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화하는 뇌 -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1월
평점 :
집단은 소속된 개인의 태도, 신념, 기억을 바꿀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집단의 합의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개인의 기억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기억은 집단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집단의 합의에 순응하게 된다. (p.181)
일본의 사도광산 추도식 논란만 보아도 한일 양국 관계는 진전이 없고, 일본의 역사인식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2015년 '더 이상 아이들에게 사죄의 숙명을 지울 수 없다'는 아베 담화를 계기로 일본의 역사 인식은 크게 후퇴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무서운 것은 집단의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진실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느냐, 그 공통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대화'가 있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진실이 아닌 말을 감지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은 사회집단, 종족, 문화, 하위문화에 소속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그 공동체의 교리와 입장을 얼마나 충실히 옹호하느냐에 달려 있다. (p.213)
2022년 2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받은 시점을 생각해보면 대화와 믿음, 이런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게 된다.
군사력 2위 러시아가 22위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1,000일을 넘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48시간 내에 끝이 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도움 요청을 거절했던 독일 재무장관이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지 몰라도, 우크라이나의 민족정체성을 간과한 부분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도가 함락되는 상황에서도 키이우 어디선가 자신이 건재함을 SNS로 알리면서 사람들을 독려했을 때, 전세계가 들썩거렸던 상황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게 되는 움직임은 국가의 실리를 넘어서 지극히 사회적인 인간의 행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 나라의 수장이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던 말, 그리고 공통의 이해. 대화는 그 가운데에 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서 기억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국가는 대화에서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은 결국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공유하고 믿는 현실에서 '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상상하는 것은 항상 단순화되고 도식화되어 이야기와 서사가 된다. (p.287)
매년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중에 기억으로 남을 만한 일들은 영화나 책을 통해 다시 전달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무척 사랑하기에, 이렇게 재조명되는 이야기는 세대를 넘어 전달되고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이유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제작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비판이 거세고, 창작이라는 이유가 변명으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더 이상 사고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진다면, 이러한 비판마저 소수의 의견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AI시대가 되고나니 그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AI 알고리즘이 잘못된 역사의식을 갖고있다면,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든다면, 과연 사람들의 집단 기억도 바뀔 수 있을까.
대화가 더없이 소중한 때이다.
대화로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사실은 알맹이 빠진 대화가 아니었을지.
연말, 연초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