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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
(P. 164)
'고향' 이라는 말은 바쁜 일상의 작은 쉼표와도 같은 말이다. 쉴새없이 쳇바퀴 돌아
가듯 흘러가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잠시 쉴 있는 여유를 선물 받는다는 것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행복일 것이다. 어느 시골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성장 해왔던 사람들이라면 그 추억속 작은 이야기들은 더욱 가슴에 와닿고 하나
하나 따스한 속삭임처럼 들릴것이다. 평범함 속에서 찾아 내는 따스하고 진솔한
우리 인생이야기가 백양나무 옹이에서 곁가지로 태어난 한 나무의 시선을 통해서
예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우리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똥친 막대기의 모험속으로 이제 그 작은 발걸음을 옮겨본다.
"내 아랫도리는 면도날로 날려 버린 듯 매섭게 잘려 나갔습니다. (P. 25)
<똥친 막대기>의 모험은 평안하고 고요한 양지마을의 정적을 깨우는 이장집 아들,
화물 열차 기관사의 기적소리에서 시작 된다. 젊은 기관사가 마을 앞을 지나면서
부모님께 아침인사를 전하는 그 날벼락같은 기적소리에, 논에서 써래질 하던 재희
아빠의 만삭이된 암소가 놀라 달아나게 되고 이런 암소의 반란을 잠재울 요량으로
매질 도구로 사용하기위해, 최후에 똥친 막대기의 운명인 '나'를 꺽게된다. 우연을
가장한 이 운명적 상황에 똥친 막대기는 조금씩 비관하기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암소를 매질하면 허리가 부러질 처지였던 그에게 다행스럽게도 회초리의 기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암소의 목타래에 끼어둔 박씨는 소를 어미
나무에 매어두고 혼자일하기 시작한다. 어미나무에 다시 다가온 똥친막대기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봇도랑에 잠시 발을 담그는
수준으로 그치고, 암소 목타래에 걸쳐 재희집까지 운명적 모험이 시작된다.
싸리나무들, 돼지와의 만남도 잠시, 나는 재희를 매질하는 회초리의 운명으로
변해버리고 다시 똥친 막대기의 운명이 되어버린다. 기구한 운명의 똥친막대기는
재희를 괴롭히는 친구들에 대항한 살상무기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봇도랑가에 버려지고 만다. 그리고 장마비에 떠내려가는 똥친막대기, 하지만
또 하나의 특별한 행운이 그의 운명을 또다른 모습으로 바꾸어버리게 되는데...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 입니다. (P. 163)
수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믿는다. 나무는 수백년을 자라서 사람들에게 땀을 식힐
그늘을 선물하기도 하고, 좋은 가구와 종이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커다란 꿈을 키워나가 위해 많은 노력과 땀을 아끼지 않는다.
종종 찾아오는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에 좌절하기도 하고 현실의 벽에 막혀 그 꿈을
쉽사리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가지의 똥친 막대기가
될 운명, 하지만 포기와 좌절의 상처 속에서도 똥친막대기는 꿈을 접은 적이 없었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큰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견뎌내면서
땅속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꿋꿋하게 자라날 것이다. 운명에의 순응과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의지, 그리고 작은 행운에 감사하는 마음을 똥친 막대기의 모험을 통
해 배우게 된다.
투명한 언어로 맑고 밝고 섬세하게 써내려 간 똥친 막대기의 이야기를 통해서
김주영 작가를 처음 만난다. 많은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작가이겠지만
나에게는 낯설기만하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그 작가가 전하는 소중한 메세지를
듣게되는 일은 정말이지 즐거운 여행이다. 하찮은 나무 막대기의 운명적 모험속
에서 우리는 삶의 희망과 소중한 가치를 배우고, 그리고 어린시절 아름다웠던 추억
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운명속에서도 삶을 개척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또한 <똥친 막대기>를 통해 무의미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자연속 모든 것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과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만든다.
낯익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해, 잊고 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희망과 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행이 <똥친 막대기>속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