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열전 -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삶과 고난, 그리고 승리에 찬 죽음에 관한 서사!
존 폭스 지음, 홍병룡 외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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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열전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박해와 고난을 당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사실 기독교는 박해와 고난의 역사이다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는 바로 어제의 박해와 고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박해와 고난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그리고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박해와 고난 그리고 죽음으로 지킨 신앙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그렇게 처참하게 순교해야 했을까누구하나 비겁하게 도망가거나 자신에게 주 어진 순교를 외면하지 않았다또한 로마제국 시대에 터무니없는 이유와 오해의 밀미로 죽어야 했던 성도들은 또 어떠했나이들이 보여준 신앙은 오늘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의 순교는 외부에 의해서 일어났다저급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자기의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순교는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일어나게 되었다외부의 박해와 고난은 언제나 있어왔다그러나 내부의 박해는 교회내부의 부패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교회내부의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서 교회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다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계속되는 핍박 가운데서도 교회는 쓰러지지 않았다오히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는 더 하나가 되었고 진실한 신앙을 찾기 위해 계속 개혁되어 졌다아직도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교회는 외부와 내부에 의해서 지속되는 순교의 위협 앞에 노여있다지금까지 교회가 그러하였듯이 교회는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위협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진짜 신앙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나의 신앙은 무엇인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신앙에 대한 염증이나 확신이 없다면 꼭 순교자 열전을 읽어보고 왜 수 많은 성도들이 생명을 버리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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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심장 - 오늘을 마지막으로 사는 최전방 선교사의 순종일기
이시온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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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온 선교사님의 천개의 심장을 많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읽어 내려갔다어쩌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어서 느낄 수 있는 마음 일수도 있지만계속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단순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해서가 아니라 선교사님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새삼 느끼게 되면서 나의 부끄러움은 한층 심하게 나에게 몰려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생각해본다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에서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예수님을 죽도록 사랑했고 죽도록 사랑하는 예수님이 그 땅의 사람들 역시 죽도록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육체적인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올 때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걸음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선교사님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 때문에 다시 일어난다자신이 직면해 있는 고통과 어려움보다 그 땅의 고통 받고 불쌍히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눈물 흘리고 있는 주님의 통곡 때문에 선교사님은 주저앉을 수 없다심장을 찢는 듯한 고통을 느끼지만선교사님이 그 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좁은 길을 가기보다는 넓고 잘 닦여 있는 대로를 원한다낮은 곳에 있기 보다는 되도록 높은 곳을 바라본다다른 이들이 당하는 죽을듯한 고통보다 나의 시간과 나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세상에선 내가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말도 못하는 부끄러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좁은 길에서 그리고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죽을 듯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만약 이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다시한번 재점검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예수님이 흘리시는 사랑의 눈물이 더 이상 나의 눈물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교사님의 순종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예수님의 눈물이 예수님의 고통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와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천개의 심장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26세에 순교한 루비 켄드릭 선교사님의 묘비명에 만일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6세의 나이에 순교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어둠의 땅 조선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이 루비 켄드릭 선교사님의 눈물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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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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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의 울지 않는 아이를 읽으면서 저자의 삶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모든 내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였지만오늘을 살아가는 바쁜 나에게 다시 삶을 뒤돌아보는 여유를 준 것 같다그냥 정제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현실 그리고 이상을 써내려간 것 같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중심을 엿 볼 수 있었다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열어놓았지만 무엇인가 잠겨 있는 듯한 그리고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또한 그렇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그러나 그 가운데서 저자의 중심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세련되게 때론 아주 직설적이고 투박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에세이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특별히 이 세상의 좋은 것아름다운 것에서 그림과 문장에 대해 언급한다저자가 생각하는 청결함이란 바로 그림이다자신이 작가이지만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한다그 이유는 그림은 사소한 것을 사소한 그대로 가둘 수 있다그럴 수 있음의 청결함을나는 때로 간절히 소망한다그냥 거기에 있을 뿐인 … 확대도 축소도 없고 농축도 희석도 없이 이 세상의 좋은 것아름다운 것을 모두 그려놓았다.”(p29)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사소한 것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을 소망한다그냥 있는 것 보다는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확대도 해보고 축소도 시켜보고 요리저리 무엇인가 변형을 가함으로서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다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한신 타이거는 픽션이다.”에서는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대모험이다끝나고 나면 모두 흩어지는 꿈그 찰나적인 느낌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내가 마치 롯데 자이언츠를 믿는 것처럼 저자는 아무리 한신이 큰 점수차로 지고 있어도 역전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이대로 끝날 수 없다라는 그냥 믿는 믿음을 한신 타이거에 있다그래서 이미 저자에게 한신 타이거는 현실을 넘어 현실을 초월한 존재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

 

