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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여, 안녕! ㅣ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1935년 그리고 오늘, 여든 넷의 노작가는 아직도 그의 생각과 희망을 햐얀 종이
위에 그려넣고 있다. 얼마전 타계하신 우리의 박경리 선생님이 노벨 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로 기대를 모았었지만 결국 그렇게 우리 곁은 떠났다. 그래서 인지 오에
겐자부로라는 위대한 작가를 품에 안고 있는 일본의 독자들이 더욱 부러운 이유인
지도 모른다. 1994년 소설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
아직도 펜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던
마지막 여정이 펼쳐진다.
안녕, 나의 책이여!
죽어 마땅한 자의 눈처럼, 상상했던 눈도 언젠가 감겨야만 하리니. (P.457)
<책이여 안녕>은 핵무기에 대한 공포와 저항, 위협에 대한 저항과 폭력에 대항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건 마지막
3부작이라 말했던 전작들을 만나보지 못한터라 새로움속에 책을 열게되었다. 소설가
고기토와 어릴적 친구인 건축가이자 폭파장치의 고안자인 시게루, 두 노인이 폭력에
대항하는 모의 테러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중인 고기토
에게 시게루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화기애애한 재회였지만 그들의 유년시절은 그리
유쾌한 관계만은 아니었다. 시게루와의 재회속에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고기토.
그와 함께 지내기로 하면서 블라디미르와 싱싱, 다케 다케시 형제의 등장, 시게루의
계획, 그리고 폭파의 실행.... 두 노인의 시각과 사상이 그들의 토론과 그들이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들의 대화속에 묻어있다. <책이여 안녕>은 조금은 천천히 차분한 맘으로
만나볼 시간이 필요한 책이다.
노인은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현세의 장소는 문제가 안된다.
우리는 나즈막이 나즈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노인의 어리석은 짓'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오에 겐자부로
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한 말이다. 그리고 'late style' 에 대한 고찰과 특권에
대해서 에드워드 W. 사이드의 말을 인용한다. 후기작품을 쓰는 노년작가는 원숙함과는
무관하게, 대립하는 요소를 모순이 있는 그대로 첨예하게 긴장된 상태로 표현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말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두 노인의 어리석은 짓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가진 주장을 그대로 펼쳐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대변하는 고기토와 또 다른 노인을
내세워 그가 하고픈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를 꼬집는 작가로 유명하다. 일본사회의 우경화!!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 그것이 바로 그가 말년 작가의 후기작품 기조로 결정짖게된 이유인것이다.
불안과 광기에 대한 노인의 공포심!! 을 통해서 일본 사회의 잘못된 흐름과 역사인식
에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국가권력, 폭력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가의 인생을 건 3부작
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소설가는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이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자식인 것입니다.
일제침략기인 1935년 태어난 오에 겐자부로. 그가 보아온 국가의 폭력, 실망감, 공포감..
을 있는 그대로 노인의 어리석은 짓으로 그에 대항하려한다. 그는 전쟁포기를 선언한
일본헌법 9조 수호를 위해 작은 정치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전달하려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다. 일본이 아직은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비뚤어진 역사의식
으로 가득한 정치인들, 야스쿠니 참배, 독도 문제 등으로 한없이 우경화의 길을 걷고있는
그들에게 오에 겐자부로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그가 살고있는 사회의 자식
인 작가의 가슴에도 국가를 사랑하는 뜨거움이 있을 것이다. 잘못된 길 에서 벗어나
올바른,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려는 그의 모습이 애처러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정치권력이 아닌 국민의 진정성을 매도하고, 작가라는 이름의 허울속에 국가권력에 기생
하는 국내 모 정치문학인?이 그런 의미에서 더욱 부끄럽게 느껴진다. 작은 차이가 완전
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노작가의 앞선 마지막 3부작을 뒤늦게라도 꺼내 보려한다. 그가
걷고자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의 길, 그 뜨겁고도 머언 길을 걸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