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라쇼몽' 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사무라이와 아내, 산적, 그리고 나뭇꾼이 등장하는 아주

오래된 영화. 사무라이는 말을 타고 아내와 숲속길을 지나가던 길이었다. 그의 아내를 본

산적은 예쁜 그녀를 겁탈하려고 한다. 나중에 숲에 들어온 나뭇꾼에 의해 사무라이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걸보고 신고를 하게되어 그 범인을 찾게되는데. 명백해 보이는 하나의 사건이

지만 산적과 아내, 그리고 무당의 힘을 빌은 죽은 사무라이의 말은 서로 전혀 다른데..

하지만 결국 사건을 목격한 나뭇꾼에 의해 실체가 밝혀진다는 독특한 설정의 영화이다.

 

알링턴파크, 런던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흡사 연극과도 어울리는 이 작품을 보고는

'라쇼몽' 이 영화가 떠오른다. 이 마을에 사는 다섯명의 여성들이 그리는 하루가 세세하게

그려지는 <알링턴파크 여자들의....>는 동일한 공간에서 비슷한 유형의 삶을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가치와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 고등학교 영어교사 줄리엣, 알링턴파크에서 가장 비싼

곳에 살고싶어했고 뜻을 이룬 어맨다, 알링턴파크적인 것에 목메이는 크리스틴, 네번째 아이를

임신한 솔리, 복잡한 도시를 떠나 교외를 원했던 메이지. 런던 근교의 작은 마을, 동일한 공간

을 살아가는 다섯여인이지만 그들이 몸담고 있는 그 마을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





행복을 찾아 떠나온 여인에게 이곳은 또 다른 악몽이고, 꿈을 키워왔던 여인에게 이곳은 불행

의 공간이고, 또 누군가에게 모든것을 이룬 성취의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지속적 생존을

위한 공간이되기도 한다. 동일한 공간이지만 그녀들이 느끼는 그곳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에게도 공통점이 발견된다. 심리적 불안, 불만, 회의, 상실... 아내로서 엄마

로서, 꿈을 포기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여자를 잃어가고, 자신만의 삶을

잃어가는 여인들. 서로를 험담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들이 가진 불만에 다름아니다.

 

'라쇼몽'이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독특한 작품이라면, <알링턴파크 여자..>

는 동일한 공간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변화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선택한 공간이지만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 속에서 자신들이 진정으로 필요

로 하고 원하는 것을 놓쳐버린것에 대한 실망과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의 모습, 안정적인 가정을 갖고 있는 그녀들이지만 결국 여성으로서 살아

가면서 여성이 겪어야하는 사회적 위협과 불안, 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단 하루만의 삶

을 담아내지만 그 하루속에 여성들이 가진 여러가지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아내들의, 엄마들의 이야기... 시시각각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회와

삶에 관한 이야기, 그속에 담겨있는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결국은 타협이라는 단어와

만날 수 밖에 없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수많은 공감과 또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들의 하루가 섬세하고 솔직하게 그렇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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