 왜 제목이 울지 않는 아이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그러나 딱히 책을 읽을 때 까지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왜일까라는 궁금함은 지울 수 없다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의 저자의 글을 통해서 조금씩 변해가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런 저자의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마치 바쁜 일상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등 치는 나의 현실을 볼 수 있었고 이러한 현실을 초월해 가는 저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이 작품은 저자의 작가 초년병시절의 에세임을 짐작할 때 자신의 위치와 영약을 확고히 하려고 했던 자신의 의지속에서 울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모습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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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 듣기 -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조태성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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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의 연수를 떠나 자신의 삶속에서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나이와 남녀의 성을 떠나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알고 싶어하고 기대하고 소망한다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에 대해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대표적인 오해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들려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령님의 은사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금식기도를 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다이러한 오해는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라고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어 버린다그러나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특별한 사람이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나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예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이것은 곧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주파수가 정확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꼭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은 것으로만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고 비가 몰아치는 듯한 경험한 분들도 계신다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듯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많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을 통해 그리고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말씀하신다또한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듯이 초자연적 영영과 은사와 관련하여 꿈과 환상크고 작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결국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성령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연습과 훈련이다주파수를 맞추는 연습을 계속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그러나 결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이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가 주체가 아니며 우리가 시작점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이 되시면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멍하니 살아 갈 수는 없다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필요하다기도와 간구가 꼭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예민해지고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그러나 결코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어선 안된다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십자가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 영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삼위일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는 삶이다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먼저 내가 얼마나 하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우리의 삶의 자리를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하나님과 얼마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과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적인 방법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흔히들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오해에서 시작하여 우리의 삶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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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믿음 -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케빈 하니 지음, 배응준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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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한 야성을 잃어버렸다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초대교회와 이 땅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에 공통점이 있다면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 아주 야성적이었다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탐험의 세계이며 신비로움이 가득한 곳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싸워야 하는 전쟁터였다그러나 언제가 부터 천천히 그리스도인들은 길들여지기 시작했다이제 세상은 더 이상 탐험해야 하는 신비로운 곳이 아니라 편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쇼파와 같은 곳이며 전쟁터가 아니라 협상의 테이블이 되었다우리는 이제 도전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뛰어들지 않는다이제 더 이 세상은 변화시키고 개혁 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다세상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가면 되는 곳이다그러나 과연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야성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무엇이라 말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세상에 길들여진 그리스도인들을 무모한 믿음으로 초대하신다그리고 세상을 향한 야성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그러나 무모한 믿음은 단순히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것이 아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기대를 적당히 자기 합리화 시킨다는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예상하는 것과 다른 결과나 나오며또한 자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케빈 하니가 말하는 무모한 믿음야성의 회복은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철저히 자기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그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칙들을 말하고 있다먼저는 기도이다무모한 믿음의 시작은 기도에서 시작한다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넓은 시야는 결코 우리의 경험이나 능력지식이 아니다넓은 시야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혜를 가진 성도들이다마지막은 기도와 성경지혜를 가진 성도들을 통해서 무모한 믿음을 가졌다면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다기다리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조급해 한다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다릴 것을 말하고 있다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훈련이기 때문이다무모한 믿음은 절대 자기를 합리화 시키거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하나님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이다무모한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그리스도인들을 무모한 믿음으로 초대하는 것일까조금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믿음은 없을까그리고 때론 왜 우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하나님께서 벼랑 끝으로 우리를 몰아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한 쇼파에서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안전하게 믿음을 지키려고 한다그곳에 안주하려고 한다그리고 야성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외면한다왜 우리입니까또는 왜 우리가 뛰어 들어가야 합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하지만예수님께서 가장 무모한 믿음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본을 따라야 한다완전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무모한 믿음의 최상의 본이다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무작정적으로 없는 야성을 키워서 도전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하루 이틀 근육 운동을 한다고 근육이 생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루 이틀 야성을 키운다고 야성이 결코 자라지 않는다마찬가지로 무모한 믿음은 마음이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완벽한 모범적인 모델이 있어야 한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그 모범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여 주셨다그리고 따라 오라고 친히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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