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교장의 편지' 인기 폭발

  [조선일보 구성재 기자]


김충배(金忠培)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의 ‘편지’가 인터넷상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명 사이트마다 ‘육사 교장의 편지’란 제목으로 띄워져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기자 조갑제의 세계’(www.chogabje.com)에 올려진 편지만 해도 6일 현재 1600여명이 열람했다. 편지는 지난해 11월 22일 김 교장이 교내 강당에서 전 학년 생도 1000여명에게 강연한 내용으로  김 교장이 교수진으로부터 전달받은 외부인사의 글을 강연용으로 보충한 것이라고 육사는 6일 밝혔다. 김 교장이 강연할 당시 생도들의 분위기는 숙연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생도도 있었다고 육사는 전했다.

 육사는 강연 내용이 인터넷상에 올려진 것과 관련, "강연 내용이 좋아 학교 간부들이 띄운 것 같다”며 “육사에서는 메일 등을 이용해 교수와 생도들이 자주 대화를 갖는다”고 말했다.
 
      육사 교장의 편지 전문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
    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
    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
    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
    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
    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흐르는곡...John Barry/John Dunbar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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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성남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2004년 학군장교 임관식을 했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와 싸우며 3일간 연습을 했다. 아무리 많은 옷을 입어도 군복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어쩔수 없었다... 동기들과의 마지막 내무실 생활... 2학년 겨울방학때 처음으로 여 기와서 훈련 받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듯 육군소위가 되는구나!! 훈련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편한 생활을 하면서 3일간 재미있게 지냈다...

 26일 임관식날... 오전에 마지막 연습을 하고 추위에 떨면서 15시가 되기를 기다렸다...1시가 되니 부모님들이 한명씩 훈련소로 들어오셨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내무실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일어나니 14시 20분이 되었다. 은우가 부모님 오셨다고 해서 뛰어 나가니 목사님, 큰삼촌, 작은삼촌이 오셨다. 다들 추운데....와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2년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이제 육군 소위로 태어나는 순간....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애국심이라 할까! 뭔가 마음속에서 꿈틀 거리는것 같았다. 40분간의 임관식을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소위라는 실감이 났다.  3훈육관님이 정소위라고 부르니...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육군소위 정상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육군장교로 태어나는 3천여명의 젊음이들을 축하해주었다... 때로는 힘들고 고단했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는 우리 138 멋진 녀석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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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형 크리스천 -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는
문봉주 지음 / 두란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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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형 인간'이 인기가 많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 스타일에 젖어서 살아간다. 사회 생활을 하는 크리스찬도 마찬가지로 밤 늦게 까지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저녁늦게 갖는다. 이러한 삶의 스타일은 결코 아침일찍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꼭 이러한 이유 뿐만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유로 아침일찍 일어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고문이며 고통이다.

책의 저자는 자신을 어둠형 인간에서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게 한 간증을 중심으로 새벽기도의 중요성과 어떻게 하면 새벽기도를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있다.

책의 저자는 대사으로써의 자신의 삶을 비추어 자신이 새벽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이 된 비결을 10시가 되면 잠을 잤다는 것이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대사관의 신분이나 지위로 볼 때 저녁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공직사회에서 도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자신을 드렸다.

어둠형 인간에서 새벽 재단을 깨우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주일날 일어났다. 자신 때문에 억지로 교회 나오던 아내에게서 들은 한마디 때문에 그는 썬데이 크리스찬, 어둠형 크리스찬을 버리기로 다짐하게 돈다. 이후 꾸준한 성경공부는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성경공부, 세미나 등등 어디든지 쫓아가서 공부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맥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된다. 생각해 보아라! 강남의 술집을 주름잡던 사람이, 주일 새벽까지 술을 먹고 술냄새를 풍기며 주일 예배 드린 사람이 새벽기도를 참석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역자 된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뛰어 넘는다...

