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머신 - AI는 우리가 위로받고 연결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제임스 멀둔 지음, 송이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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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머신

_ 나는 인간이 고작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는 계산기계에 불과하다는 시각에 반대한다. 그러한 발상은 인간이 몸으로 겪으며 느끼는 주관적 경험의 복잡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은 개인의 두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이루는 촘촘한 관계망과 사회성에 깃들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55)

이 책은 AI가 친구, 연인, 심리치료사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내 주변에서도 배우자와 다툰 뒤 AI와 대화를 나눈다거나, 심리치료만큼 AI와의 대화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대부분은 책 속 사례처럼 AI에 깊이 몰입하기보다는 현실의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AI를 하나의 도구처럼 활용한다.

그럼에도 책 속 이야기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고, 그 욕구를 꼭 사람만이 아니라 AI를 통해서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로 인해 인간의 소통이나 연결방식이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챗GPT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정서적 결핍을 드러내 가족과 친구들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챗GPT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해로운 감정을 모두 털어내게 해주는 일종의 ‘감정 쓰레기통’과 같았다. (p. 217)

1.이해받고 싶은 욕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친구와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가 소중한 이유도 바로 그 공감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같은 수준의 공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관계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그래서 때로는 AI가 감정을 정리하거나 마음을 환기하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AI만이 가진 장점이다.

_ AI동반자가 아무리 생명체처럼 느껴지고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줄지라도 본질은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상품이다. 이들은 사용자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우선시한다. 구독 상품을 판매하든, 데이터를 수집하든, 광고를 노출하든 결국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p.345)

2.AI 역시 비즈니스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AI는 영리 기업이 운영하는 서비스라는 점이다. 문서를 작성해 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는 모든 기능은 결국 하나의 상품으로 제공된다.

무료로 고민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기업의 서비스 개선이나 수익 모델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AI와의 관계를 순수한 인간관계와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기업의 목표는 사용자의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서비스 운영과 수익 창출이다. 그렇기에 사용자의 장기적인 이익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위로를 줄 수는 있지만, 그 관계가 친구와 같은 상호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_ 다시 말해 자신만의 욕구나 욕망이 없는 사회적 객체와 일방적 관계를 맺는 것은 타인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주며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목적의식을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관계에서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없다. (p.102)

3.인간은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다

AI는 이제 인간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조언에서도 뛰어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AI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AI와의 대화는 인간과의 상호작용과는 다르다. AI는 내 감정을 받아주고 반응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하는 관계는 아니다. 자칫하면 나 자신의 생각 속에서만 맴도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말보다 표정과 분위기를 읽고, 상대가 말하지 않은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거리와 예의를 배운다. 때로는 갈등을 겪고,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기도 한다. 이런 거칠고 불편한 경험들까지 포함해 인간관계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대부분 AI로 대체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진정한 관계에서 얻는 상호성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배움이 아닐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학교를 다니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AI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는 사례도 있지만, 10여 년 전 영화 <Her>를 보며 상상했던 미래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는 것처럼,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머지않아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소통 방식을 바꾸어 놓았듯 AI 역시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본질까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진정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어떤 기술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가치다.

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무엇을 기술에 맡기고 무엇만큼은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_ 기업이 정서적 의존성을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는 탓에 사용자는 계속해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쉽다. 대다수 사용자는 AI동반자와 소통할 때 자신의 행동이 치밀한 분석과 예측, 조종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개인과 첨단 AI기술로 무장한 영리기업 사이에는 거대한 권력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p.327)

