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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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창조했다. (p.20)


인간은 과거 신을 믿고 의지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의지하려는 것 같다. 젠슨 황과 같은 인물이 시대의 우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AI를 통해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되면서 그를 일종의 미래 예언자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AI를 통해 초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이 AI를 통해 초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짜 위험은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상실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AI가 계산과 판단, 실행을 인간보다 더 잘할수록 우리는 인간에게 묻지 않는다. 그리고 더 깊게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인간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불편함을 감당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인간보다 뛰어난 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에.

만약 AI가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율성을 갖게 된다면, 인간은 초인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니체가 경멸한 ‘마지막 인간’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마지막 인간을 달라, 우리가 그 마지막 인간이 되게 해 달라! 그러면 우리가 그대에게 위버멘쉬를 선사하겠다!” 그러면서 모든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놀려 댔다. 차라투스트라는 참담한 기분이 되어 자신의 마음에게 말했다.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니다. (p.26)

✍️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위키를 찾아 상징의 뜻을 하나씩 확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니체의 철학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주변 환경과 공허한 울림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니체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기 자신을 넘어설 것을.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광장에 설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마지막 인간을 달라”고 외치게 될까.


쓰여 있는 모든 것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피로 쓴 것만을 나는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피가 곧 정신인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57)

어려운 고전, 연초부터 벽돌깨기한 기분.
물론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도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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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 니체를 쓴다 - 니체가 묻고 내가 답하는 100일 인생문답
이인 지음 / 서사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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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언제 어디서든 그대의 행동은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해진다. 인간은 줄곧 능동과 수동을 혼동했다. (p.22, <아침놀>)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그럴듯한 영상이 만들어진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노력 없는 다이어트’를 가능하게 한다. 자율주행차가 등장하고, 휴머노이드가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미래도 머지않았다.

극단적인 편리함은 우리에게 정말 자유 시간을 선사할까. 그 시간은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 쓰이게 될까. 아니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익숙해진, 더 수동적인 인간을 양산하게 될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살아가면서도 삶의 주인이 되기 힘든 이유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체성에 대한 자신의 문제일지 모른다.

니체의 문장이 여전히 강렬하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안하고 방향을 잃은 시대에 그는 위로 대신 기준을 묻는다. “괜찮다”고 말해주기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되라’고 요구한다.

아마 그래서 25년 유독 니체의 책들이 다시 읽히는 것이 아닐까. 불확실성이 디폴트가 된 시대, 니체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너는 네 삶을 스스로 해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삶이 흔들릴 때 니체를 쓴다>는 여러 니체 책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선별해 소개하고, 이인 작가의 설명을 곁들인다. 한쪽에는 필사하기 좋은 문장이, 다른 쪽에는 스스로에게 답해볼 질문이 놓여 있다.

읽는 책이라기보다, 생각하고 써 내려가는 책에 가깝다. 니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니체와 함께 자신을 점검해보게 만드는 구성이다.

이 문장을 다시 쓰고 곱씹는 시간 자체가,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니체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죽게 하지 않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것이 삶이라는 사관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다. (p.54, <우상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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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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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어떤 부동산 정책들이 쏟아질지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이 책은 정치·교통·국제 정세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 출발해, 서울·중부·동부·서부 등 각 권역의 도시 이슈를 구체적인 사례로 짚어내는 도시 트렌드서다.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각 도시를 직접 답사하며 담아낸 사진과 현장 기록이다. 미디어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발로 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맥락과 함께 전해진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반복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코레일 열차 중단 사태, 지반 침하 위험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도 계속되는 지하화 사업 등은 ‘도시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또한 부동산 문제가 단순히 자본주의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기후 변화, 인구 구조의 변화, 산업의 쇠퇴와 재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경남 창녕에서 ‘법무부 니가 마늘 캐줄 끼가’라는 현수막이 등장한 배경 역시, 노동력 부족과 지역 소멸, 산업 구조 변화라는 현실이 부동산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정치 공약은 지켜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등장한다. 한편으론 속고 싶은 양가적 마음. 그 욕망이 얼마나 많은 도시와 교통망에 담겨 있는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계획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은 차분히 드러낸다. 수없이 반복된 실패를 겪고도 여전히 더 나은 입지, 더 빠른 교통을 갈망하는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부동산이 대체 뭐길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교통망 하나에 울고 웃고, 공약과 정책 하나로 지역의 흥망성쇠가 갈리는 현실.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불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문제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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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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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종으로서 살아남으려면 여기서 계속 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존재하기를 원하고, 존재하는 것을 즐기게 하는 어떤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어떤 것'이 서로를 향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사회적 유대에서 누리는 기쁨이 없다면 삶이 과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을까? (p.359, 에필로그)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어쩌면 이미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는 뇌과학이라는 언어로, 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는 외면할 수 없도록 분명히 드러낸다.

