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고무벨트 방식 -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회사 만들기
DRB 지음 / 스리체어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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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다차원입니다. 변화는 수직이나 수평의 축을 따라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다차원을 감당할 수 없는 선형적 구조의 기존 패러다임을 해체할 때가 되었습니다. (p.80)

동일고무벨트,
한국의 고무 제품 제조 기업이다.
1945년 부산에서 시작해 2025년 창업 80주년.

이 책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변화해온 방식을 이야기한다.

한참 사업계획 시즌이라 관심있게 읽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에,
여전히 사업계획을 꼼꼼히 보시는 분들.
불안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인지,
진짜로 무언가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 이 책은 조직체계의 뿌리와 작동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Q. 기존 조직은 왜 새로운 세계와 충돌하는가?
A1. 1차원 트리 구조는 다차원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p.76)

이 책을 읽으며 명확해 진 점은,
지금 조직의 한계와 나아가야 할 방향.

AI까지 행위자로 나선 마당에,
정보, 권한, 목적이 부서단위로 단절된 조직은
절대로 유연하게 흐르지 않는다.

AI가 부서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조직의 토양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지금도 체감 중이다.

책에서는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고구마 뿌리줄기처럼 중심없이 확산하는,
자유롭게 연결되는 네트워크 구조.

사일로 없는 이러한 조직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리셋되어야 하는가.

동일고무벨트는 시도하고 있다.
기존 조직을 전환하는데 10년의 시간을 설정해두고.

랩조직을 가동하면서 시행착오를 살피고 전환하기.
대기업보다는 빠르고 유연하게, 스타트업보다는 시간을 견뎌내면서.

정말로 이러한 조직이 구현 가능하다면,
배워야 하는게 아닌가.

어쨌든 지금의 조직 구조가 분명히 제약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바꾸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시도해보고 있다.
그 점만으로도 배울 일이다.

Q. 왜 기업의 존재 방식을 다시 물어야 하나?
A1. ‘후기 노동 경제’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다. 인간이 육체노동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문명의 전환이다. (p.60)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현실이 된 시대,
조직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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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책
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 필로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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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더없이 기분이 좋다. 두 사람이 - 오늘 본 두 사람은 차이나타운의 캐널 스트리트에 있던 이들로, 엄마와 아이 같아 보였다 - 짐이 든 장바구니나 빨래 바구니의 손잡이를 각자 한쪽씩 잡고 가는 장면. (p.82)

이 책을 읽는 내내 세라 망구소가 떠올랐는데,

마침 저자가 세라 망구소의 책 <300개의 단상>을 언급해서 무언가 통한 느낌이다.

로스게이는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책에 담긴 일화 중, 공항 직원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고.

그는 시를 낭독하러(reading poem) 간다고 했더니, 직원이 동료에게 하는 말 “이봐, 마이크, 저 사람 시라큐스로 손금(reading palm) 봐주러 가는 중이래.”

너무 귀여운 오해가 나를 빵 터지게 했다.

일상에서 기쁨의 순간을 채집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슬프고 답답한 순간에 무얼 쓰고자 했지, 기쁨의 순간에는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의식적으로 기쁨을 채집하다보면 더 많은 기쁨을 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김목인 번역가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작은 기쁨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충분히 기뻐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이 책에 섬세하게 묘사된 기쁨에 대해 읽다 보니 무거운 현실이란 거기에 골몰하기 때문에 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p.274, 옮긴이의 글)


기쁨을 채집하는 일이란 그리 멀지 않다.

어제 독서모임에서는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나눴다. 각자의 경험과 책에서 말하는 의미를 나누면서, 이렇게 삶에서 사랑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을 나눠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대화의 기쁨.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을 '발견'하는 기쁨. 표현하고나서야 명징해지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나눌 때의 기쁨.

하루를 그렇게 마치고 나니, 회사에서 하루종일 있었던 어처구니 없던 일과
허망함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말고 채집할 것.
그럴수록 마법처럼 더 많은 기쁨이 몰려온다.

로스게이가 하고 싶었던 말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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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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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나 베트남에 가면 길거리에서 사탕수수 주스를 판매한다. 그때마다 귀한 거라며, 사서 마신다.

사탕수수가 얼마나 귀한 것이 되었는지,
트럼프가 콘시럽 대신 사탕수수 설탕 콜라를 요구하자, 코카콜라사는 곧바로 제품 출시를 약속했다.
(곧바로 사탕수수 설탕을 사용하는 멕시코 콜라가 화제가 되었다.)

옛날에는 노예를 이용해 사탕수수 재배를 하고 설탕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에는 그보다 더 저렴한 콘시럽과 당 대체제가 넘쳐난다.

그래서 진짜 사탕수수가 귀하다.
동남아 여행에서
길거리 사탕수수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이 책은 사탕수수에 얽힌 역사를 알려준다.

태평양 뉴기니섬에서 최초 재배한 사탕수수가 인도, 동남아, 하와이로 퍼져나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화하면서 흑인 노예를 이용해 사탕수수 재배를 했다.

사탕수수는 즙을 짜내 끓이고 불순물을 제거한 뒤 가루 형태의 설탕을 만들 수 있는데, 3미터가 넘는 수숫대를 일일이 손으로 베고, 수수가 마르기 전에 빠르게 즙을 짜고, 즙을 짜기 위해 장작을 모으는 일이나, 짜낸 즙을 끓여 설탕을 만들기까지 고난의 과정이다.

그 열대 기후속에서 그러한 고된 일을 했을 노예들의 생활이 얼마나 처참했을지.