#웅진지식하우스 #제임스멀둔 #송이루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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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머신 - AI는 우리가 위로받고 연결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제임스 멀둔 지음, 송이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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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인간의 소통방식을 바꾼 것처럼 AI는 또 무엇을 바꿔놓을지. 책이 흥미로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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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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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스에 따르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감염되는 것은 특정 아이디어나 설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태도였다. 다시 말해 이러한 관점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이 같은 바이러스가 들끓는 지점을 찾아가서 숨을 깊이 들이마셔라. 스스로 감염된 뒤 또 다른 이에게 전파하라. (p.80)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면서 그레이스 박사에게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처음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우주선에 오른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교사가 된 이유조차 무척 인간적이다. 과학계에서 논문이 비난받자, 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인류를 구하기 위해, 더 나아가 친구 로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로키의 행성을 구하고, 그도 구했지만.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선택을 거듭하며 점차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이런 플롯에 감동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에는 그레이스 박사 같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처음부터 거대한 대의를 품고 일을 시작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예제 폐지를 이끈 토마스 클락슨 역시 처음에는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논문대회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그는 예상대로 우승의 영예를 얻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논문 주제를 파고들고 질문을 붙들다 보니, 결국 노예 해방이라는 거대한 야망에 닿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속 선한 야망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구경만 하는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일을 벌인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역사를 바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늘날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역시 과거 누군가의 용기와 행동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경외심이 든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바뀌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이미 그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세상을 바꾸고 싶을 때 중요한 건 당신이 애초에 그런 일을 하도록 ‘타고난 사람’인지, 혹은 어떤 성격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가 아니다. 관건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이다.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선한 일을 함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p.82)

다만 책을 덮고 나면 묘한 불편함도 남는다. 나는 여전히 먹고사는 일에 바쁘고, 선한 야망에 귀 기울여 행동할 만한 무언가가 선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나 역시 어떤 대의를 품고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긴다.

어쩌면 그래서 수많은 구루들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선한 야망에 귀 기울이고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힘은 도덕적 가르침 자체보다, 우리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고 설득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괜찮지 않다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해보면 어떨지 묻는 것 같다.

어쩌면 기후 위기나 경제적 불평등처럼 기존 사회 체제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결국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야망’이라는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우주 산업을 이야기하고, AI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인간의 본성을 깨우는 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이렇게 말했다. (중략) 우리 행동에는 전염성이 있다. 따라서 더 나은 세상은 사실 나로부터 시작된다. 혼자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오해는 인간을 지나치게 개인화하는 관점에 기대고 있다.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적 존재인 만큼 당신의 선택은 수십 명, 수백 명, 어쩌면 수백만 명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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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피해자 -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
곽아람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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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책을 써야만 하는 당위였다. (p.60)

곽아람 작가가 스토킹 피해자가 되어 약 6년간 소송을 이어가며 무너진 일상과 고통을 기록한 책이다. 읽는 내내 작가의 당사자성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스토킹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정도가 아니라,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차에 치이는 것 같은 재난에 가까웠다. 아무 이유 없이 스토킹을 당하고, 피해자다움을 요구받으며, 법원과 검찰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다. 피해자는 약자의 위치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과연 사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의 사법 시스템을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고, 어떤 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갈리는 현실. 그렇다면 나약한 개인은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복불복 게임처럼 운에 자신의 삶과 안전을 맡길 수는 없기에, 작가는 결국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상은 더욱 망가졌다. 회복하기 어려운 감정의 골짜기로 깊이 빠져드는 과정이 너무도 처절했다. 사회적 자원도 있고, 글을 쓰고 기록할 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자 신분일 때와 피해자 신분일 때 세상이 보여주는 온도차였다. 취재 기자로서 경험했던 경찰서와, 피해자로서 마주한 경찰서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검찰과 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취재가 시작되자’ 빠르게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시스템이 가진 기만성과 권력의 비대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수많은 인덱스를 붙이며 읽은 책이다. 앞으로 남은 재판에서 부디 엄벌이 내려지기를, 더 나아가 스토킹과 성범죄 같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욱 무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법은 피해자의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란다.”(p.183)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그 수많은 피와 눈물이 더는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이 오래도록 베스트셀러 목록에 남아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함께 읽고 회자한다면, 그 힘이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해본다.

많이많이 읽었으면 한다.

