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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카트린 벵사이드.장이브 를루프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_ 사람들은 “난 사랑에 빠졌어”라거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나’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그 ‘나’가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나’가 사랑하는 건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p.12, 서문)
열림원의 책 소개를 보았을 때, 문득 사촌동생이 떠올랐다. 그녀와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랑에 빠진 내가 좋아하는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나는 상대에게 나의 욕망과 기대를 투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내 안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질문을 동생과 함께 해보고 싶었다.
사랑에 대한 경험도 결국 나를 알게 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고, 실망하고,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니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 좋아 보이다가도, 막상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면 엇갈리고 만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편할 것 같다가도, 부딪히는 순간 답이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취향이 비슷해 시작한 관계가, 취향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알게 된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혼자였다면 결코 마주하지 않았을 못난 모습, 헝클어진 마음. 그렇게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드러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련한 기억만 남는다. 금세 감정은 흩어지고, 선명했던 다짐도 옅어진다. 어쩌면 모든 기억을 간직할 수 없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밤 이불을 걷어차며 괴로워하지 않겠는가.)
_ 귀스타브 티봉은 “두 사람이 서로 실망하는 경우에는, 둘 다 상대가 아닌 그에게 투영된 자신을 사랑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한 바 있다. (p.44)
이제 내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남녀간의 사랑에 골몰하던 시절은 지났기에,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일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어른이지만 어른답지 못한 순간은 아이들 앞에서 더 선명해진다.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내 모습은, 늘 아이와 함께 있을 때다.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사랑스러운 부모가 되는 일은 이미 늦었을지 몰라도,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일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_ 모든 부모가 다 ‘잘 사랑하지’는 않는다. 사랑하고 어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도 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일과 다른 욕구에 사로잡혀 단지 스쳐 지나가듯 얄팍하거나 조급하거나 냉정하거나 무심한 사랑을 주는 것에 그치는 부모도 있다.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부모. 그래서 함께 있으면서도 아이로 하여금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p.240)
이 책은 사랑을 심리적·철학적·신학적으로 깊이 탐구한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는 일이라고 말한다. 결핍을 메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관계라고.
읽는 내내 신형철님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_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 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없음과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사랑은 채우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함께 있을 때만 견딜 수 있는 어떤 결여를 인정하는 일.
당신은 어떤 사랑을 했나요.
지금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