영국에서는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마시는 생활을 일찍이 했는데, 그 설탕이 이렇게나 가혹한 노동의 산물이었다니.

아프리카 흑인 역사도 참혹했지만, 이후 하와이로 넘어가게 된 설탕 산업에서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노동자로 터전을 잡게 된 것도 기억에 남았다.

조선은 하와이 전역의 약 40개 설탕 농장에 분산 배치되었으며, 인원은 농장마다 적게는 30여명, 많게는 200~300명에 달했다. 하루 10시간 노동에 점심시간 30분 정도가 휴식으로 주어졌고,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금지되었다.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루나’라고 불렸던 농장 감독관은 소나 말을 다루듯 채찍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제했으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릴 정도로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p.232)

향신료, 설탕, 커피 등 인간의 탐욕이 담기지 않은 식재료가 있었을까.

설탕을 누리는 유럽사람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노예. 그로 인해 번성했던 플랜테이션 산업.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참혹한 과거사를 갖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책이다.

그나저나 사탕수수 설탕 콜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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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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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검사가 실제 업무에서 해야 하는 일은 기소할 사안을 고르는 일, 즉 혐의가 가장 명백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가장 크고 증거가 가장 명확한 사안을 고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검사가 기소할 사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곧 기소할 ‘인물’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검사의 권한에서 가장 위험한 측면입니다. 즉, 검사는 기소할 필요가 있는 ‘사안’을 고르기보다는 처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고르게 됩니다. (p.19)

80년 전, 로버트 잭슨 전 미국 연방 법무부 장관의 연설.
오늘날에도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한겨레>에 연재한 <검찰을 묻다> 시리즈를 묶은 것이다.
박용현 저자는 이 시리즈로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24년 7월부터 25년 5월까지 쓴 글.
연재 중 12/3 내란을 겪었다.
그리고 출간한지 얼마 안된 시점 검찰청 폐지, 기소-수사 분리 기사가 나왔다. 바로 어제!
와.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사회였나.

물론 체제나 조직의 DNA가 쉽게 변하리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알려졌으면 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큰 차이임을,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1. 정권에 따라 다른 심판 결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 김건희가 황제 조사를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때는 무죄였는데. 지금은 특검에 이어 온갖 의혹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법체제는믿을만한가.

2.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나라 검찰제도 괜찮은가.

- 검찰 조직 자체가 하나의 정치결사체처럼 움직이는 것을 윤석열 정권 때 보았다. 민주 국가에서 이렇게 권한이 집중된 기관은 비정상이라고 볼 수 밖에. 미국, 독일, 프랑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분권화가 우리도 필요한게 아닐까.

-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는 바뀔 수 없다. 따라서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

3. 수사-기소의 분리가 필요하다.

-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사-기소의 분리를 이야기한다. 정치 수사나 표적 수사를 일삼는 검찰의 폐습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이야기한다. 검사의 객관 의무가 좀 더 명확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어제 검찰청이 폐지된다는 기사가 떴다. 78년만에!

공소청과 중수청을 신설해 기존 검찰의 기소와 수사 기능을 분리 담당하게 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1년 후 시행한다고 한다.


과연 검찰 개혁이 성공할까.
난 왜 의료개혁이 떠오를까.

의사와 검사, 사회의 단단한 권력의 층을 이루는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작년에 의료개혁으로 피곤했다면,
올해는 검찰개혁이 그 뒤를 잇게 되는건 아닌지.

아무튼, 지금 시점에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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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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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에서는 어떤 것에도 100퍼센트 확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정신과 의사는 항상 회색 구름 속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가끔 사이키델릭한 광기의 색이 주변을 밝히곤 한다. 정신 질환 사례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p.176)

정신과 의사의 회고록이다.
무지막지하게 재미있으면서 씁쓸하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고통이 있는 줄 몰랐다.

누군가가 자기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망상, 자신이 리얼리티 텔레비젼 쇼에 출연하고 있다고 믿는 망상, 자기가 신의 아들이나 늑대인간이라고 믿는 정신 질환 등등.

저자는 말한다.
‘환자가 죽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도 환자가 불필요하게 병상을 차지하지 않도록 시스템적 제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를.

모든 환자를 입원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적절히 잘 분류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깨닫는다.
자신이 우울증 환자가 되어 약 처방을 받으면서. 단지 뇌에서 벌어지는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터놓으면서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이쯤되면 현대인은 누구나 이상한 구석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정상인 척 하지만, 그것은 가면을 잘 쓰고 살아갈 때의 일이다. 진짜 마음을 내보이며 솔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정신 질환은 그 극단을 보여준다.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오버랩되었다.

정신 분열 환자들은 자기와 타인의 경계가 확실치 않다. 머릿속 생각을 마치 지나간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듣기도 하고, 라디오나 티브이에서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한다고 믿기도 한다. 일반적인 인지 기능이 구별하는 시간의 전후, 공간적 앞뒤, 부분과 전체가 이들에게는 혼재되어 있다. 누구니 사실 그런 순간이 있다. (p.64,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경계의 정신과 의사.

이 책이 웃기면서 감동적인 이유는, 환자들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저자도 자신의 민낯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품고 있다.

정신의학 진단으로 이 모든 마음을 담아낼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은 꽤나 복잡하니까.

저자 역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족간의 관계를 그제서야 마주하고 풀어나간다.
그런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에세이가 영상화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정신 질환 치료 결과에 관한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중 약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가족 관계가 더 돈독한 개발도상국에 사는 환자들이 선진국의 환자들보다 더 예후가 좋다는 사실이다.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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