1.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뇌의 보상 신호를 활성화해 기쁨을 준다.

2. 고립은 웰빙에 치명적이며, 분열은 뇌 건강의 적이다.

3. 우리는 분열된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너머의 가상적 사회 경험은 상호작용과 고립이 뒤섞인 상태다.

4. 뇌는 수백만 년 동안 얼굴을 맞대는 대면 접촉을 기반으로 진화했기에, 가상의 상호작용은 뇌에게 비정상적인 경험이다.

5. 상호작용이 실제에 가까울수록 기분과 웰빙에 더 유익하며, 가장 좋은 방식은 여전히 대면 접촉이다.

기술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진화해 왔고, 그만큼 뇌가 감당해야 할 ‘비정상적인 경험’도 늘어났다. 인터넷은 모두를 연결한다고 말하지만, 뇌는 여전히 몸짓, 목소리의 톤, 표정 같은 사회적 단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대면 상호작용에서 가장 활발히 반응한다.

로맨틱한 애정 관계만큼 신경학적으로 강력한 사회적 유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유대가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다. 이 관계 역시 로맨틱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옥시토신이 깊이 관여한다. 실제로 부모가 자녀와 함께 무엇을 하든 옥시토신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p.251)


최근 담임선생님은 첫째 아이의 주의력이 부족해 보인다며, 상담을 권했다.

나는 주변의 선배 부모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놀랍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았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 자기 아이도 몹시 산만했고, 그 중에는 ADHD 약을 먹여봤다는 엄마까지. 하지만 대부분 그 시기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가 급격히 성장하는 그 시기에,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부모-자녀 관계에서 옥시토신으로 채워져야 할 보상이, 게임이나 영상에서 얻는 도파민으로 대체된 건 아닐까.

작년보다 더 산만해진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우리가 가족으로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내게 죄책감을 더하려는 건 아니냐며 말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아이의 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야근이 잦았던 나의 시간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년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해다.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채워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늦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함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건 없다.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누려라.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그들이 미소짓게 하라. 무엇을 하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p.365,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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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김의경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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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써낼 수 있는 건 정책 대안은 아니다. 시장 진단이나 분석조차 아니다. 전모를 보지 못하고 해답도 모르더라도, 정직하게 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편안한 관념 밖에서 살아 있는 인간과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픽션이 현실에 발을 붙인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p.108, 장강명 작가노트)

부동산은 숫자로 말해질 때보다
사람의 삶으로 드러날 때 훨씬 잔인하다.
그리고 소설은 그 잔인함을 완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장면들을
정직하게 다시 보게 만든다.

픽션이 현실에 발을 붙인다는 말은
현실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을 똑바로 응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역할을, 끝까지 성실하게 해낸다.
5명의 작가가 참여한 부동산 앤솔로지.

길냥이 밥 주는 것을 눈치봐야 하는 전세살이의 서글픔,
부동산 전세사기로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부동산으로 보이는 대출심사역,
부동산 때문에 독해지는 사람들.
소설이 아니라 라디오 사연 같다.

이 바닥에서는 돈이 스승이야. 아무도 믿지마. (p.233, 최유안 <베이트 볼>)


어느날 아랫집 이웃이 오픈채팅방을 알려줬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한다며 들어오라고.
그 방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난무했다.
단순히 그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말했다.
참여자의 신원확인이 필요하다고.
소유자인지 아닌지.
그리고 다시 방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픈채팅방은 사라졌다. 그들만의 리그는 어디선가 다시 시작되었을거다. 염원과 욕망, 분명 내 마음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따라다니기에 난 이미 지쳐있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목소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더 거칠고, 더 단순하며, 더 빠르게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언제나 ‘사는 사람’보다 ‘사는 것’만 남는다. 그래서 씁쓸했다.

소설 역시 씁쓸한건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잊고 있던 사연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아, 그때 샀어야 했는데’ 하고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가격이 오르지 않는 자원은 평범한 사람의 노동이다. 특출한 지적 능력이나 자본소득, 팬덤,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노동 소득만으로는 자기 집을 사거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왔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유독 더 엉망진창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앨리스 래스먼은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집과 가족, 편안한 은퇴 생활을 꿈꿀 수 없다며 '환멸의 경제학Disillusionomics'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p.103, 장강명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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