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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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어떤 그릇을 가졌느냐가 아니야. 그 그릇이 완전히 깨졌느냐지. 인간은 제 그릇에 금이 가면 뭔 수를 부려서든 그걸 붙이고 살려 하거든. 다신 붙이지 못하게 완전히 박살을 내야, 그래야 새로 지을 수도 있는 건데 말이야! (p.199)

사이비 종교단체 벽돌집을 도망쳐나온
유림과 해수.

세뇌당한 유림이 진실을 마주하게 된 건 해수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탈출 후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기나긴 대화가 사실은 애도였다는 것...



벽돌집에서 유림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해수는 깨어있었다.

물론 종국에는 유림은 살았고 해수는 죽었지만.



죽었던 삶에서 살아난 유림은 해수도 살리고 싶었을테다.

그래서 계속 묻고, 묻다가, 끝내 깨닫는다.

죽은 사람을.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있어?(p.209)

유림이 알고 싶었던 단 한가지. 굴댕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것. 죽은 사람은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유림은 입을 열었다.
해수야, 죽은 사람은 다-다시 살아, 살아, 살아, 돌아올 수 없어. (p.256)



책을 읽는 동안 사이비 종교를 포함한 컬트를 취재했던 책 <컬티시>가 떠올랐다. 언어학자 어맨다 몬텔은 언어라는 권력 도구를 바탕으로 추종자들에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 벽돌집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게 답이었으므로 아이들의 질문은 무의미했고, 묻는 말에 정해진 답만 하는 것이 도리였다. 세뇌된 아이들은 생각은 커녕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침묵한다.



해수가 기어코 왜 그렇게 묻질 않느냐는 질문에 유림은 흔들리고, 깨닫는다.

이야기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 (p.155)



운명을 깨고 나아가는 이야기.
성장이라는 말로 묘사하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삶의 여정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믿고 선택하느냐,
내 안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끝내 해낼 수만 있다면.



그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 것 같다.
묵직하면서 울림이 큰 소설이다.



진실은 언제나 밝히기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침묵하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읽어보시기를.



파사주(破四柱)는 말 그대로 사주, 즉 주어진 운명을 깨뜨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주를 볼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궁합(宮合)이 남녀의 관계를 가늠하는 전통적인 개념이라면, 파사주는 남녀뿐 아니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부모와 형제, 스승과 제자, 친구와 적까지 인간 대 인간의 모든 관계를 망라한다. 다시 말해, 나의 사주만으로 운명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주변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그 운명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p.290-291, 작가의 말)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사주 #한겨레출판 #강성봉 #하니포터 #하니포터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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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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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이 살았던 도시를 찾아간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나나 휘트먼과 마찬가지로 문학과 현실의 경계에 살고 있는 '꿈꾸는 자들'을 위한 여행기다. (p.10, 프롤로그)

문학을 이렇게까지 좋아한다고?!
놀랄 수 밖에 없는,
그 진심이 느껴지는 책.
참고로 2018년 <바람과 함께, 스칼렛>의 개정증보판이다.

1. 오 헨리
마지막 잎새를 썼던 오 헨리가 살았던 집과 그곳의 담쟁이를 보면 작가가 살았던 공간이 소설 속 공간으로 이렇게 닮았구나 싶다.
아니, 곽아람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찾아갔는지, 정말 연신 감탄할 수 밖에.

2. 마거릿 미첼
작가님이 인생책 중 한 권으로 꼽는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틀랜타가 이 소설의 배경.
그리고 차로 30분 걸리는 존즈버러.
외가를 방문해 들었던 남북전쟁 일화를 토대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존즈버러는 외증조부집이 있었던 곳.

이러한 동네에 박물관에 소설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렇게 찾아간 작가님 역시 대단.

3.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4번이나(?) 결혼했고, 결혼할 때마다 주거지를 옮겼다.
첫 아내와 파리, 둘째 아내와 키웨스트,
셋째 아내와 쿠바, 넷째 아내와 아이다호.


키웨스트와 쿠바의 집 모두 동물 머리 박제가 집안 곳곳에 걸려있었다. 대문호의 취향이 이렇단 말이지, 하면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
그림도 소설도, 모두 그 작가를 알게 되면 더 재미있어진다. 미술가의 생애를 알게 되면 그림이 더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작가도 마찬가지다.

문학이 단지 허구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 생생함이 느껴지는 것 같은.

문학을 즐기는 포인트를 곽아람 작가님은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믿고 따라가보라. 아마 예전에 읽었던 그 책과, 당시의 나를 추억하는 건 덤으로 따라올거다.


그날의 기억이 강렬했던 건 결국 문학의 힘이라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세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어트랙션은 작품 속 장소다.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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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고무벨트 방식 -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회사 만들기
DRB 지음 / 스리체어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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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다차원입니다. 변화는 수직이나 수평의 축을 따라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다차원을 감당할 수 없는 선형적 구조의 기존 패러다임을 해체할 때가 되었습니다. (p.80)

동일고무벨트,
한국의 고무 제품 제조 기업이다.
1945년 부산에서 시작해 2025년 창업 80주년.

이 책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변화해온 방식을 이야기한다.

한참 사업계획 시즌이라 관심있게 읽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에,
여전히 사업계획을 꼼꼼히 보시는 분들.
불안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인지,
진짜로 무언가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 이 책은 조직체계의 뿌리와 작동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Q. 기존 조직은 왜 새로운 세계와 충돌하는가?
A1. 1차원 트리 구조는 다차원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p.76)

이 책을 읽으며 명확해 진 점은,
지금 조직의 한계와 나아가야 할 방향.

