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
본문: 마가복음 10장 46∼52절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풍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풍족함이 우리에게 꼭 행복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할 때마다 이 세상에 희망이 없는 듯 합니다. 카드 빚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버리는 끔직한 일이 우리 주위에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추운 겨울 어린 자녀를 한강에 던지는 무정한 아버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 등등 예전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베오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돈을 기대하면서 아무런 희망 없이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에게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당시 소경들은 모세율법에 따라서 보호를 받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사람으로 대접받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사회는 소경, 절뚝발 등 몸이 불완전한 자는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 할 수 가 없었습니다.(레2:18-21) 그는 구걸을 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누더기 같은 겉옷을 의지하여 여리고로 들어가는 길가에 앉아서 사람들에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메오의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가 줄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앉아 있는 길로 예수님이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언젠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 이신지 바디메오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바디메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여리고로 가는 길은 시끄럽고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그리는 소리로 매우 복잡했을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있는 바디메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기 앞을 지나가는 무리 가운데 분명히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된 바디메오는 큰소리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첫째, 바디메오는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47절에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주저함 없이 소리지르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랬을 것입니다. 비록, 바디메오가 육적으로 소경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모여든 군중 속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인 인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모여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선지자들이 오랜전에 예언한 메시야임을 알았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크신 이적들 중 그 어느 것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이적의 현장을 그리고 죽은 자를 말씀으로 살리시는 이적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눈이 멀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를 행사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혹은 주위의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들었고 그 들은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 즉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민감한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메시야임을 알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바디메오는 육적으로 소경이었지만, 분명 영적으로는 소경이 아니였습니다.
둘째, 바디메오는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48절에 '많은 사람이 꾸짓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소경 거지인 바디메오가 크게 부르짓을 때에 무리들은 으레 그렇듯이 돈을 구걸하기 위한 거지의 본성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꾸짓어 잠잠하라' 고 제지했습니다. 만일 바디메오가 여기서 포기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포기한 바디메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비참한 자신의 옛자리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는 평생 소경으로 거지의 신세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심히' 소리질렀습니다. 분명히 바디메오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죄인으로 또는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없는 무력한 사람으로 한마디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상한 육신과 영혼을 끌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세상의 온갖 방해가 따랐습니다. 그는 몰인정한 구경꾼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았고, 집요하게 던져지는 조롱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바디메오는 자신과 예수님의 만남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극복하였습니다.
셋째, 바디메오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50절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여기서 '겉옷'이란 통으로 짠 속옷(tunic)위에 걸치던 네모란 긴 천으로, 가난한 자들에게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디메오를 불렀을 때 그는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차서 뛰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그 말 한마디에 그를 감싸고 있던 절망과 비참한 모든 것이 떠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겉옷마저 훌훌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혹 누가 가져 갈까해서, 거적거리거나 깡통이나 겉옷을 챙기느라 우물쭈물하고 미적거리지 않았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군중들에게 떠밀려 예수님은 떠나가고, 바디메오는 영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자신이 가진 전부라 할 수 있는 겉옷을 내어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넷째, 바디메오는 무엇이 자신에게 절실한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보기를 원하나이다)
맺으면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다.(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