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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전 가장 존경하는 작가중 한명인 황석영 작가를 즐겨보는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수 있었
다. 현대사속 굴곡진 역사의 현장 곳곳에 서있었고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을 쏟아낸 대
작가의 진솔한 모습이 수많은 시청자들을 가슴 따뜻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작가인 나도 광대다.' 라고 하면서 '광대는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감춘 채 상대방에 비춘 여러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 그래서 홀로 있을 때는 슬픈 자아가 생기게 되는데 나도 그런 내면의 쓸쓸
함을 가진 광대다' 라고 하시던 말씀이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짓는 목수이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 존어빙. 페이지 터너(page turn
er)라는 별명을 갖고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라 평가받는 그의 소의 '목수론'이나 황석영 선생의
'광대론'이나 모두 작가로서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하나의 자세라고 생각
된다. 목수나 광대 모두 누군가를 위해 스토리를 창조하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스토리지만 더 중요한건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요한 그 누군가
의 대상은 바로 우리 독자이다. 독자의 독자에 위한 독자를 위한 작가로서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
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목수를 자처하는 작가, 존어빙의 지은 새 집을 구경하려
한다. 1958년 어느 여름, 그들의 집 일층에서 이층까지...
"슬픔은 전염되는 법이야... 나는 네가 내 슬픔에 감염되는걸 바라지 않았어. 에디,
루스가 감염되는 것은 정말로 원하지 않았어. (P. 365)
1958년, 토머스와 티모시 두 아이들을 잃고 끊임없는 고통속에 살아가는 테드 콜과 메리언 콜.
그들은 네살배기 딸 루스 콜과 살고있다. 소설가이지만 동화작가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루스
의 아빠 테드콜은 폭음을 하고 어린 여자를 밝힌다. 두 아이들이 죽기전까지 좋은 엄마 충실한
아내이면서 작가였던 매리언 콜은 사고 이후 차갑고 쌀쌀맞은 여자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드리워진 그늘은 보이지 않게 그들 가정에 짙은 어둠으로 자리잡는다. 그해 여름 그들
에게 한 소년이 찾아온다. 16살의 에드워드 오헤어. 필립스 엑시터 학교를 다니다 아르바이트로
테드의 조수일을 하게된 오헤어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소년은 매리언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되고 어느밤 어린 루스는 그들의 정사현장을 보게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매리
언은 가족들과 소년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시간은 흘러 1990년 가을. 작가가 된
중년의 에디는 아직도 매리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네살배기 꼬마 루스는 지금 너무
나도 유명작가가 되어버렸고 그런 그녀의 강연회에 초대받은 에디는 그녀와 재회하게 된다.
루스의 성장과 결혼, 그리고 이혼의 과정들, 에디, 테드와 매리언의 또 다른 인물들의 등장속
에서 이 네 사람이 간직한 과거의 상처가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진다. 간결하면서도 복잡함으로
뒤엉켜진 가족애와 사랑이 하나씩 조각된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상처가 있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충격과 슬픔속에 살아야만 했던 매리언과 테드.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독한 청춘의 아픔을 겪고 성장하면서도 사랑을 끈을 놓지 못하는 에디.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치유해가는 루스의 모습을 존 어빙은 이 거대한 집에 조심스
럽고 정교하게 나무를 하나하나 재단하고 쌓아 나간다. 치밀하게 짜놓은 양탄자처럼 촘촘하게 집의
뼈대를 세우고 곳곳에 암시와 복선이라는 붉은 카펫으로 이층 계단을 준비한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담긴 아름다운 그림들로 벽면을 장식하고 사랑이라는 영원 불멸의 모티브는 커다란 창속에
빛난다. 이야기속에서 느끼게되는 진한 감동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듯 뾰족지붕이 되어버린다.
이야기 짓는 목수라는 이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단순히 목수라기보다 건축예술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존 어빙이 지은 새집은 이런 모습이다.
'어빙의 인물들은 독자를 빙판 위로 꾀여 내서 거기서 춤추게 한다'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든다.
매리언과 테드, 에디 그리고 루스가 되어본다.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이 보고 느끼고 받았
던 상처를 함께해본다. 존어빙이 섬세하고 치밀하게 세운 <일년동안의 과부>라는 이집을 이제
잠깐 구경했을 뿐이다. 책속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는 두 번째 읽을 때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속에 담긴
복선과 암시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존 어빙의 집 구경이 아닌 월세 생활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시대 최고 이야기꾼이 지은 사랑, 기다림, 만남과 용서를 담고 있는 멋진
이 집에 한동안 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