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그리고 10년만의 만남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말이다. 제5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야쿠마루 가쿠와의
첫만남이 있었던게 바로 10년여이다. 낯선 이름 이었지만 그보다 훨씬더 강력한 임팩트를 선물했던 그가 다시금 독특한 설정, 강력한 한 방을
가지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소년 범죄 처벌 문제를 다루었던 '천사...'처럼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시선을 멈출 수
있는, 그리고 한번쯤 숨죽이고 내용을 음미해볼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을 이번에도 그려넣고 있다.
[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은 오랫만의 야쿠마루 가쿠와의 만남이기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졌을까 더욱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표지속에는 두 남자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그것도 놓여있는 모래시계의 윗부분에 위험스럽게 서있는 두 남자 말이다. 그리고 그 부제
역시 '죽어야 하는 남자들'이다. 살짝 짐작이 가기도하지만 이 작품속에는 역시 죽음을 앞둔 두 남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둘의 처지가
비슷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전혀 상반된다. 한 명은 죽여야 하는 남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 남자를 잡아야 하는 남자다. 하지만 결국은 그 둘
다 죽어야 하는 남자들이다.
평범하면서도 아니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성공 모델로 부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카키. 하지만 사카키는 아무도 모르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위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지고, 사카키의 금지된 욕망이 분출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살인 욕망을
채워가는 사카키의 잔인한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반대편에선 남자, 아오이는 이 연쇄살인의 해결이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는 인물이다.
사카키와 마찬가지로 위암이 재발하면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고,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 없던 집념의 형사, 아오이는 죽음을 앞에 두고
연쇄살인범을 잡기위해 나선다.
죽어야 하는 두 남자의 숨막히는 대결, 시한부 판정을 받고 연쇄 살인을 시작한 남자와 그 연쇄 살인범을 추격하는 죽음을 목전에
둔 또 한 명의 경찰!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정과 캐릭터 구성이 아닐까 싶다. 아내를 잃고 아이들과도 소원한 관계인
아오이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줄 외로움 가득한 마지막 시간! 반면 기억을 잃어버린 이상성애자, 살의로 가득한 사이코패스 사카키 앞에
놓여진 죽음이라는 시간! 서로 상반되지만 기억의 조각들, 삶의 퍼즐들이 하나둘씩 맞춰지면서 이야기는 독특한 설정을 뛰어넘어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간다.
'재미있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오랜 바람을 이룬 자신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라. 이토록 재미있는 만남이 또 있을까. 사카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떠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 눈으로 범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싶어. 언젠가 사형대에 매달릴 그 녀석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 P. 261
야쿠마루 가쿠의 많은 작품들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이전 작품들과 조금은 다른 점을 꼽자면 역시 시작에서부터 범인이 누구인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사건을 풀어간다는 사실이다. 반전을 중시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던 작가의 전작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드러난다. 대신 범인과
경찰의 치밀한 대결, 심리 변화, 그들의 삶속에 숨겨져있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가면서 독자들은 반전의 재미가 아닌 미스터리속 심리 대결, 그들의
이야기 자체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된다.
죽음을 앞둔 이상 성애자의 연쇄살인은 간혹 우리가 언론속에 등장하는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행한 묻지마식 성행위의 사례를 떠오르게
만든다. 사회에 대한 불만일까? 아니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회에 대한 외침일까? 그렇다면 다른 한편에 서있는 아오이는 죽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비뚤어진 삶의 단편들을 마지막에는 올바로 꿰어 맞추고 싶다는 바램? 하나의 죽음을 두고, 전혀 다른 삶을
그리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새삼 떠올리고 깊이 사색하게 된다.
죽어야 하는 두 남자, 하지만 서로 상반된 삶을 선택한 두 남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린 재미를 녹여내고, 경찰소설이 전해주는
박진감 넘치는 재미를 건넨다. 작품 곳곳에 숨겨진 사랑이야기, 그리고 신입 경찰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 본격 미스터리가 전해주는
즐거움까지... <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은 오랫만에 만난 야쿠마루 가쿠의 특별함에 다시금 푸욱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독자들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두 남자의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던져진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