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 코멘터리 북 - 이석원과 문상훈이 주고받은 여덟 편의 편지
이석원 지음 / 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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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일까. 남들 보라고 글을 쓰다보면 정말 내 솔직한 심경을 써야 할지 독자를 위해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것. 그게 적어도 책을 내는 사람, 특히 나같이 대중적인 에세이스트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p.96)


내가 이석원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찌질하고 모지리 같은 마음의 모양’을 날것 그대로 써내려가기 때문이다.

마음이라는 복잡한 영역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서 이토록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이석원님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그는 '거짓말에 대하여' 고백한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출판사들로부터 출간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거짓말부터 질러놓았는데, 결국 그게 현실이 되었고, 독자들은 오히려 “작가가 너무 솔직하다”고 말했단다.

‘희한하게도’라는 그의 표현처럼, 15년이 지난 지금 그 일화를 밝히는 모습이
또다시 ‘그답다’고 느껴졌다.
(이런 모습조차 솔직한게 아닌가... ㅎㅎ)

나는 솔직한 사람인가? 아니.
그렇다면 솔직하고자 하는 사람이긴 한가? 약간 머뭇거리다 예스. (p.255, 작가의 말)

음악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한 고백을 한다.
자신과 대중 사이의 거리감을 느껴
그냥 ‘많이 팔리는 것’을 내놓고 싶었다고.
‘작품’보다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대중은 그걸 작품으로 받아들였다고.

그런데 이렇게 복된 상황에서도,
그는 굳이 본심을 꺼내놓는다.
예술가보다는 장사치에 가까웠던 자신의 마음을.

아마 이런 고백들이 독자의 마음을 훔친 게 아닐까.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갈팡질팡 하는 삶을 살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꾸며서 내보이고 싶은게 사람인데.

사실은 말야... 하면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서 툭 꺼내놓은 듯한 글을 좋아하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테니까. 

'이석원이 만든 건 안 짜치더라' 라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이석원 작가님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만약 아직이라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애초에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장사치로 여겼지만, 그런 선택조차 나라는 존재를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나를 무엇으로 여기건 어떻게든 숨길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엔 없는,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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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이후의 질서 - 트럼프 경제 패권의 미래
케네스 로고프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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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가 전 세계 지하경제에서 달러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바로 그 경쟁력이 암호화폐의 본원적 가치의 원천이다. (p.275)

이 책은 트럼프 2기 집권 이전에 쓰인 책이다. 저자는 아마 트럼프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암호화폐 친화적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달러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국제 통화로서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중국 위안화가 국제 통화를 목표로 부상하고, 유로화의 점유율이 회복되면 달러의 독점적 지위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저자는 트럼프의 정책이 이러한 흐름을 오히려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 정치권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며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전 세계 지하경제의 힘을 키움으로써 달러에 새로운 리스크를 안긴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과거 달러 패권에 도전했던 소련, 일본, 유럽이 왜 결국 그 힘을 이어가지 못했는지 다루고, 2부에서는 현재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금본위제 이후의 고정환율제에 대한 고찰이 흥미로웠다. 다른 책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인데,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 역시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니..

아시아에서 벌어진 사실상 모든 은행 위기와 금융위기는 고정환율제의 실패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p.196)

고정환율제의 실패 이후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독립적으로 단기 정책금리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정부는 언제나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고 싶어하지만, 그럴 경우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로 구성된 외환보유액을 대량으로 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율이 자유롭게 변동되더라도, 충분한 준비금이 안정성과 신뢰를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IMF 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도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리는 이유다.

두 번째 ‘IMF 위기’에 처할 거라는 두려움은 각국이 자국 금융 시스템을 구제할 수 있도록 군자금을 쌓아두게 만드는 강력한 정치적 동기가 되었다. (p.221)

이 책은 과거의 금융질서를 복기하며 지금의 규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암호화폐가 열어갈 새로운 세상이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게 한다.

지금 당장 달러를 대체할 국제 통화는 없겠지만,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레이 달리오도 지난 몇년간 이야기했듯.

그렇다면 과거의 ‘게임의 규칙’을 살피고, 현재 진행 중인 시장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것이 해야할 일 같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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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네 동네 이야기 (출간 25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한이네 동네 이야기
강전희 지음 / 진선아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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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간 25주년을 기념해 다시 선보인 리커버 그림책이다. 배경은 2000년대 초, 서울 한강 근처의 동네 모습. 내게는 유난히 낯익게 느껴졌다.

높은 아파트 대신, 창문 너머로 이웃집이 훤히 보이던 시절.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 우리 동네가 그랬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주택에 살았다.
마당에는 앵두나무와 포도나무가 있었고,
1층과 반지하에는 다른 세대가,
우리 가족은 2층에 살았다.
하나의 집에 여러 가족이 어우러져 지냈다.

그런 시절이라 이웃집 사정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알고, 소소한 일상도 나누던 때였다.

이 책을 함께 본 아이는 “동네가 아늑해 보여요”라고 했다.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모습이 좋았던 모양이다.