AI까지 행위자로 나선 마당에,
정보, 권한, 목적이 부서단위로 단절된 조직은
절대로 유연하게 흐르지 않는다.

AI가 부서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조직의 토양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지금도 체감 중이다.

책에서는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고구마 뿌리줄기처럼 중심없이 확산하는,
자유롭게 연결되는 네트워크 구조.

사일로 없는 이러한 조직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리셋되어야 하는가.

동일고무벨트는 시도하고 있다.
기존 조직을 전환하는데 10년의 시간을 설정해두고.

랩조직을 가동하면서 시행착오를 살피고 전환하기.
대기업보다는 빠르고 유연하게, 스타트업보다는 시간을 견뎌내면서.

정말로 이러한 조직이 구현 가능하다면,
배워야 하는게 아닌가.

어쨌든 지금의 조직 구조가 분명히 제약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바꾸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시도해보고 있다.
그 점만으로도 배울 일이다.

Q. 왜 기업의 존재 방식을 다시 물어야 하나?
A1. ‘후기 노동 경제’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다. 인간이 육체노동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문명의 전환이다. (p.60)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현실이 된 시대,
조직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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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책
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 필로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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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더없이 기분이 좋다. 두 사람이 - 오늘 본 두 사람은 차이나타운의 캐널 스트리트에 있던 이들로, 엄마와 아이 같아 보였다 - 짐이 든 장바구니나 빨래 바구니의 손잡이를 각자 한쪽씩 잡고 가는 장면. (p.82)

이 책을 읽는 내내 세라 망구소가 떠올랐는데,

마침 저자가 세라 망구소의 책 <300개의 단상>을 언급해서 무언가 통한 느낌이다.

로스게이는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책에 담긴 일화 중, 공항 직원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고.

그는 시를 낭독하러(reading poem) 간다고 했더니, 직원이 동료에게 하는 말 “이봐, 마이크, 저 사람 시라큐스로 손금(reading palm) 봐주러 가는 중이래.”

너무 귀여운 오해가 나를 빵 터지게 했다.

일상에서 기쁨의 순간을 채집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슬프고 답답한 순간에 무얼 쓰고자 했지, 기쁨의 순간에는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의식적으로 기쁨을 채집하다보면 더 많은 기쁨을 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김목인 번역가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작은 기쁨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충분히 기뻐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이 책에 섬세하게 묘사된 기쁨에 대해 읽다 보니 무거운 현실이란 거기에 골몰하기 때문에 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p.274, 옮긴이의 글)


기쁨을 채집하는 일이란 그리 멀지 않다.

어제 독서모임에서는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나눴다. 각자의 경험과 책에서 말하는 의미를 나누면서, 이렇게 삶에서 사랑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을 나눠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대화의 기쁨.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을 '발견'하는 기쁨. 표현하고나서야 명징해지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나눌 때의 기쁨.

하루를 그렇게 마치고 나니, 회사에서 하루종일 있었던 어처구니 없던 일과
허망함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말고 채집할 것.
그럴수록 마법처럼 더 많은 기쁨이 몰려온다.

로스게이가 하고 싶었던 말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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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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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나 베트남에 가면 길거리에서 사탕수수 주스를 판매한다. 그때마다 귀한 거라며, 사서 마신다.

사탕수수가 얼마나 귀한 것이 되었는지,
트럼프가 콘시럽 대신 사탕수수 설탕 콜라를 요구하자, 코카콜라사는 곧바로 제품 출시를 약속했다.
(곧바로 사탕수수 설탕을 사용하는 멕시코 콜라가 화제가 되었다.)

옛날에는 노예를 이용해 사탕수수 재배를 하고 설탕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에는 그보다 더 저렴한 콘시럽과 당 대체제가 넘쳐난다.

그래서 진짜 사탕수수가 귀하다.
동남아 여행에서
길거리 사탕수수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이 책은 사탕수수에 얽힌 역사를 알려준다.

태평양 뉴기니섬에서 최초 재배한 사탕수수가 인도, 동남아, 하와이로 퍼져나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화하면서 흑인 노예를 이용해 사탕수수 재배를 했다.

사탕수수는 즙을 짜내 끓이고 불순물을 제거한 뒤 가루 형태의 설탕을 만들 수 있는데, 3미터가 넘는 수숫대를 일일이 손으로 베고, 수수가 마르기 전에 빠르게 즙을 짜고, 즙을 짜기 위해 장작을 모으는 일이나, 짜낸 즙을 끓여 설탕을 만들기까지 고난의 과정이다.

그 열대 기후속에서 그러한 고된 일을 했을 노예들의 생활이 얼마나 처참했을지.

영국에서는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마시는 생활을 일찍이 했는데, 그 설탕이 이렇게나 가혹한 노동의 산물이었다니.

아프리카 흑인 역사도 참혹했지만, 이후 하와이로 넘어가게 된 설탕 산업에서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노동자로 터전을 잡게 된 것도 기억에 남았다.

조선은 하와이 전역의 약 40개 설탕 농장에 분산 배치되었으며, 인원은 농장마다 적게는 30여명, 많게는 200~300명에 달했다. 하루 10시간 노동에 점심시간 30분 정도가 휴식으로 주어졌고,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금지되었다.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루나’라고 불렸던 농장 감독관은 소나 말을 다루듯 채찍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제했으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릴 정도로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p.232)

향신료, 설탕, 커피 등 인간의 탐욕이 담기지 않은 식재료가 있었을까.

설탕을 누리는 유럽사람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노예. 그로 인해 번성했던 플랜테이션 산업.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참혹한 과거사를 갖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책이다.

그나저나 사탕수수 설탕 콜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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