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또 다른 말이다!' 미야모토 테루와의 첫 만남, '환상의 빛'과의 만남에서 이런 말로 책의
마지막을 정리했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중 하나라는 찬사와 함께 했던 '환상의 빛'! 죽음과 함께하는 환상적인 빛이 아니라, 삶을 더
환하게 비쳐줄, 희망이 되어줄 빛의 모습으로 조금은 독특했던 미야모토 테루의 특별한 단편들과 만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오랫만에
다시만나는 일본 서정 문학의 진수, 미야모토 테루! 이번에는 또 어떤 감동과 여운을 전해줄지 기대로 맘이 설렌다.
40억엔이 넘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하루아침에 상속 받게 된 오바타 겐야의 모험? 아닌 미스터리한 모험이 시작된다. 미국에서 친척 하나 없이
혼자 살던 기쿠에 올컷이 일본 여행중에 사망하게 된다. 사망 사실이 겐야에게 알려지게 되고 겐야는 고모의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로스엔젤레스로
향하게 된다. 고모의 고문 변호사인 수잔 모리와 만난 겐야는 고모가 자신에게 유산을 상속했다는 사실을 듣게된다. 하지만 유언장에는 마지막
다섯줄이 삭제되었는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굳이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아마도 미스터리라고 불릴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서정 문학의
진수'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이기에 단순히 미스터리 라는 장르로 한계짓는것도 무리가 있을것 같다. 읽는 내내 잔잔하고 한적한 호수 옆
가로수길을 걷는 뒤쳐지는 풀과 나무, 흙 내음까지 가슴속으로 향기를 뿜어내고 따스한 햇볕에 온몸을 맡기듯 나른한 다사로움과 함께하는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문제의 마지막 유언장의 삭제된 다섯줄은 바로, 기쿠에 고모의 죽은 딸 레일라에 관한 내용이다. 유언장의 지워진 부분에는 '만약 레일라를
찾게되면 겐야에게 물려준 유산의 70%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겐야는 레일라가 여섯살때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일라는 죽은게 아니라 여섯살에 대형마트에서 실종된 것이었고, 만약 그녀가 살아있다면 지금 33살이 되었을 것이다. 겐야는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유산의 무게를 조금은 덜고자 지금도 행방이 묘연한 레일라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탐정을 고용해 레일라를 찾기에
이른다.
겐야는 기쿠에 고모가 살던 저택에서 레일라의 실종에 관한 비밀의 단서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된다. 고모의 비밀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의문의
편지들, 그리고 노트북의 비밀번호, 그리고 고모가 감추어 놓을 듯한 하나하나의 작은 단서들로 레일라의 실종에 관한 비밀들에 한 걸음
다가가게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기쿠에 고모의 비극적인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레일라의 실종 미스터리를
쫓아가는 여정,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예상치 못한 반전! 미스터리의 재미가 잔잔함속에 담겨진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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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상실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냈던 '환상의 빛', 그리고 실종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내면서도 그 속에 담긴 삶과 또 다른 희망을 그려낸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있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쓸쓸함이라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바닥에 깔아두고,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굴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는 삶의 모습들로, 어떤면으로는 경건함마저 갖게하는 무언의 힘을 두 작품 모두에서 느낄
수가 있다.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는 '빛'을 그려내는 힘! 미야모토 테루의 특별함이 아닐까?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선택의 이야기! 기분좋은 향기와 운명을 스스로 여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인 그런 작품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