“놀이터에 사람이 많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네.”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 그림을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나에게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어쩌면 이런 북적거림이 아이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많고, 한 집 건너면 서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책을 보며 “엄마는 예전에 이런 집에 살았어.”라고 말하자,
아이는 그림을 찬찬히 보더니 “여기서 이야기하면 다 들리겠네?” 하고 웃었다.

그림을 매개로 내 어린 시절을 꺼내놓고,
아이는 그 시절을 상상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림책의 묘미는 이렇게 그림을 통해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옛 동네를 추억하고, 아이는 현재 우리 동네 이야기를 덧붙이며, 앞으로 우리 동네의 어느 구석을 더 함께 걸어볼지 이야기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며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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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랜트의 생각 수업 - 하루 한 장, 당신의 일상에 영감을 불어넣는 문장
애덤 그랜트 지음, 정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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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은 일관적인 루틴을 유지해야 높아진다. 반면 창의성은 루틴을 벗어날 때 발휘된다. (p.75)

이 책은 날짜형 일력처럼 구성되어, 하루에 한 문장씩 읽으며 생각을 곱씹을 수 있다. 성장, 관점, 주도성, 태도, 관계, 휴식, 회복탄력성, 자기 돌봄, 통찰, 지성, 변화, 의미. 이렇게 총 12가지 주제가 월별로 나뉘어 담겨 있다. 문장은 짧지만 결코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나는 특히 ‘시간’과 ‘자유’에 관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었던 마음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거나 죄책감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저글링하듯 달리면서도 무언가를 놓칠까 불안했는데, 어떤 순간에는 내려놓아야만 하는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선택보다 포기가 훨씬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다. 예전에는 하나의 선택이 나를 완전히 규정한다고 느꼈지만, 알고 보면 그 또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나를 규정하는 기준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마음에 남는 문장이 많아 필사도 하고, 몇 번이고 되뇌며 읽었다. 일하는 공간에 꽂아 두고 틈날 때마다 한 문장씩 다시 펼쳐보기에 좋은 책이다. 연말에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적당하다. 가볍게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_ 당신이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는 당신이 무엇에서 동기부여를 얻는지 알려준다.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 것인지는 당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보여준다. (p.214)

_ 미래에 자유 시간이 많아지리라는 것은 환상이다. 미래에는 다시 새로운 우선순위가 생길 테니 절대 지금보다 덜 바쁠 리가 없다. 한번에 “예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무조건 거절하라. (p.121)

_ 하루의 생산성은 실제로 일하는 시간에 달려 있다. 한 해의 생산성은 생각의 질에 달려 있다. 커리어의 생산성은 배움의 질에 달려 있다. (p.136)

_ 좋은 기회를 제안받았을 때 지위는 높아지지만 자유가 줄어든다면 다시 생각하라. 시간에 제약이 생기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리는 아무리 큰 보상과 영향력을 얻더라도 소용이 없다. 자유가 유지되어야만 행복해진다. 성공에는 더 많은 자유가 따라와야 한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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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읽는 시간 -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클래식 이야기 207
김지현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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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맨델스존은 제목이나 가사가 없는 무언가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영혼을 채우는 것은 말보다 음악이다. 음악은 가사가 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내게 그 노래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묻는다면 그 노래는 노래 그 자체라고 말하겠다.” (p.318)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나조차도 흠뻑 빠져 “들었던” 책이다.

매 페이지마다 QR코드로 곡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고, 귀로는 익숙했지만 곡명은 몰랐던 음악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경험도 했다.

모르는 악기 설명을 읽고 그 소리를 유심히 찾아 들었고, 임윤찬이나 랑랑의 피아노 연주는 들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기억에 남는 영상들도 많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가 트럼펫을 직접 연주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장면은 낯설고도 인상적이었다.

양팔이 없는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가 발가락으로 호른을 연주하는 모습, 윤경화 연주자가 2.5미터나 되는 마림바를 다루는 모습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또한 2024년 2월 KBS교향악단 연주회에서는 연주 중 팀파니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당황할 틈도 없이 상황을 수습하고 팀파니 세 대만으로 연주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 프로구나’ 싶은 존경심이 들었다.

책 속 악기 소개도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목관악기의 매력을 이번에 새롭게 느꼈다. 마치 미술관에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듯, 설명을 읽고 귀로 소리를 확인하는 경험이 즐거웠다.

둥글게 감긴 관이 약 3미터에 달하는 호른이 기네스북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로 올라 있다는 사실도 기억에 남는다. 오보에 소리도 좋았다.

피아노와 달리 오르간이나 첼레스타의 소리는 매력있어서 현장에서 듣고싶었다.

다시 듣고 싶은 곡들은 따로 메모해 두었다.
• 미국 재즈 연주가 척 맨지오니의<Feel So Good>
• 임윤찬이 연주한 쇼팽의 <흑건>
• 요요마가 2018년에 연주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제1곡 전주곡>
• 차이콥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속 첼레스타 소리

척 맨지오니가 누군지 찾아보며 ‘이런 거장을 이제야 알다니!’ 싶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길 때면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귀가 호강하는 기분, 알고 듣는 즐거움,
한 번 펼쳐보시기를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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