇다고 아이들의 상상을 자극할 만한 작품도 없어보인다.
<픽션>에서 눈에 띄는것을 몇가지 꼽자면 표정 그대로 '허걱~~' 이랄까 하는 표지속 남자의 표정이 시선을 끈다는 사실과 '허걱~' 할 정도로 긴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영화 [위험한 대결]로 익숙한 레모니 스니켓이 쓴 서문과 닉 혼비, 조너선 사프란 포어, 닐 게이멈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의 이름이 시선을 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재밌고 특색있는 일러스트는 마음에 든다. 이런 소설의 내용 외적인 것들을 제외한다면 <픽션>은 그다지 독자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레모니 스니켓의 서문은 참 마음에 든다. 그것도 전체가 아닌 앞부분 정도이지만... 서문이 약병에 붙은 주의사항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읽으려 드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안에 위험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안 순간에 이미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책속에 들어 있는 조금은 긴 단편들의 내용들 보다도 인상적이다. 더불어 마지막에 실린 옮긴이의 글도 레모니 스니켓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간결하면서도 시선을 끈다. 옮긴이의 글은 신문에 끼워진 백화점 전단지 간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문을 두껍게 만드는데 기여하지만,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전단지와 같다고... 이처럼 서문과 옮긴이의 글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고 기억되는 글이라는데 조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조금은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다. 인상적인 작품이 될거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읽는 이가 작가들의 특별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필요한 한가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책을 계속 넘길 수 있게끔 만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표지와 제목, 작가와 일러스트를 제외하고 인상적인 부분이나 재미는 빠져있는 듯한 작품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소설이라는, 픽션이라는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킨 그들의 열정과 노력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속에 지속적으로 시선이 머물수 있게 하는 '재미'가 빠져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이 백화점 전단지와 같다는 느낌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