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 꼭 이겨야 할 마음의 죄
제리 브릿지즈 지음, 오현미 옮김 / 두란노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정직하고 겸손하게 우리의 교묘한 죄를 인정해야만 그 죄 사함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와 직면해야 한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개념 중의 하나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었습니다. 20대가 되어서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신앙단체에서 생활을 시작했으니 당연히 그때까지의 죄에 대한 의미는 도덕적인 것과 법적인 면에서의 죄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한데 처음부터 대놓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고, 나도 당연히 죄인이고,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서 구원을 얻은 존재라는 개념은, 말로는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심정적으로는 한동안 동의가 되지 않는 개념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이고, 세상의 첫 사람인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원죄를 안고 있다는 개념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해 지식이나 정보가 전무한 초보 신앙인이었던 내게는 아무래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그리고 나의 죄에 대한 고정관념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고 깨달아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문제들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문득 그때의 내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자가 말하는 죄의 목록들이 그때만큼 갈등을 일으키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때 가졌던 것과 비슷한 생각들이 하나 둘씩 발언권을 얻으려고 꿈틀거리고 있다고나 할까요. 저자가 말하는 확연히 구분되는 우리 시대와 문화가 안고 있는 자명한 죄가 아닌, 그보다 더 세련되고 교묘하고 점잖은 죄의 목록들을 들여다보며 방심이라도 할라치면 순간 내 안에서 이런 말들이 뛰어 나오려고 꿈틀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걸 죄라고 하면 어찌 살겠나! 나도 사람인데, 그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 줘야지! 아니, 그건 죄라기 보다는 인간 본성이 아닌가! 세상에 살면서 옷깃에 세상의 물이 드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허, 그냥 산속에 들어가 면벽이나 하란 말을 하지 그러나!...... 하지만 저자는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답지 못한 것', 거기에 해당되는 모든 것은 죄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죄는 되고 저런 죄는 안된다는 기준을 주신 적이 없'으며, '모든 죄는 다 불법'이라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저자가 말하는 죄의 목록을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세상안에 살면서 구별되기보다는 현대인들의 감수성에 맞게 그리고 듣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죄의 개념을 순화시켜 명백한 중대 죄악만을  죄로 재규정함으로써, 사소한 죄에 대한 자각이 의식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가 묵인하는 성도의 점잖은 죄든, 우리가 지체없이 정죄하곤 하는 극악무도한 죄든 , 모두 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질책을 받을만한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죄의 목록은 실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명백하게 죄라고 인식하게 되는 그러한 종류의 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삶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죄라는 자책조차 없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곤 하는 성도답지 못한 행동에 대한 목록입니다.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목차에 저자가 언급한 것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노라면 모두 내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많든 적든, 자주 나타나든지 아주 가끔씩만 저지르든지, 바로 내 삶에서 내가 보인 것들이고, 그러한 생각에 이르면 바울 사도의 말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죄인이로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게 됩니다. 불경건함 - 하나님 없이 사는 죄, 걱정과 좌절 -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죄, 불만족 - 하나님이 주신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죄, 감사하지 않음 -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는 죄, 교만 - 자기만 높이는 죄, 이기심 -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의 죄, 자제력 부족 - 욕구에 지배당하는 죄, 참을성 없음과 성급함 - 모든 것을 내 기대에 맞추려는 죄, 분노 - 해결하지 못한 이기심의 죄, 비판주의 - 감히 하나님의  역할을 침해하는 죄, 시기와 질투 - 한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를 경쟁자로 여기는 죄, 혀로 짓는 죄 - 남을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죄, 세속성 -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죄..... 바로 신앙인이라는 내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각각의 목록뒤에 저자가 붙인 죄명은 변명하고 싶지만, 신앙인으로서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성경의 말씀들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돌이켜본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는 곤고한 죄인이라고 한탄만 하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저자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죄에 대한 정죄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도 넘치게 되듯이, 우리의 죄에 대한 자각은 바로 또 다른 은혜의 통로요,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는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요, 형제에게 욕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리고 실제 삶에서 살인이나 동성연애나 낙태, 마약 등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정죄하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말씀이 말하는 것,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것들을 어기는 것, 즉 성도답지 못한 모든 것들이 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화내고, 남을 비판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걱정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시기와 질투에 잠을 못이루고, 경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죄라는 사실을..... 하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그러한 지적을 통해서 선사하는 선물은 그런 죄에 대한 자각에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성결하게 살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죄를 자각하고 그것들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는 회개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가로막곤하는 이러한 교묘한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면이 훨씬 더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의 심각한 죄에서 뿐 아니라 이러한 교묘하고 점잖은 죄들에 대해서도 복음안에서 우리가 사함을 받았고, 성령님의 꾸준한 도우심 안에서 그것들을 깨닫고 자각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격려를 통해서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고, 성화된 삶으로의 경주를 기쁜 마음으로 소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겸손히 저자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 아닐는지..... 간음한 여인을 고소하는 이들을 향해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음성을, 나의 삶이라는 또 다른 영역에서 예민하게 듣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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