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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도 출근길 가판대 앞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신문들이 자리한다. 요즘 가장 많이
관심받는 멜라민 파동과 관련 소식들, 그리고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축구와 야구 선수
들의 어제 밤 활약과 사진이 스포츠 신문의 메인을 차지할 것이다. 어두운 경제, 주요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고 드디어 세번째 페이지, 삼면기사... 작은 박스에 둘러
쌓인 작고 작은 기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UFO 발견, 외계인 납치, 은밀하고 성적인
내용들이 담긴 이야기들, 치정에 얽힌 혹은 존속 살인과 세상에 이런일이에나 나올 법한
독특한 이야기들... 자극적인 제목과 소재들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보통 가십기사라는 표현을 많이 하곤한다. 000하더라 통신이 전해주는 패륜과 상식
을 벗어난 사건 사고들이 어두운 세상, 어두운 그림자속 숨겨진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쏟아낸다. 잡담과도 같고, 희한하기만한 세상이야기들이 그속에
가득하다. 삼면기사, 그 짤막하면서도 자극적인 이야기들의 실체속으로 들어가본다.
삼면기사 = 가십기사 라는 선입견으로 이 책을 만났다. 보통 작은 박스란에서 만나는
이런 가십기사들은 독자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는다. 6가지 작은 이야기들의 제목들만
보자면 충분히 자극적이고 시선을 잡아끈다. 26년전 살해 된 여자의 시체 발견, 정부의
아내를 청부살인하려 했던 여자, 16세 소년을 감금한 이혼녀, 선생님의 급식에 약을 탄
여학생들, 여동생의 살해 그리고 괴한의 정체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유기한 남자...
하지만 그렇게 자극적이기만한 이 작은 이야기들 속에 숨겨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가슴아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만하다.
사랑의 보금자리 - 바람을 피운 형부, 외로움에 시달리던 언니 미에코, 그리고 여선생의
죽음,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던 언니의 모습, 시간이 흐르고 후사에 자신에게 다가온
비슷한 운명의 그림자, 미에코에 대한 연민..
밤 불꽃놀이 - 유부남을 좋아하게된 치에, 불륜 상대의 아내를 괴롭혀 달라고 의뢰,
연인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은 자신의 돈과 모든것을 빼앗아가고, 치에는 무엇을 위해
살인을 의뢰하고 돈을 지불해가며 사랑을 샀던것일까?
저 너머의 성 - 두아이의 엄마, 이혼녀 아이코. 만화방에서 만난 16살 고교생과의
자극적 사랑놀이가 시작되고 그 수렁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그녀..
영원의 화원 - 어린시절부터 단짝 친구인 아미와 나쓰미. 미술 선생 다마야를 짝사랑
하는 나쓰미, 나쓰미를 사랑하는 아미, 결국 나쓰미를 위해 다마야의 급식에 항우울제
를 섞게되고... 청춘의 열병이 만들어낸 작은 사건.
빨간 필통 - 외톨이 언니 미치, 친구도 많고 사랑받는 나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활발하고 사랑받고 제멋대로인 나오, 미치를 둘러싼 참을 수 없는 고통. 결국 나오는
괴한의 칼에 살해되고, 하지만 나오를 살해한 괴한의 그림자는 바로....
빛의 강 - 44살의 테루오,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알치하이머 인지증 쉬운말로
치매에 걸린 휠체어 신세를 지는 노모를 모시고 사는 남자. 노모의 증세는 점점 심해
지고 생활비는 바닥나고 실업급여는 중단되기에 이른다. 간혹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노모는 자신의 병이 더 나빠지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데...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말하기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친구들과
술한잔하는 자리에서는 그 자리에 없는 친구의 이야기가 종종 안주거리가 되기도 한다.
가십기사 처럼 쉽게 취급되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 깊은 내막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나름의 가슴아픈 사연과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삼면기사의 작은 제목
만을 볼때는 자극적이고 별 사건들이 다있구나 하고 혀를 끌끌 차게되지만 그 깊은
속을 들여다 보고나면 휴~ 하는 한숨이 새어나온다. 앞선 3가지는 조금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들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감상이라면 뒤의 3가지 이야기는
공감이라는 반응을 불러온다. 집착, 존속살인, 그리고 패륜이라는 용어가 붙어다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보다 사랑, 고독, 사회적 고립이라는 나름의 애절한 사연들이 너무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불량 사건들이 삼면기사를 통해 소개된다. 기사로 짧게만 기록된
실제 이야기들이 가쿠타 미쓰요의 치밀하고 세밀한 묘사와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된다. 고독한 사람들, 그래서 더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들, 그 집착이 불러온
비참한 결말이 바로 이 삼면기사를 낳은것이다. 단순히 자극적이기만 하리라는 예상
과는 달리 그 속에서 만나는 사건의 실체를 통해 사회의 비극과 깊은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량 사건들을 돌아봄으로써 건강 사회를 만들 소중한 경험을 하게된다.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닌, 사회 일원들이 가진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고 나름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피로 얼룩지고, 돈으로 물든... 그런 3면기사 보다는 앞으로
조금은 과장되더라도 밝고, 허무맹랑하더라고 즐겁고, 조금은 무겁더라도 자극적이지
않은 기사들이 우리를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가쿠타 미쓰요의 즐거운 상상은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