_ 처음 선배가 회사에 사건을 보고하라고 했을 때도 한참을 고민했다. 회사에서 ‘역시 여기자들은 안 돼. 남자기자라면 겪지 않을 사건에 휘말리다니 귀찮아. 앞으로는 여기자를 더 뽑지 말아야겠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내가 여자 후배들의 앞날을 막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중략)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건 항상 자격증명을 요구한다.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후배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p.30-31)

_ 그러나 피해자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달았다. 그런 믿음은 그간 내가 약자였던 적이 없어서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내가 속했던 세계가 지나치게 말끔했다는 것을. 세상은 울퉁불퉁한데 나는 그간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형사사법 시스템이란 피해자가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딱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목까지만 건져주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세계의 기만성에 대해 생각했다. (p.271)

_ 피해자는 항상 서사를 빼앗긴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 있는 피해자에게는 대체로 무관심하고, 피해자가 죽어야만 그제야 관심을 기울이며 입에 올린다. 죽은 피해자는 말이 없어서 그의 이야기는 남들에 의해 서술된다.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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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에게, 별로부터 - 12개 별이 전해준 138억 년 우주의 소식
우주먼지(지웅배)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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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우주가 고요하고 변함없는 곳이라 믿었다. 별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고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우주의 천장에 고정된 채 반짝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이다. 모든 별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북극성도 빛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밤하늘에서 자리를 바꾼다. (p.60)

1. 북극성은 지구에서나 의미가 있을 뿐.

북극성은 하나의 특정한 별 이름이 아니라, 천구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별에게 시대마다 번갈아 붙는 칭호라고 한다. 지금의 북극성은 2016년에 정해졌다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별조차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북극성의 의미가 철저히 ‘지구적’이라는 점이었다. 북극성은 지구 북반구에서 방향을 찾을 때 중요할 뿐, 지구를 벗어나면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우주에서는 오히려 카노푸스 같은 밝은 별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시대에 따라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도 달라진다. 대항해를 했던 시절에는 북극성이 중요했을지 모르겠지만, 우주 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북극성보다 우주의 길잡이가 되는 별에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

2.하늘에 별은 무수히 많은데 왜 별자리는 88개뿐일까.

밤하늘의 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왜 별자리는 88개뿐일까 궁금했었다. 알고 보니 1922년 국제천문연맹이 제각각이던 별자리 체계를 통합하며 공식적으로 88개로 정리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건 별자리가 단순히 별 몇 개를 선으로 연결한 그림이 아니라, 밤하늘의 특정 영역 자체를 차지하도록 구획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하늘에도 국경선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남반구의 별자리들이 북반구에 비해 유난히 작고 아담한 이유도 재미있었다. 남반구 탐사가 활발해지던 시기, 많은 천문학자들이 경쟁적으로 자신만의 별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밤하늘에까지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이 보이는 듯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별을 올려다보며 의미를 부여해왔다. 별자리는 결국 우주에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을 덧그린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3.보이저1호, 그리고 지구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는 1990년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촬영했다. 그 사진 속 지구는 단 하나의 픽셀에 불과한 작은 점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렀다.


아등바등 살아가다가도,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면 한순간 겸허해진다. 지구조차 저토록 작은 점이라면, 그 안의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일까 싶어진다. 동시에 그 작은 점 안에 우리가 사랑하고, 싸우고, 슬퍼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이 들어 있다는 사실도 묘하게 경이롭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었다.

최근에는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논쟁이 재점화되었다. 행성에서 퇴출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준은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종종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영역이 훨씬 더 크다. 특히 우주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광활한 우주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끝없이 질문하고, 관측하고, 이름 붙이며 조금씩 세계를 넓혀간다. 이 책은 바로 그 경이로운 과정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마치 ‘알쓸신잡’을 우주 버전으로 읽는 기분이었다.

TMI
첫째가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읽고 이것저것 아는 척을 해봤는데, 이미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역시 좋아하는 분야의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주 조금은 서로의 세계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우주와 별에 관심있다면 이 책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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