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맛보는 해방과 자유, 1991년 델마와 루이스 라는 영화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존재에 대한 진솔한 모습을 그려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잔 서렌든과 지나

데이비스의 탁월한 연기도 좋았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 여러가지 사건들, 마지막

그랜드 캐년을 향해 질주하는 그녀들의 마지막 선택이 가슴 찡하게 했던 기억되는 영화였다.

<도피행>이라는 책을 펼치면서 왠지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리고

조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대한 도피, 아니 과감한

해방이 바로 영화속 그녀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여러가지 문제의식이 담겨있고 거기에 대해

고민케 하는 시사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게된다. 자신을 옳아매던 족쇄를 던져버린 한 여자,

그녀의 친구와의 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타에코, 쉰살의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딸의 엄마다. 20년 이상 자신을 괴롭혀오던 통증

으로 4개월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그녀. 어느날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애완견 포포가 옆집

아이의 장난에 놀라 아이를 죽이는 사고가 일어난다.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

였던 남편과 엄마의 모든 행동을 갱년기 장애로 취급하는 딸들은 포포를 안락사 시키자고 한다.

타에코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위안인 포포를 죽이다니... 잘못은 그 아이가 포포를 괴롭힌

것이 원인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타에코. 타에코는 포포와 함께 남편이 토지 대금으로 지불하기

로 한 2천만엔 통장을 들고 도피행을 나선다. 남편과 딸들에 대해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살았던 자신이 이제는 비아냥과 괄시의 대상일 뿐이란 사실에 그녀

는 하염없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게 된다. 언론을 통해 연일 그녀와 포포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현의 경계선을 넘어 얻어탄 화물 차량 운전기사를 붕락에서 구하는 포포, 다이짱, 겐과의 만남

이 이어지고 조카딸 가즈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타에코는 결국 또 한번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사건 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타에코와 포포는 한 귀농마을에 이르고... 그들의 도피행

도 이제 서서히 그 마지막 시간으로 흘러가게 된다.

 

요즘 여성과 관련된 가장 부각되는 문제를 꼽으라면 친권(親權) 관련문제와 얼마전 헌법소원

결정이 내려졌던 간통죄와 관련한 이슈일 것이다. 이 두가지 사건 사고와 관련된 이슈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듯도 보인다. 현실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의 의미

를 보여주는 동시에 요즘 여성이 가진 커다란 문제점 혹은 이슈가 바로 이 두가지 단어로 요약

된다고 할 수 있을것같다. 호주제폐지나 자식에 대한 친권문제에 대한 대두는 여성에 대한 기존

의 인식 변화가 한걸음 전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억압받고 자신의 주장조차 내세울 수 없었

던 여성들의 발언권이 조금은 신장된다는 측면이 엿보인다. 간통죄와 관련해서는 사회적인 통념

을 깨는 여성적 자유를 대변한다고나 할까?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지만 아직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어 보인다. 과거 여성계는 간통죄의 합헌을 주장해왔지만 얼마전부터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거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

을 남성들의 힘속에서 보호하고자 했던 여성계가 위헌을 주장한다는 것은 다시말해 어느정도

여성들의 자유의식?이 그만큼 커졌고, 우리사회에 간통에 대한 비율이 보이지는 않지만 많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친권논란과 간통죄, 이 두가지 현실을 대표하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속에 <도피행>속 타에코의

모습이 보여진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강요된 삶을 살았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괄시와 비아

냥에 불과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성들. 단순히 아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여자와 애완견의

현실 도피가 아닌 그 속에 숨겨진 뿌리깊은 여성으로서의 억압과 배신의 가슴 아픔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단, 단순히 그리고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느낀 배신과 억압의 족쇄

를 과감히,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그녀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떠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속 엄마의 모습처럼 말이다.

타에코의 마지막 모습속에 결국, 엄마일 수 밖에 없는, 아내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모습과 현실이 담겨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든다.

 

드라마 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아줌마파워는 상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재미를 대변하는

말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현재의 모습에서 아줌마,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말은 불륜과

일탈에 다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여권신장, 올바른 권리찾기에 나선 여성들. 무의식적

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 표현과 의식, 행동들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작은 부분 하나

하나에서 시작된 여성바로보기가 앞으로는 더욱 더 활발해지고 두드러질것이다. 엄마, 아내로

살아 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도피행>속에 말이다. 하지만 당당해지기 바란다. 도피

가 아닌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말이다. 작은 변화들은 그 속에서 이루어질것이다.

현실은 어둡지만 미래는 조금은 더 밝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