저자가 말하는 것 처럼 새벽 제단을 세우자!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만나자!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새벽형 인간이 되자, 하루의 시작을 새벽기도로 시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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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촌 희망교회 이야기 - 영등포 쪽방촌 광야교회의 기적
임명희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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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제적.사회적 풍요로움을 누리면 살고 있을때,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너무나도 사소한 것 조차 누리지 못하고 밥한끼 사먹을 돈이 없었어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른채, 아직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왔다.

포주, 알콜중독자, 창녀, 마약중독자... 흔히 우리가 말하는 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주의 종이있다. 이들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로부터 또한 가장 소중한 가정으로부터 버림많은 아픔은 밥한끼를 못 먹는 것 보다 추운데서 신문지와 박스로 자는 추위보다 더 이들을 아프게 한다.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부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등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관계를 무너뜨렸다. 이러한 아픔 즉 관계의 단절을 마약과 술, 담배, 도박으로 풀어 보려고 하지만, 그들의 아픔은 더욱더 커져만 간다. 무엇으로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할수 있을까? 우리가 던져주는 동정어린 돈 몇푼이 과연 분노와 시기와 살인을 가득찬 그들의 차가운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인내를 요한다. 때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칼로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행패를 부린다. 이런 무법천지에 자신의 인생을 건 주의 종이 있다. 바로 광야 교회의 목사님이시다.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면서 그들과 함께한 목사님의 목회는 과연 하나님이 도우심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 이름처럼 영등포 쪽방촌은 광야다. 그들의 삶과 마음은 메마른 광야와 같다. 쪽방촌 주민들은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을 간직한채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 차라리 죽으면 좋으려만 그들은 한평도 안되는 쪽방촌에서 살아가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늘 술을 먹고 싸운다. 또 술을 먹고 아무데서나 잔다. 갈곳도 없거니와 술을 먹은 그들을 도봐줄 사람도 없다. 하루살이 인생처럼 그들은 하루벌고 방값내고 남은 돈으로 술을 먹는다.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희망이 될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곳에 희망의 씨앗이 떨어졌다. 바로 광야교회다. 광야교회는 영등포 쪽방촌의 희망이다. 죽지 못해 죽어가는 그들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고 있다. 가난하고 헐벗고 외면 당하는 이들과 함께한 예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사회와 가정으로 부터 외면당하는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삶의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고 계신다.

헐벗고 지친 불쌍한 영혼들과 함께하라는 주의 부름심에 순종한 목사님 처럼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라고 말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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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주위에 많은 친구들, 선배들이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던 책이다. 그러나 원래 이런 책 종류에 대해서 별로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읽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가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어 보라고 말을하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책을 잡았다... 한시간만에 책을 다 읽었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다 읽고 말았다.

변화... 새로움...두려움...안주...또 다른 변화... 아마 우리의 삶이 아닐까? 어딘가에 안주하면서 평안을 누리려고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밀려오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두려워 하거나 당혹스러워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적응해 가면 우리는 또 다시 안주하려는 본능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변화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또한 변화를 강요한다. 흔히 변화라는 녀석은 갑자기 찾아 온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오는 변화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변화는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다. 변화는 다가오기 전에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이러한 신호, 조짐은 우리에게 준비 할 시간을 준다. 변화에 대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애써 외면하거나 도피하려고 한다. 외면, 도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 또한 변화의 폭풍앞에 직면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불어 닥친 변화의 폭풍을 직시하고 있다.

이 변화를 두려워 하지말라! 두려움이 없다면.. 그 만큼 성취감도 없다. 두려움이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스니퍼, 스커리' 처럼 변화의 조짐을 알았다면, 과감하게 안주와 무사안일주의의 태도를 버려라! 그리고 자신이 갈 방향을 잡고 씩~~ 웃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필요 할 것 같다.

지금 변화하는 자신의 삶 가운데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원한다면 '치즈'를 원한다면 지금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를 읽고 '허' 처럼 미로를 향해서 달려라 미로를 달려갈 때 치즈의 향기와 모험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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