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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 사랑과 행복의 다른
이름이 되는 곳, 이혼과 폭력으로 대변되는 상처, 추억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공간?!!
돈만 벌어오면 되는 아빠, 이제 가사가 지겨워 일탈을 꿈꾸는 엄마, 물질에 길들여진
딸과 아들, 갈곳잃은 할아버지 할머니... 황혼이혼, 기러기 아빠가 일반화되고 싱글맘
가정이 더이상 특별해보이지 않는 요즘의 현실속에서 '가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
일지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웃음과 행복, 아름다운 미래가 넘실대는 소중한 공간
에서 상처와 아픔, 공존을 잃어버린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가족의
모습을 돌아본다.
언젠가 남쪽에 있는 섬에서 매일 물고기를 잡으며 살자는 어머니와 나의
소중한 꿈. 우리 모자는 이불 안에서 끝없이 '언젠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1970년대 제철공업이 번창한 K라는 마을, 쇠퇴는 아니지만 어느 시점을 경계로
발전이 멈춰버린 지역, 소란스러움도, 활력도 없고 모든것이 케케묵고 움직이지 않는
마을 K. 그곳에 엄마와 내가 산다. 작지만 소중한 꿈을 키우며 사는 작은 가족.
그 공간속으로 슬며시 찾아 들어온 짱구영감!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누구나 그렇게
불렀다. 7살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는 아들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속에 하루
하루를 지낸다. 3년후 짱구 영감의 등장, 말 거간꾼, 노동판,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 등 여러가지 일에 전전하던 짱구영감은 어느날 홀연히 집을
떠나버리고 가끔 나타나 외할머니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엄마와 나에게 나타난 짱구영감. 엄마는 밤이되면 짱구영감이 보란듯 그의 머릿
맡에서 손톱을 깍곤한다. 그를 증오하는 엄마, 아무말 없는 짱구영감. 두 부녀의
애증관계는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1년이란 시간동안 이어진다.
"지금 교수실의 내 책상위에는 그날의 조개껍데기가 하나 놓여있다."
청소기로 툭툭 치기도 하고, 싫어하는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밤이되면 그의 죽음조차
지키는 것이 싫다는 듯 미워 하며 손톱을 깍아대는 엄마, 한마디 대답없는 외할아버지,
엄마의 불륜과 뱃속의 동생, 자신의 딸을 위해 피조개를 잡아 먼 거리를 지고 돌아온
짱구영감. 가족은 그런것이다. 미워도 미워도 미움이 사랑을 이기지는 못하는...
가끔 TV속 해외에 입양된 아이들이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는 모습을 보게된다. 왜
자신을 버렸을까 하는 미움이 앞서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보다. 서로 다른 언어
로 말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자신을 버린 부모와의 만남은 아무 말이 필요없어보인다.
눈빛 만으로도 손끝만으로도 느끼는 사랑이 바로 가족이다. 짱구영감을 그토록 증오
하지만 묵묵히 병실을 지키는 엄마, 엄마의 머리를 지긋이 어루만지는 외할아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있다. 가족의 사랑이란 화해란 그런것이리라. 쑥스러워 사랑한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너무 미안해서 말한마디 건네지 못하지만 눈빛에서 행동에서
그대로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께 크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 어느 누구
하나 잘 다녀오셨냐고 내다보지도 않는다고 화를 내시던 아버지. 그때는 뭐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그러신다고 투덜댔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외로우셨을 거다. 너무 커버린 아이들, 무관심했던 엄마, 그 속에서 아빠는 자신
의 존재감을 찾고 계셨는 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부모님께
그 말한마디 하지 못했는데 곁을 떠나버리셨다. 짱구영감의 조개 껍데기 처럼 내게도
아버지의 라이터 하나가 있다. 그렇게 가끔 아버지를 추억한다.
저녁놀이 지는 풍경속 멈춰버린 듯한 시간은 영원한 추억속에 자리할 것이다. 엄마와
나의 생활속에 찾아든 짱구영감과의 일년 남짓한 시간이, 잃어버렸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사랑과 행복이라는 가족의 이름 속에 용서와
화해라는 소중한 가치까지 더해주고 있다. 오늘 부모님께, 가족에게 꼬옥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표현하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