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샌가 여름의 시간이다. 공포물이나 기담같이 오싹한 이야기들이 서서히 고개들고 사랑받기 시작하는 계절. 우리가 즐겨 보는 영화속에 담긴 공포의 방식은 3가지 정도로 나뉘어진다. 종교와 관련한 공포를 다룬 오컬트, 피가 튀기고 잔인함이 돋보이는 하드고어, 마지막으로 잔인함보다는 살인자의 내면적 심리에 중점을 두는 스릴러 등이 있다. 물론 더 자세히 구분되고 세밀히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최근 공포의 추세는 무조건 죽고 죽이는, 피가 낭자하는 공포물 보다 심리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스릴러가 많은 사랑을 받는듯하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그 범죄속에 숨겨진 비밀과 진실, 내면적 갈등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큰호응과 몰입을 선사하기 때문에 스릴러가 사랑 받고있다.

 

영화로 말하자면 이 작품 <수은충>은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귀신이나 영혼과 같은 호러적인 성격을 띄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건과 관련한 사람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숨겨진 악의와 수은충이라는 가상의 벌레가 연결되어 끈적끈적하고 흐물흐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괴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지고 있다. 모두 7가지 단편들이 수은충이라는 벌레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유쾌하지 않는 느낌들과 연결된다.

 

'그것은 수은충이라는 곤충으로, 사람의 영혼을 파고들어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무수한 구멍을 뚫어놓는다고 합니다.... 영혼에 구멍을 뚫린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된다는 걸까요.'  [잔설의 날 中]

 

<수은충>에 담긴 소재들은 조금 충격적이다. 불륜, 살인, 자살, 근친상간, 인육, 학교폭력, 환각과 일탈... 저녁 시간대 뉴스를 장식할만한 토픽들을 모아놓은듯, 조금은 쇼킹한 소재들이 즐비하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 아내를 죽인 남편, 그가 깨닫는 죄의식을 담은 [고엽의 날], 부모의 이혼과 술에 빠진 엄마, 그런 소년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부부의 실체, 근친상간 이야기를 다룬 [겨울비의 날], 누나와 엄마를 자살로 이끈 소녀, 그녀를 죽인 소년 [잔설의 날], 손자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 인육을 먹은 할머니 이야기 [대울타리의 날] 등 조금은 엽기적이기까지 한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대는 묻느냐, 이 사랑이 죽는 날은 언제냐고...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날, 새로운 열기가 묵은 생각을 태워버린다.'   [병묘의 날 中]

 

[박빙의 날]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소녀의 원한을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청소년들의 일탈과 환각 살인을 소재로 한 [미열의 날], 사랑을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병묘의 날]까지 독특하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수은충이라는 특별한 매개체로 연결된 7편의 단편들이 모두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 책 <수은충>에 대한 소개를 보면 '누구나 목덜미에서 수은충이 꿈틀거리면 언제든지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수은충이 인간의 영혼에 무수한 구멍을 뚫어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 수은충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다.

 

수은충이 흐물거리고 기어다니는, 몸서리쳐지는 느낌이 오면 파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파멸에 다다른 인간들의, 이중적이고 내면에 담긴 악의가 고스란히 드러난 인간들에게서 최후에 드러나는 최소한의 '양심'의 표현이 바로 수은충이 꿈틀대는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살인과 불륜, 근친상간, 인육 등 인간으로써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 상황속에서 관조자가 느끼는 '소름끼치는 것'과 당사자가 갖는 '양심의 가책' 혹은 '죄책감' 이 아마도 이런 수은충과 같은 가상의 벌레의 느낌으로 표현되는 듯 보인다.

 

충격적인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런 일들이 자행되면서도 하물며 수은충이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충격적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문득 당신에게도 목덜미가 가렵다고 느껴질 그런 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인내하고, 평범함에 감사하고 실천하는..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수은충>은 인간의 이중적 심리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상상이 압권인 작품이다. 슈카와 미나토라는 이름 뒤에 함께하는 [올빼미 사내]와 [꽃밥]이라는 작품과도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호시 신이치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반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슈카와 미나토, 그의 매력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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