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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다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궁중의 광대였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어느 자리에서든 눈치보지 않고 발언을 해도 뒤로 예의 주시하며 표나지 않는 수준의 불이익을 줄 뿐 바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나란 존재가 그들에게는 그저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돈키호테일뿐, 진짜로 위협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궁중의 광대가 무슨 소리를 하든 목을 치지 않는 것처럼. (p.73)
1. 회사에서 하고싶은 말을 주저없이 하던 내가 이 대목을 읽고 깨달았다. 나도 이런 위협적이지 않은 광대구나. 만약 내가 좀 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간다면, 지금처럼 입을 놀려댈 수 있을까.
2.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는 너의 ‘관점’이 좋아. 너만의 고유성을 잃지 않았으면 해” 나는 이 말을 칭찬으로 들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니까. 그러나 친한 선배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그는 말했다. 고유성은 지나치면 독이야.
전근대적인 한국식 집단주의, 권위주의를 혐오하고 서구식 합리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를 동경하며, 동시에 법원조직을 신뢰하고 사랑했던 당시의 나는, 법원을 ‘안에서’ 바꾸고 싶어하는 나이브한 이상주의자였다. (p.38)
3. 너무 빠른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동시에 변화하지 않는 조직의 무거움을 느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 뭐라도 시도해보거나, 뛰쳐나가거나. 이때 뭐라도 시도해보다가 안되면, 결국 다시 두가지. 아는 것(knowing)과 행동하는 것(doing)을 분리하거나, 뛰쳐나가거나.
4. 나는 전자이고, 이것은 ‘나이브한 이상주의자’와도 맞닿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분이 말하는 경험담이 내게 굉장히 와닿았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만화나 영화 주인공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야기 중독자라서 의식하지 않아도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절로 머릿속에 상영되는 것이다. (p.43)
5. 읽다보니, 나와 닮은 점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주인공성’이다. 이종범 작가는 주인공 서사를 장착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몸부림친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주인공성을 갖추고 있으면 루저가 되거나 패배주의에 오래 잠기지 않는다는 것. 문유석 작가님도,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나는 아직까지 깊은 우울이나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앉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게 아직 나락으로 떨어질 만큼의 일을 겪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을 너무 능숙하게 분리해내며 빠져나오기 때문인지, 혹은 자존감이 나를 잘 붙잡고 있기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신한다. 설령 그런 순간이 온다 해도, 그 뒤에는 더 단단해진 내가 서 있을 것 같다는 것.
7. 문유석 작가님이 은퇴 후 자유롭게 글을 쓰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슬럼프를 겪고 아주 깊은 나락을 겪은 뒤 이런 좋은 글이 나왔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고통은 늘 그 다음 성장의 문을 연다는 것,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문유석 작가님의 유머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향한 솔직한 고백이 특히 좋았다. 한껏 메타인지가 단단해진 이 작가가 다음에는 어떤 글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우선 곧 시작할 드라마 '프로보노'부터 응원하는 마음이다!
이 책도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