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마음 없는 일 - 인스피아, 김스피, 그리고 작심 없이 일하는 어떤 기자의 일 닻[dot]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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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만약 어떤 분야에서도 엉뚱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가 지나치게 시스템에 얽매여 엉뚱한 짓을 하지 않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각 시대는 각 시대의 발명과 각 시대의 (거의 멍청이처럼 보일 정도로)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p.146)

‘일을 수상하게 만들어 해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의 종류다.

나는 루틴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형화되지 않은 일, 특히 신사업처럼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형태를 잡아가는 그 과정이 좋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마음이 유난히 콕 와 닿았다.

신문사라는 레거시 미디어에서 1인 뉴스레터를 만들기까지 그 여정에는 지난한 고민과 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재미있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 분야를 넘나들며 느끼는 부담감, 진정성에 대한 진심, 그리고 인스피아를 향한 애정까지.

분류되지 않은 일의 틈새를 찾아내 기꺼이 알아내고, 아무도 정의하지 않은 ‘그레이 영역’에 다가서는 사람.

본능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시작했다가 결국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

나는 늘 이런 사람들에게 끌린다. 저자 역시 그런 부류다.

인스피아는 7월 말로 종료되었지만, 그가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하다.

아마도 직장 안에서도 자기만의 일을 다시 찾아내지 않을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일이 처음부터 빚어놓은 도자기처럼 완성된 형태로 내게 찾아오는 경우는 잘 없다. 어쩔 수 없이 깨어져 부서진 단면, 구르다 최대한 버티기 위해 취한 어설픈 포즈가 그대로 자신의 평생의 일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게 어떤 일이 누군가의 평생의 일이 되는 궤적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p.10)

우리의 사고와 시야가 정해둔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재미가 아닌 의무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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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지능 -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지성을 깨워라
앵거스 플레처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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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와 ‘만약에’를 잇는 순간,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p.75)

AI가 전방위적으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시대, 내 머릿속을 가장 자주 스친 질문은 이것이었다.
‘인간은 AI와 어떻게 다른가?’

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합리성, 불완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AI시대에 인간이 갖는 불완전함이나 불합리성이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저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온 ‘논리’ 영역 밖에 존재하는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 — 이 네 가지를 인간 고유의 지능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 네 가지가 인공지능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임을 보여준다.

1. 직관
예외적인 것을 식별하는 능력.
AI는 패턴을 찾아내고 예외를 ‘잡음’으로 처리하지만, 인간은 그 예외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2. 상상력
‘왜’라는 질문에 ‘만약에’를 더하는 순간, 상상력이 탄생한다.
아이가 '왜'와 '만약에'를 결합한 질문을 할 때마다, 그럴 일은 없다며 단정지었던 나를 탓해본다.

3. 감정
감정은 내면의 신호다.
이성보다 더 빠르게 방향을 알려주는,
스스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지능의 한 형태다.

4. 상식
AI와 달리 인간에게는 상식이 있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네 가지 능력은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힘이 된다.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고유지능이 실제로 발휘된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기존의 논리적 사고방식과 효율 중심의 학습을 넘어서는 일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약점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다.

흥미롭다.

인간은 평생 교육을 통해 논리적 사고를 발전시키고, 비합리성을 제거하려 애써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에는 바로 그 비합리성과 불완전함이
인간만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니.
새삼 흥미로운 일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가 ‘고유지능’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고 생생하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어떤 힘을 지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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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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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적으로 기술적, 군사적,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도를 높여 나가는 전략적 접근은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역시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장기적 목표를 설정해도 미국이나 중국의 요구에 따라 휘둘리는, 소위 외교적 '루저'가 되어 이리저리 등 떠밀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p.170)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번 APEC 회담을 통해 그 과제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핵잠수함 건조 승인’은 한국이 미국과의 결속 강화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새로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이 처한 국제 정세 현실이 얼마나 팽팽하고 어려운 시기인지를 새삼 느꼈다.

1. 미국의 오판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미국의 탈제조업을 가속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은 경제적 자유화 이후에도 정치적 자유화나 민주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중국을 ‘배은망덕한 국가’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미·중 관계의 근본적인 불신으로 이어졌다.

2. 결핍이 낳은 중국의 혁신
미국의 기술 제재 이후, 중국은 내부 자원을 쥐어짜듯 효율을 극대화하며 기술 자립을 추구했다. 반도체와 AI 분야에서 이미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결핍이 곧 혁신의 원천’이 된 셈이다.

3. 갈림길에 선 한국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미국의 원천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편, 중국은 빠르게 그 격차를 좁히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 반도체 설계 단계에서 미국 기술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기술 독립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이 반도체든 AI든, 대체 불가능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독자적 혁신이 절실하다.

책에서는 헨리 키신저의 저서 <새로운 질서>가 언급되는데, 특히 그 부분이 깊은 인상깊었다.

1950년대, 키신저는 핵 기술이라는 새로운 기술 발전이 인류 전체를 공멸의 위기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판단했고 그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했었죠. 만약 핵전쟁이 발생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또 한 번의 세계 대전 확산으로 가지 않도록 제한전으로 억제할 수 있을까, 이를 고민했던 게 1950년대 키신저의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2020년대에는 AI와 핵이 결합해 미중 경쟁이 단순한 AI경쟁을 넘어 핵과 얽힌 새로운 군비 경쟁으로 비화하는 상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를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p.130)

AI를 둘러싼 미·중 경쟁은 단순한 기술 패권 싸움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키신저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에 무비판적으로 편입되는 것도 위험한 선택이나, 그렇다고 소버린AI가 과연 가능할까...

