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산책
구로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 / 북애비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밤 11 시 ... '아빠, 산책 가자!'

한 여름에 만났으면 더 좋을뻔 했던 작품을 만났다. 무더운 여름 밤 11시, 혼자라면

너무 무서울 듯 하고 누군가와 함께 산책이라도 하게 된다면 분명 이 책의 제목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퍼런 얼굴을 한 여인의 모습도 같이..

일본의 공포, 호러 소설을 자주 접해보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 영화 [링],

[주온]과 같은 작품속에서 특징적인 일본이 추구하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느껴보았을

뿐 소설로서는 <밤 11시의 산책>이 아마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영화속에서 느꼈던

일본 공포, 호러의 특징은 귀신의 저주나 원한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에서는 우리의

정서와 비슷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 그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자면 끈적끈적다고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작품들의 경우 오밀조밀하면서 순간 순간 놀라게 만드는

구성을 많이 사용한다면 일본의 경우는 끈적끈적한 공포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밤 11시, 그런 끈적끈적한 공포가 시작된다.

 

"어린 아이의 신은 바로 엄마에요."

귀신, 유령, 사신... 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녀, 친구도 없고 선생님에게도 무시당하는

소녀, 그런 소녀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한 아저씨, 그리고는 다리에 목을 매어 자살

한다. 그런 아저씨를 보고 즐거운듯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는 소녀...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공포소설 작가인 타쿠로, 갑작스런 아내 미사코의 죽음으로

5살 치아키와 둘만 남겨진 그들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공포. 치아키는 엄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시커먼 머리를 늘어뜨린 시퍼런 얼굴의

여자!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치아키는 환상처럼 엄마의 존재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그림들을 그리게된다. 구름낀날을, 어두운 밤을,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장소를 좋아하는 이런 치아키의 독특한 취향을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타쿠로의 주변에 이상한 죽음의 그림자들이 드리우게 된다. 출판사

담당인 쿠스노키의 실종, 사토나카 선생의 죽음, 조카 히토미와 형 쇼이치 가족의

자살 등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그리고 타쿠로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된 미키의

등장은 치아키를 더욱 이상하게 만들어버리고 유치원 아이들, 미키, 그리고 형의 가족

과 쿠스노키의 꿈속에 시퍼런 얼굴의 여자가 찾아온다. 아내 미사코의 죽음속에 감춰진

공포의 비밀과 밤 11시 산책을 즐기는 치아키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 비밀속에 숨겨진 새로운 반전이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종이연극, 그리고 결혼 반지의 비밀

이런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무심히 지나쳐 버렸던 맨 앞부분의 소녀 이야기

속에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엄마를 잃은 아이의 슬픔이라는 시각속에서 이야기

를 이해하다가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에 할 말을 잃어버린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호러 장르의 특징을 끈적끈적한 공포라고 말했다. 반복적이면서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치아키의 미스테리한 행동들, 타쿠로의 집을 둘러싼 서늘한 기운,

혹시라도 밤에 마주칠까 두려운 시퍼런 얼굴의 여자,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온 몸을 엄습한다. 전혀 예상치못한 곳에

서 그 공포의 실체가 밝혀지지만 그 공포는 그렇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에 불과

한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공포영화의 경우, 희대의 살인마, 정신병자, 그리고 좀비와 같은 특정한

실체를 가진 대상이 등장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원한과 저주라는 실체없는

공포가 특징적이다. 그래서 최근 헐리우드는 자신들에게는 없는 이런 독특한 소재

의 공포물을 영화로 리메이크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이 다르고

또한 일본과 한국의 공포물이 조금은 차이를 나타낸다. 영화 [주온] 에서 들리던

'끄끄끄끄끄......' 하는 소리는 영화를 본후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끼리리, 끼리리리리, 끼리리....' 하는 이 책에서의 기괴한 울음

소리 또한 일본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것 같다.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음울한 배경과 괴상한 효과음들, 그리고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공포를 더욱 배가

시키는 작품이었다. 밤 11시, 이제부터는 그 시간이 조금더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

올 것 같다. 문득 돌아봤을때 시퍼런 얼굴의 여자가 날 뚤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을지... 일본 공포 소설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끈적끈적한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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