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알 - 13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마키코는 내 왼쪽에 서고, 미도리코는 내 오른쪽에 서고, 좌석은 전부 차있다. (P.23)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엄마' 다. 부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해지고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미안함과 눈물이 되기도하는 그 이름 '엄마'.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

보는 엄마의 모습은 남자의 시각과 조금은 다를 것이다. 엄마가 바라보는 딸아이의 존재 또한

아들이란 존재와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성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가진 이질적인 부분이 공존할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엄마와 딸.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삶을 통해 자신과 여성의 삶을 미리 보는 창이 될 것이고 엄마의 입장에서는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딸에 대한 걱정과 염려와 같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거란 생각

이든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살아온 엄마의 이름과 그런 엄마의 모습에 미안함과 소중함

을 오히려 투정과 일탈이라는 거꾸로된 표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딸이라는 이름. 그 두여자

의 이름을 이 책 <젖과 알>속에서 불러본다.

 

여자가 되어가는 미도리코, 여자가 되고싶은 마키코의 이야기가 여기있다. 10년전 남편과 이혼

한 39살의 언니 마키코는 스낵바에서 호스티스로 일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인가부터 유방

확대수술을 받겠다고 한다. 그녀의 딸 미도리코는 초경을 걱정하며 여자가 되어가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엄마와는 벌써 6개월째 말도 않고 글로써만 대화하고 있는 상태다.

도쿄에 사는 주인공 나를 찾아온 마키코와 미도리코 모녀. 가게에서 일할때 입는 옷을 입고 자전

거를 탄 엄마를 보고 놀려대는 남자아이들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한 미도리코. 유방확대

수술을 한다는 엄마가 미도리코는 싫다. 자신때문에 없어진 가슴을 새롭게 채워 넣겠다는 엄마.

마도리코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런 미안함과 그녀에 대한 반항은

대화의 단절로 이어진다. 엄마 마키코는 어떨까? 가슴은 어쩌면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외부로

나타나는 표현과도 같은 것이다. 가슴이 없는 여자에게 가슴은 여성 그 자체를 상징할지도 모른

다. 다시 여자가 되고 싶고 미도리코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고싶은 마키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자 하는 미도리코와 일상의 작은 변화를 통해 여성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찾기를 원하는 마키코의 작은 반란, 혹은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녀들에게도 삶의 평화가

찾아오게 될것인지....





"아아, 마키코도 미도리코도 지금 현재 말이 부족해, 그리고 이걸 여기서 보고있는 나도

말이 부족해, 할 말이 아무것도 없어...."                                   (P.100)

마키코와 미도리코의 삶은 우리 사회 가족이 가진 대화의 단절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앞서 말했듯이 그리움과 눈물로 점철된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살아 온 엄마, 그걸 알지만 그런 엄마의 삶이 싫고 자신을 그런 삶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하는,

어른이 되는것을 거부하고픈 딸. 여성을 대표하는 젖과 알(난자)을 통해서 엄마와 딸이 가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지막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 깊었던 갈등의 골이 메어진다.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딸과 여자이기를 꿈꾸는 엄마의 작은

반란이 그렇게 시작되고 이어진다.

 

얼마전 만났던 맘마미아라는 영화속에서도 엄마와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혼이 임박한 딸이

엄마 몰래 아빠의 존재를 찾기위해 세남자를 초대하게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웃음 가득한 에피

소드들이 음악과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었다. 영화의 OST 중에서 "Slipping Through My Fin

-gers"라는 곡에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자꾸 클수록 내 곁에서

멀어져만 가요' 라는 가사가 있었다. 결혼식에서 딸의 머리를 빗겨 주며 부르던 엄마의 노래. 커갈

수록 딸은 조금씩 엄마의 곁에서 멀어져만가고 대화도 줄어들게된다는, 엄마가 느끼는 딸의 모습

이 가사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엄마는 가출을 감행한다. 수많은 희생

을 강요받던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며느리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선언

한 엄마의 반란을 잔잔하게 그렸던 드라마였다. 영화와 드라마속에는 이처럼 다양한 엄마와 딸의

모습이 수없이 그려지고 있다. 엄마와 딸 -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반자. <젖과 알>은 이런

엄마와 딸이 가진 서로의 시각을 '나'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결국 엄마와 딸의 소리없는 전쟁속

에서 포화처럼 터지는 대화를 통해 그 해답을 찾으려 하고있다.

 

어릴때 엄마는 뭐든 가능하게하는 원더우먼 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 가면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투덜거리게 된다.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이든 어른도 모두 어린이가 된다고

한다. 뭐든 가능하게 했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피어

났던 반항과 분노를, 이제 따스한 대화와 작은 스킨십으로 표현해보길 바란다. <젖과 알>을 통해

엄마와 딸이라는 이름속에서 피어나던 작은 갈등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배우게된다. 남자의 입장

에서 대립된 두 모녀의 갈등으로 상징되는 젖과 알을 통해 여성을 이해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간결한 문체와 탁월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짧지만 강한 인상의 이 작품을 만나 깊어가는 이 가을이

더욱 즐거울 수 있었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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