핵무기가 그랬던 것처럼, 통제 불가능한 힘이 또다시 인류를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이 책은 미·중의 각축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게 만든다.

한국이 그 사이에서 지혜롭고 주체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만 쉽지않은 국제 정세에서 국내도 바람잘날 없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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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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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계속 식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물을 어떻게 생각하기로 결정하는지는 우리의 모든 걸 바꿔놓을 것이다. (p.98)

이 책을 읽으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다.

‘식물 지능’이라는 말을 신중히 다루는 과학자들의 태도가 이해되면서도, 수많은 실험과 관찰이 쌓여 있음에도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유지되는 이유가 결국 인본주의적 관점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은 ‘답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

식물이 지능이 있는가, 들을 수 있는가, 기억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이런 질문들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에서 다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말 진기한 식물의 세계를 보여준다.

1. 식물은 자신이 건드려지면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포식자가 씹는 소리에 반응하고, 식물도 특유의 파열음 주파수를 낸다. 괴롭힘을 당하면 식물도 ‘소리’를 낸다.

2. 식물에게도 생체 리듬이 있다. 낮과 밤을 알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봄에는 속도를 높이고 겨울에는 느려진다. 흙 속의 습도 차이를 감지해 물이 있는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고, 젊음과 늙음의 시기를 지난다.

3. 꿀을 품은 식물은 벌이 깨물면 개화 시기를 최대 30일 앞당긴다. 수분해줄 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꽃을 일찍 피우는 것이다.

4. 은행나무는 성전환을 한다?! 수그루에서 암가지를 뻗는 모습은 수억 년 동안 생존해 온 지혜의 산물일까, 성을 변경해가면서 생존하는 은행나무.

5. 식물은 곤충, 균류, 동물 등 종의 경계를 넘어 소통한다. 아카시아는 잎이 뜯기면 쓴 타닌 성분을 늘리고, 주변 나무들은 그 신호를 감지해 에틸렌을 방출한다.

6. 식물은 가족을 인지한다. 낯선 식물 옆에서는 뿌리를 깊게 내리며 경쟁하지만, 가족 곁에서는 예의 바르게 뿌리 성장을 제한하고 함께 살아갈 공간을 남겨둔다.

그저 놀랍기만 하다.

씨앗은 발아 후 48시간 안에 물과 영양분을 찾아야 하고, 잎을 밀어 올려 햇빛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태초부터 스스로 생존해야 했던 존재이기에, 식물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환경에 민감하고 적응이 빠르다.

인간의 눈에는 정적으로만 보이는 식물이 이토록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지구상에서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존재임에도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가.

‘경이로움’이라는 단어 외에는 이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큼이나 인상적인 책이다.

인간이 전부가 아님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더 확장시켜주는 책.

리뷰로는 다 전하지 못할 만큼 놀라운 내용이 가득하다. 직접 읽어보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식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식물 부모들이 자기 자식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순조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366)

따지고 보면 결국, 식물이 지능이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는 사회적인 질문이지 과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과학은 계속해서 식물들이 우리가 상상해 온 이상의 일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우리는 그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우리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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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 코멘터리 북 - 이석원과 문상훈이 주고받은 여덟 편의 편지
이석원 지음 / 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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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일까. 남들 보라고 글을 쓰다보면 정말 내 솔직한 심경을 써야 할지 독자를 위해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것. 그게 적어도 책을 내는 사람, 특히 나같이 대중적인 에세이스트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p.96)


내가 이석원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찌질하고 모지리 같은 마음의 모양’을 날것 그대로 써내려가기 때문이다.

마음이라는 복잡한 영역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서 이토록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이석원님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그는 '거짓말에 대하여' 고백한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출판사들로부터 출간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거짓말부터 질러놓았는데, 결국 그게 현실이 되었고, 독자들은 오히려 “작가가 너무 솔직하다”고 말했단다.

‘희한하게도’라는 그의 표현처럼, 15년이 지난 지금 그 일화를 밝히는 모습이
또다시 ‘그답다’고 느껴졌다.
(이런 모습조차 솔직한게 아닌가... ㅎㅎ)

나는 솔직한 사람인가? 아니.
그렇다면 솔직하고자 하는 사람이긴 한가? 약간 머뭇거리다 예스. (p.255, 작가의 말)

음악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한 고백을 한다.
자신과 대중 사이의 거리감을 느껴
그냥 ‘많이 팔리는 것’을 내놓고 싶었다고.
‘작품’보다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대중은 그걸 작품으로 받아들였다고.

그런데 이렇게 복된 상황에서도,
그는 굳이 본심을 꺼내놓는다.
예술가보다는 장사치에 가까웠던 자신의 마음을.

아마 이런 고백들이 독자의 마음을 훔친 게 아닐까.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갈팡질팡 하는 삶을 살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꾸며서 내보이고 싶은게 사람인데.

사실은 말야... 하면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서 툭 꺼내놓은 듯한 글을 좋아하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테니까. 

'이석원이 만든 건 안 짜치더라' 라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이석원 작가님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만약 아직이라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애초에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장사치로 여겼지만, 그런 선택조차 나라는 존재를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나를 무엇으로 여기건 어떻게든 숨길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엔 없는,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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