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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인지노동은 왜 그렇게 확고하게 여성들의 몫이 되었는가? 우리의 성격과 선호가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말하는 문화적 각본의 논리적 연장선상에 있는 성격 본질주의 서사는 이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p.281)
전체적으로 보면 그들이 설명한 성향들은 매우 성별화되어 있었다. 즉, 여성들은 초인으로 묘사되고, 남성들은 허당으로 묘사되었다. (중략) 그러나 남성과 여성에게 수용 가능한 활동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반면, 수용 가능한 자아의 범위는 그만큼 빠르게 확장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는 행위는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생각, 주의, 인지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p.282)
이 책은 94쌍의 커플을 대표하는 172명의 부모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정 내에서 인지노동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인지노동이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일련의 사고과정을 말한다. 샴푸가 다 떨어졌으면 사야 하고, 아이들의 방학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며, 가족의 생일을 준비하고, 주말에 무엇을 할지 계획해야 한다. 이처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필요한 일들이다.
보통 가사노동이라고 하면 빨래, 요리, 설거지, 청소처럼 눈에 보이는 행위를 떠올린다. 그래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할 때도 이런 행위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머릿속으로 계속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일,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계절이 바뀌면 아이의 옷장을 정리해야 하고, 내복이 작아졌다면 새로 주문해야 한다. 이불을 세탁하고, 계절에 맞는 이불을 꺼내야 한다. 식재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장을 보고, 아이들의 방과후활동을 제때 신청해야 한다. 늘 예상하고,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일들이다.
이러한 일은 가시성이 높지 않고 중대성도 낮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고, 그 가치를 쉽게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에 비하면 휴가 계획은 일회적인 일이지만 오히려 훨씬 가시적이다. 반면 식재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장을 보고, 아이들의 방과후활동을 제때 신청하는 일은 어떤 목록에 올릴 만큼 중대한 일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대개는 여자의 몫이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호한 일을 담당하고, 남편들은 “이러이러한 것을 해달라”고 요청받으면 그 일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가정이라는 맥락에서 왜 여성들이 인지노동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지, 왜 인지노동의 배분이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한다.
가정에서 여성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러다 보면 그 역할이 결국 굳어져 여성이 ‘초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인지노동의 성별 분업은 국적이나 직업, 경제적 상황을 떠나 상당히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책의 결론을 들여다봐도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가정에서의 불평등한 인지노동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힘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파트너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인지노동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외주화할 수 없는 인지노동에 얼마나 많은 정신을 쏟고 있는지, 그 부담을 상대방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집안일이 왜 이렇게 많지?”라고 의문을 가졌던 모든 것들이 이 책을 읽고 나니 명료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로 경제성을 따지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는 인지노동에 대해서는 따로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행위보다 그 행위를 하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노동이 훨씬 클 때가 많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