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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평점 :
지루함은 대단히 인간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지루함을 경험할 때 무엇에 의존하는가는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으며, 시대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매개된 방법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매개되지 않은 틈새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p.147)
지루함을 없앤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얻은걸까?
효율성을 얻었고 집중력을 잃었다.
쾌락을 얻었고 인내심을 잃었다.
나의 취향을 아는 건 나일까? 알고리즘일까?
결국 남는건 뭘까.
고쿠분 고이치로의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
“지루함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디까지나 자신과 관련된 물음이다. (p.326,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2014)
이 책도 맥락을 같이 한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p.169)
지루함을 알 틈이 없는 아이들,
공상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시간이 충분할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패스트패스로 기다리지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요즘 보이는 새로운 신호등 아래 빨간색 숫자는 언제 신호가 바뀔지 표시해준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술은 우리의 사고, 습관을 변화시킨다.
기다림의 미학은 더이상 미학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이 데이터가 되고 우리의 세계가 감성보다는 센서에 의해 움직인다면 우리의 경험은 더 이상 고유한 것이 아닌 단순한 정보가 된다. 우리의 감정이 데이터로 변환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엇일까? 또한 감정 경험이 표준화되면 어떤 위험이 있을까? (p.211)
블랙미러 시즌7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섬뜩했던 장면은, 감정까지 구독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뇌 손상으로 수술을 받게 된 아내가 나중에는 기쁨, 평온 등 감정 상태를 설정할 수 있는 프리미엄 기능까지 가능해지는 장면.
기술은 인간의 어디까지 넘나들게 될 것인가? 인간 고유의 경험이 모두 데이터화되고 콘텐츠화된다면, 궁극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결코 블랙미러 이야기가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었다.
최근 범람하는 미디어 전시를 보면서, 과연 이것들이 크나큰 감동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SNS로 공유하기 위해 모두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모습을 보며,
보여줄 수 없는 경험은 소비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 같지만,
공허함은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
한편으로는,
기술이 경험을 대체할수록, 사람들은 실제 경험에서 더욱 엣지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그리고 내 생각엔 그 엣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터치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를 알아가야 할지 어떠한 사고방식과 습관을 갖아야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공상에 빠져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틈을 일, 일종의 소통, 짧은 오락거리들로 채우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제하고, 속도를 높이고, 정량화하는 방법을 찾아버렸기 때문이다. (p.33)
책날개만 봐도 충분히 읽어보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게 요약해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입력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이라고 불렀던 모든 경험을 기술에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 문구를 보고 읽지 않을 수 없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