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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샤라쿠요, 즐거움을 그린다는 뜻이래요."
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라고 불리는 신윤복! 그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사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조부 신한평은 화원이었으나 신윤복이 화원
이었는지 조차 사실로 확인할 수 없다. 후세에 전해진 그의 그림을 보면 기생과 한량
들, 그리고 남녀사이의 애정과 풍류를 즐겨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말도 전해진다.
하지만 어느것 하나 그에 대한 정확한 사료적 근거는 남아있지 않은듯 보인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김홍도와 동시대인이지만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의 성별이 어떠했는지... 이 모든것이 의문에 쌓여있다. 어쩌면 이런 베일속에 가려진
그의 존재감 때문에 역사팩션소설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 더욱 다채롭고 신비스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즐거움을 그린 작가, 신윤복! 역사속에서 그가 새롭게 태어난다.
18세기 마네,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도슈샤이
샤라쿠 등장. 단, 10개월간의 행적과 그가 남긴 그림들은 수많은 화가들에게 뛰어난
영감을 주게된다. 샤라쿠가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김홍도라는 학계의 주장과는 다르게
<색, 샤라쿠>에서 저자는 그가 김홍도가 아닌 신비에 쌓인 화가 신윤복이라고 가정한다.
50세의 나이에 이른 김홍도가 일본에 나타나 떠들썩한 활약을 펼친다는 것이 설득력
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이 알려지지 않고 김홍도의 그림을 잘 모사했던 신윤복
이 김홍도의 제자였을 것이고 그가 바로 샤라쿠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조가 구상
했던 갑자년 계획이 등장한다. 신윤복과 김홍도, 정조대왕 그리고 당시 일본의 정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편의 흥미진진한 첩보소설이 탄생한다.
"호랑이를 찾게, 자네가 할 일은 그것이야."
18세기 조선, 조선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 한량과 다를바 없었던 화원 신가권(신윤복).
당시 김홍도는 정조의 명을 받고 일본의 정세를 은밀히 정탐하는 간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막부의 꼭두각시에 다름아닌 백제의 후예인 일왕은 교서를 보내 조선에 도움
을 청하려 하지만 교서는 도중에 누군가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에 그 교서를 되찾기
위해 적임자를 물색하던 김홍도는 당시 무뢰한과도 같던 신가권을 눈여겨 보게 되고,
그를 지도하기에 이른다. 일본으로 건너온 가권은 샤라쿠라는 이름을 쓰며 우연한
기회로 에도에서 목판화를 인쇄해 판매하는 쓰타야라는 인물을 만나 도움을 받으며
판화가로써 활약하게 된다. 그의 뛰어난 그림실력과 일본과는 다른 화풍은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게된다. 초상화를 그려주던 가권은 오이란이라는 예인
집단의 사유리라는 수습 오이란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한편 에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내리운다.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가권의 곁에도 그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는데.. 어떤 비밀은 간직한 듯 보이는 사유리와의 애틋한 사랑, 에도의 마치부교
하시모토와의 관계, 그리고 일왕의 교서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신가권. 쉴새없이 터지는
사건과 화가로서의 예술혼과 애절한 사랑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첩보활동... 읽는이로
하여금 한순간의 숨돌릴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시 조선과는 다른 서양 문물이 유입된 일본의 시대상이 이채롭다. 판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서양 의사와 의술, 그리고 게이샤와는 조금 다른 오이란이란 집단도 특별해
보인다. 단순히 조선의 풍속화가들로 생각했던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라의 운명을 건
첩보 활동을 담당한 주인공었다는 기발한 상상만으로도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치밀한 구성과 시대적인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든다는 느낌이다.
억지스러운 설정보다는 실제 역사속에 존재했던 베일에 쌓였던 인물과 비밀 조직의
실체를 찾고, 그 활약상을 세심히 뒤따라가는 느낌이 든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사랑
이라는 코드가 적절히 녹아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역사적 사실인양, 정조앞에서
펼쳐진 단원과 혜원의 대결속에서 보여진 풍속화나, 샤라쿠의 초상, 사유리를 그렸
다는 미인도 등 곳곳에서 볼수 있는 이런 그림들이 이야기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독자들에게 팩션소설의 매력을 만끽하도록 만든다.
임진왜란 이후 약200년이 지난시점에서 펼쳐지는 정조의 남벌 계획! 그리고 단원과
혜원이 비밀 첩보요원이었다는 독특한 설정! 이 두가지 사실만으로도 흥분과 기대를
받기에 충분해 보이는 작품이다. 거기에 최고의 화가들의 불꽃튀는 대결과 예술혼,
당시 조선과 일본의 시대상속에서 펼쳐지는 스릴과 박진감 넘치는 첩보대결, 그리고
애틋한 사랑까지 어느것 한가지 모자람 없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재미를 주고 있다.
이제 신윤복의 작품을 볼때마다 그의 삶과 사랑,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다. 아리따운 모습을 하고 풍류를 즐기는 천재작가의 모습보다는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며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좀더 인간적인 모습의 신윤복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